다주택 소유자 배불리는 월세 시장

▲ 전세대라으로 온 나라가 난리다. 정부는 전‧월세난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전세대책만 있을 뿐 월세 가구를 위한 대책은 찾기 힘들다.

전세대란이다. 대란답게 전세대책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시장의 분위기는 다르다. 물길은 이미 ‘전세’에서 ‘월세’로 바뀐 지 오래다. 지금 중요한 건 어쩌면 월세 세입자일지 모른다. 문제는 월세 세입자의 주거안정을 위한 대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집 없고, 돈 없는 월세 세입자의 우울한 월세별곡別曲을 들어봤다.

직장인 이진섭(32)씨는 서울시 동작구의 보증금 3000만원 월세 50만원 원룸에 살고 있다. 계약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작은 아파트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힘겹기만 하다. 목돈을 마련하는 것도 힘에 부치지만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전셋값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하다. 여러 부동산 중개소를 돌아다녔지만 전세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우니, 반전세(보증부 월세)나 월세를 알아보는 게 빠르다는 얘기만 들을 뿐이다.

이씨가 전셋집을 원하는 건 월세의 불안함 때문이다. 계약 연장이 쉽지 않아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현실이 싫다. 툭하면 보증금과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는 집주인의 으름장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매달 내야 하는 임대료도 부담이다. 중소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 씨의 월급은 200만원 남짓. 매달 수입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 월세로 빠져나가니, 애먼 돈 날리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부동산의 물길 ‘전세→월세’

치솟는 물가에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줄여도 각종 세금과 월세, 생활비를 제하면 한달에 30만~40만원 저축하기도 빠듯하다. 이씨는 “목표와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월세를 내려고 일하는 것 같다”며 “내집 마련의 꿈은 고사하고 월세를 탈출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 넋두리를 늘어놨다.

전세대란이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주택매매가 사라지자 주택수요가 전세로 몰렸기 때문이다. 주택거래가 줄자 전셋값은 폭등했고 매매가격의 60% 수준까지 올라갔다. 전세가격이 오르면 매매가 늘어난다는 부동산의 불문율도 깨진 지 오래다. 집값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예상 탓인지 주택구매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전셋값 급등의 불똥은 공교롭게도 ‘월세값’으로 튀고 있다.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 월세 전환하고 있어서다. 집주인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주택 매매를 통해 수익을 내는 게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금리가 낮은 탓에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넣어 두는 것만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시절이 지난 것도 이유다. 경기마저 좋지 않아 보증금으로 받은 목돈을 투자할 만한 투자처를 찾기도 어렵다. 하지만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 고정수입이 나온다. 수입도 은행이자보다 훨씬 높다. 국토교통부의 6월 월세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수도권의 월세이율은 월 0.83%를 기록했다. 1년이면 9.96%의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정기예금금리 연 2.80~ 3.30% 3배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이율이 비교적 높은 저축은행의 연 4.0~4.5% 금리보다도 2배 이상 높다.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사각지대에 놓인 월세 세입자

지난해 전국에서 월세로 거주하는 가구는 21.62%로 나타났다. 특히 월세가구는 소득이 낮을수록 증가했다. 전세자금과 같은 목돈을 마련할 수 없는 서민층은 반전세 월세, 월세 주택을 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실제로 수도권 저소득층의 월세가구 비율은 2006년 30.65%에서 2012년 40.31%로 크게 늘어났다.

집주인이야 월세로 돌리면 짭짤한 수익을 남길 수 있겠지만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저소득층은 호주머니가 텅텅 빌 수밖에 없다. 부동산 114가 서울 아파트 전ㆍ월세 실거래 자료 36만9101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년간 월세세입자가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2521만원에 달했다. 월평균 210만원 꼴이다. 정기적인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낮은 저소득층 가구는 꿈도 꾸지 못할 월세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의 물길은 전세에서 월세로 달라졌지만 월세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월세 세입자가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월세 세입자를 위해 내놓은 정책은 월세자금 대출상품이 고작이다. 부족한 월세 자금을 은행 대출을 통해서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저신용자는 이마저도 이용이 쉽지 않다.

주거의 안정성도 낮다. 월세 세입자가 법적으로 보장된 계약기간은 전세와 같은 2년이다. 하지만 집주인은 월세가 2개월 이상 밀리면 언제든지 세입자를 쫓아낼 수 있다. 계약기간이 끝나 재계약을 하고 싶어도 주인의 눈치를 봐야 한다. 법적으로 보장된 2년이 끝나면 세입자가 계속 거주하길 원해도 집주인이 거부하면 집을 나가야 한다. 또한 재계약을 한다고 해도 보증금과 월세를 얼마나 올려 달라고 할지 몰라 불안하다.

전ㆍ월세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한 주택임대자보호법은 1989년 개정된 이후 24년 동안 변화가 없다. 최근 계약기간을 1회 연장해 최대 4년간 거주를 보장하는 자동계약 갱신 청구권이 발의 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 임대주택 시장이 월세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여전히 주택매매와 전세 중심이다.
이선근 민생연대 대표는 “우리나라 전ㆍ월세 세입자의 주거 안정성은 매우 낮은 편”이라며 “선진국처럼 장기계약을 보장해 안정적 주거 생활이 가능할 수 있게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을 통해 서민의 주거 안정을 돕겠다는 것은 오히려 빚만 늘려 생활을 더욱 어렵게 하는 근시안적 대책이다”며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전세대란에 이어 월세대란의 조짐까지 나타나자 박근혜 대통령은 “전ㆍ월세 문제 해결에 정부가 앞장서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부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서민 월세 자금 대출 상품 확대를 시중은행에 주문했다. 월세 대출 운영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에 따라 기존에 상품을 출시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이외에 국민은행ㆍIBK기업은행ㆍ외환은행 등이 상품 준비에 나섰다. 하지만 상품의 효과에 대해서는 출시를 준비하는 은행권조차 회의적인 반응이다.

이미 출시된 상품의 이용률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신용대출을 이미 받은 사람은 추가로 받을 수 있는 금액이 크지 않다. 또한 월세 임대료 이외에는 다른 곳에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어 급전이 필요한 서민층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은 월세상품”이라며 “정부의 요청으로 상품을 준비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한편에서 월세대출상품을 두고 ‘실효성 없는 관치금융 상품’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서민에 빚 지우는 월세 대책

 
정부와 새누리당은 8월 20일 당정협의를 갖고 전ㆍ월세 대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전ㆍ월세난이 부동산 거래의 부진 때문에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전환하기 위한 주택시장 거래 정상화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상한제 탄력적용, 취득세 영구인하 등의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런 대책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이미 효과를 거두지 못한 정책을 또다시 꺼내들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정부가 정책방향을 아예 잘못 설정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ㆍ월세 정책 대부분이 집 없는 서민이 아닌 다주택 소유자를 위한 것이라서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과 안정적 가격의 주택을 공급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서민에게 빚을 지워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유지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선대인 선대인연구소장은 “정부의 전ㆍ월세 정책의 접근 자체가 잘못 됐다”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부동산 부자와 건설업계 등 기득권을 위한 정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택가격의 자연스러운 하락을 정부 정책으로 억지로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돈 없는 서민에게 빚을 지워 은행과 자산가의 배만 불리는 일이다”고 비판했다.

이선근 민생연대 대표는 “국민 임대 아파트와 월세 소득공제 비중 상향 등 서민층 월세 거주자를 위한 실현 가능하고 실직적인 대책이 없다”며 “월세 거주자를 위한 장기적 관점의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서구 기자 ksg@thescoop.co.kr│@ksg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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