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의 냉정한 현주소

각종 부동산대책이 발표되며 침체됐던 시장에 활기가 돌고 있다. 그럼에도 주택구입을 망설이는 소비자 또한 적지 않다. 현재의 집값이 ‘아직도 거품’인지 ‘합리적인 적정가’인지 판단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부동산대책에 대한 후속 입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도 또다른 이유다. 추석 이후 주택시장 동향은 어떻게 될까.

▲ 정부의 부동산대책발표 이후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이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8ㆍ28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주택 매수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치솟은 전세금에 시달리던 세입자들이 주택매수 쪽으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취득세율 인하와 1%대 저금리로 주택 구입을 지원하는 ‘수익공유형 모기지’ 출시 때문인 듯하다. 사실 서울 강북이나 수원ㆍ안양ㆍ군포 등 기반시설이 좋은 수도권 외곽 중소형 아파트는 현 전세금에 5000만~1억원만 보태면 집을 살 수 있다.

현재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반등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대책 발표 이후 강동구 둔촌주공, 강남구 개포주공 등 재건축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500만〜2000만원가량 뛰어올랐다. 일주일 만에 0.4%나 상승한 것이다.

 

서울만 오른 게 아니다. 대책 발표 이후 경기 안산은 전주 대비 0.04% 상승했다. 2012년 2월 둘째 주 이후 처음으로 오른 것이다. 평택과 안성도 각각 0.01% 상승했다. 두 지역 모두 18주 만에 오름세를 나타냈다. 구리와 안양도 각각 0.01% 올라 2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모처럼 온기가 돌면서 전체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대책발표 이후 0.01% 올랐다. 2011년 3월 넷째 주 이후 127주 만에 처음으로 상승 전환한 것이다.

8월말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성북구 65.24%, 관악구 63.74%, 중랑구 63.52%, 서대문구 63.21%, 구로구 62.49%, 동대문구 62.28% 등의 순으로 높다. 전세금 비율이 높은 곳에선 취득세 인하 소급 적용 여부가 확정되기 전 중소형 아파트를 미리 매입하려는 ‘선취매’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경매시장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한 부동산경매업체 자료에 따르면 8월 30일 현재 전국 아파트의 평균 경매 응찰자수는 6.3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6월 5.6명, 7월 5.5명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다. 취득세 한시감면의 종료를 앞두고 위축됐던 경매시장이 8ㆍ28 전월세 종합대책을 전후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있는 셈이다. 경매분야는 부동산시장을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선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통해 짐작해보면 추석이후 하반기 주택시장은 나쁘지 않을 전망이다.

다만 전세부족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 부동산정보업체의 자료에 따르면 올 하반기 입주 예정인 아파트 물량은 2만9177가구에 그쳤다. 이는 전년 동기 5만8511가구에 비해 절반가량 줄어든 것이다. 2010년 7만3562가구, 2011년 5만1184가구와 비교해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연간 입주량도 지난해 9만6000여 가구에서 올해 7만3000여 가구, 내년 6만4000여 가구로 계속 줄어들 전망이다. 이 같은 입주량 감소는 추석이후 수도권 전세난을 다시 부추길 수 있다.

국내 주택시장 저평가 상태

이쯤에서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는 어떤 질문에 대해 필자의 의견을 제시해야겠다. ‘우리나라의 집값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아직도 거품이 잔뜩 끼어있는 것인가’ ‘아니면 적정가 이하인가’ 사실 섣불리 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우리나라 주택시장은 거품이 충분히 걷혔다고 생각한다.

주택가격의 적정성을 따질 때 흔히 나라별 ‘소득 대비 주택가격’을 비교한다. 우리나라 중위中位주택가격은 소득의 4배 수준이다. 서울 지역의 중위주택가격은 소득의 6~8배 수준이다. 중위주택가격이란 주택 가격이 가장 높은 것부터 낮은 순으로 줄을 세울 때 중간에 해당하는 가격을 의미한다.

중국의 경우 중위주택가격이 소득의 8~10배, 베이징北京은 16~20배 이상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도 서울보다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1990년 이후 우리나라의 주택 가격 상승률을 추적해 보면 소득과 물가상승률에 비해 훨씬 완만했음을 볼 수 있다.

주택보급률 측면에서도 살펴보자. 일본이 주택보급률 100%가 된 것은 전국 기준으로 1968년, 대도시권 기준 1972년이었다. 우리나라는 30여년 뒤인 2002년 전국 주택보급률 100%가 됐다. 일본은 2005년 이후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한국은 25년의 시차를 두고 2030년부터 인구가 줄어든다.
 

▲ 우리나라의 집값 수준에 대해 ‘아직도 거품이 있다’는 의견과 ‘적정가 이하’라는 의견이 나뉜다.

일본 부동산 시장은 1991년 이후 장기침체를 겪고 있지만 그 직전까지는 과열 양상이었다. 저금리로 값싸진 돈이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흘러들어가 가격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일본 안팎에서 부동산에 거품이 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자산가치가 한순간에 꺼졌다. 이에 따라 1992~1995년 4년간 일본 주택가격은 연 평균 10%씩 하락했다. 여기에 일본이 1994년부터 고령사회(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4% 이상인 사회)에 진입하면서 경제의 활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지난 20여년의 기간을 놓고 볼 때 우리나라의 전국 주택가격 지수는 4.2% 올라 물가상승률(4.61%)보다 낮았다. 우리나라 주택가격은 장기간 하락한 셈이다. 2006년까지 서울의 아파트만 보면 연평균 8.18% 올랐고 물가상승률을 초과했지만 근로자 가계소득 증가률(10.27%)에는 미치지 못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엔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물가상승률과 임금 상승률보다 더 하락하면서 충분한 조정을 받았다. 이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의 상승여력은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주택시장 향후 동향을 파악함에 있어 국회의 움직임을 빼 놓을 수 없다. 4ㆍ1대책에 이어 8ㆍ28 전월세대책에 관한 후속 입법을 놓고 여야 간 충돌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분양가 상한제 폐지, 매입임대사업자 세제지원 확대, 취득세율 영구인하 등을 통과시킬 방침이다.

추석 이후 매매 활성화될까

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당론으로 반대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은 전월세 상한제 도입과 자동갱신계약 청구권 보장 등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또한 여야는 건설업계의 뜨거운 감자인 후분양제 도입 여부와 4대강 사업 국정조사 실시 문제를 놓고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 나온 부동산대책이 실효성을 거두려면 국회에 계류 중인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와 분양가 상한제 폐지(혹은 탄력적 운용) 등이 필요하다.

이번 대책에서는 빠졌으나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 등 주택 대출 규제를 과거처럼 은행 자율로 맡기는 방안도 뒷받침돼야 한다. 이것이 해결돼야 지속적인 주택 수요가 생기고 전세시장도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관련 법안의 국회통과가 이른 시일 내 이뤄진다면 추석이후부터는 주택시장의 본격적인 반등이 예상된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 ournps@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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