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통장에 맡긴 ‘슬픈 인생’

▲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인적구조조정 분위기가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다. 사진은 재취업에 나선 중년층. (사진: 뉴시스)
여기 ‘죽은 회사’만 골라서 다닌 이가 있다. 중견기업 A사의 김근철 상무다. 1997년 외환위기 시절엔 부도난 H사의 과장이었고, 그 이후엔 다니는 기업마다 인수ㆍ합병(M&A)됐다. 그래서 그는 위기라는 말만 들으면 ‘트라우마’를 느낀다. 김 상무를 통해 전례 없는 경기침체기를 보내는 직장인의 애환을 살펴봤다.

참여정부 시절,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했던 중견기업 A사. 하지만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성장엔진이 멈췄다. 사상 전례없는 경기침체 탓에 매출이 가파르게 줄어들었고, 지나친 차입으로 금융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800명에 달하던 직원은 어느새 3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진행된 구조조정. 떠난 사람도, 남은 사람도 ‘두려움’을 안고 산다. 이 회사의 김근철(가명) 상무는 요즘 1인3역을 한다. 기획ㆍ재무는 기본, 홍보도 그의 몫이다. 늘어난 업무량만큼 정신적 피곤함도 심해지고 있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잔금을 해결해 달라’며 떼를 쓰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그렇다고 회사 사정을 속속들이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 ‘회사 곳간이 비었다’는 사실을 알면 협력업체 직원들이 패닉에 빠질까 걱정돼 말을 삼간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군대 두번 가는 기분이다”

김근철 상무는 요즘 ‘트라우마’라는 말을 실감한다. 공교롭게도 그는 ‘죽은 회사’만 골라 다녔다. 1997년 외환위기 시절엔 부도난 H사의 과장이었고, 그 이후엔 다니는 기업마다 인수ㆍ합병(M&A)됐다. 그래서 그는 위기라는 말만 들으면 몸서리가 쳐진다. 김 상무는 뜬금없이 군대 이야기를 꺼냈다.

“군대, 다시 갈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힘든지 알면 못 갈 겁니다. 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학습 효과’를 운운하지만 한번 이상 겪은 사람의 두려움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외환위기의 경험으로 ‘위기에 대응하는 내성耐性’이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는 거다. 

그는 “외환위기 때보다 지금이 더 무섭고 힘들다”고 했다. 1964년생인 김 상무는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 30대 초중반이었다. 당시 그의 직장이던 H사가 위기에 빠졌을 때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있었지만 자신감도 컸다. 젊었고, 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H사에서 퇴사한 지 87일 만에 재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50줄에 들어선 나이. 직책은 임원이다. 퇴직하거나 회사에서 쫒겨나면 갈곳이 마땅치 않다. 임원이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은 재취업을 하는데 걸림돌이다. 그는 얼마 전 ‘부장 자리’도 괜찮다며 여러 기업을 찾아다니며 면접을 봤다. 지금 직장 역시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어서다.

그러나 손을 내미는 곳은 없었다. 적지 않은 나이가 발목을 잡았지만 회사의 조직 논리도 만만치 않았다. “자기 보호 본능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외환위기 이후 노동 유연성이 확대되면서 대부분의 직장인이 ‘나도 잘릴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 같아요. 저처럼 나이 많은 임원이 재취업을 희망한다고 하니까, 그 회사 임원들이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고 하더군요.” 임원은 기업의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 상무에게 임원은 ‘가시 돋친 장미’와 다를 바 없다.

노동유연성의 비극 “잘리는 게 무섭다”

김 상무가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고 다니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그의 가계는 현재 수입보다 지출이 더 많다. 한때 세후歲後 월수입이 500만원에 육박했지만 지금은 제로다. 6개월째 그의 통장엔 돈이 입금되지 않는다. 1년 약정으로 만든 마이너스 통장은 바닥을 보인다. 그렇다고 갱신이 쉬운 것도 아니다. 김 상무가 다니는 회사 사정을 꿰뚫고 있는 은행 측이 ‘마이너스 통장’을 순순히 갱신해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아마도 훨씬 많은 연 이자를 내야 할지 모른다. 더구나 미국의 출구전략이 본격화하면 금리가 훌쩍 뛸 공산이 있다. 이러나저러나 걱정 한가득이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이럴 때일수록 재무계획을 짜임새 있게 짜고,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라고 조언한다. 김 상무는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고 반박한다. 전문가의 말대로 생활비와 용돈은 최대한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한 경비는 줄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김 상무는 슬하에 1남1녀를 뒀다. 큰 아이는 대학생, 작은 아이는 고등학교 2년생이다. 큰 아이의 한 학기 등록금만 수백만원이다. 감당하기 어려운 돈이다. 그렇다고 학자금 대출을 받으라고 말하기도 싫다. 아이에게 빚을 떠넘기는 것 같아서다. 작은 아이에게 들어가는 사교육비도 월 100만원에 육박한다. 과한 사교육비지만 부인의 성화 때문에 줄이기 어렵다. 

▲ 50대가 넘어 회사에서 구조조정되면 재취업을 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사진: 뉴시스)
김 상무의 더 큰 걱정은 ‘집’이다. 그는 2011년 가을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112.2㎡(약 34평) 규모의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갔다. 당시 전세가는 2억원. 올 10월 재계약인데, 시세가 벌써 4000만원 올랐다. 집주인이 전세가격을 올려달라고 하면 김 상무로선 지급할 여력이 없다. “지난해 전국 평균 전세보증금이 사상 처음 1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세입자의 절반 이상은 보증금이 5% 이상 오르면 이를 지급할 여력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언론 보도가 남의 일 같지 않다. 한심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 때문인지 김 상무의 부인은 요즘 ‘돈을 벌어야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김 상무가 “그럴 필요 없다”고 말리고 있지만 부인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 부인은 “자신만 그런 것도 아니다”고 말한다. 한국 노동시장에선 2005년 이후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50대 이상의 여성 취업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침체 때문에 50대 주부들이 사회에 뛰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김 상무는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50대 주부가 취업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자리가 가정부ㆍ간병인ㆍ생산직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 상무가 경기침체를 탓하고,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지 못한 정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건 아니다. 정부 탓만 하기엔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스스로 실수한 측면이 많다고 말한다. 김 상무는 “직장인들이 내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그는 재취업 교육의 필요성을 간과했다고 털어놨다. 주식ㆍ펀드 등 금융자산에 신경 쓰나라 정작 저축엔 소홀했다고 말했다. 언젠가 소득원이 사라질 수 있음을 걱정하지도, 대비하지도 않았다는 얘기다. “창업 역시 만만하게 봤다”고 그는 말했다. 퇴직 후 쫓기듯 창업했다간 백전백패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이상헌 창업경영연구소 소장은 “창업할 땐 사업 타당성 검토를 반드시 해야 할 뿐 아니라 공인된 기관에서 창업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창업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갈 곳 거의 없는 IMF 세대

김 상무가 다니는 A사는 얼마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인가가 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파산을 피하기 어렵다. 만약 파산한다면? 김 상무가 제대로 받을 수 있는 돈은 체당금뿐이다. 체당금 제도란 회사가 도산기업으로 인정되면 노동자의 밀린 월급(3개월)과 퇴직금(3년)을 국가가 대신 지급하는 것이다. 김 상무는 “25년 직장생활의 마지막 선물이 체당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목이 멘다”고 말했다. 죽어가는 회사 임원이 부르는 마지막 ‘직장별곡’이 더 애달프게 들리는 까닭이다.
이윤찬ㆍ김건희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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