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이 나라에 일이 터질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메뉴가 골프다. 주로 골프에 대한 비판이다. 그때마다 차라리 골프금지령을 헌법으로 제정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 8월 19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무려 9일간의 여름휴가를 마치고 워싱턴에 복귀했다. 그 기간 동안 오바마는 6차례의 골프라운드를 가졌는데 김용 세계은행 총재가 그중 두차례나 파트너가 되어 화제가 됐었다. 그런데 오바마 휴가에 대한 보도에서 국내와 미국의 매스컴의 시각이 다른 점이 발견된다. 특히 ‘오바마 때리기’ 대목 가운데 미국언론(CNN)은 “한 시간에 1만 달러가 드는 군용 수송기에 오바마 애완견을 태우는 등 호화휴가로 세금을 썼다”고 꼬집었다.

반면 국내 언론이 부각시킨 내용은 다음과 같다. “휴가중인 15일 이집트 유혈사태에 대해 긴급 기자회견과 7분간의 성명을 발표하자마자 골프장으로 향했다.” “알 카에다 테러 비상령이 내려진 가운데 예멘 미국 대사관이 폐쇄된 상황에서 오바마는 휴양지에서 골프를 즐겼다.”

대한민국과 미국 국민이 서로 보도 내용을 바꿔 본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아마도 상당수는 대한민국 경우 “미국인들 정신 나갔네. 개 한 마리 문제가 아니라 그 와중에 골프를 쳐? 대통령 하야감이야!”는 비판이 당장 야당 쪽부터 나왔을 것이다.

▲ 국내 공무원이 대통령 해외순방 등 중요한 시기에 골프를 치면 파면 사유에 해당된다.
반면 미국은 “한국 사람들 왜 저러지?”라고 의아해 하는 쪽이 많았을 것 같다. 지금 온 나라가 무더위에 전력 비상이다. 최근 한 일간지의 사회면 톱 기사를 보니 한여름 밤 골프장의 야간 라운드 사진을 컷으로 올리면서 “국민은 초절전 운동을 벌이지만 일부에선 다른 나라 이야기인 듯하다”고 덧붙였다.

필자는 이런 보도나 일반인들의 비판이 나올 때마다 “그렇다면 왜 헌법으로 골프금지령을 제정하지 않는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그동안 공직자 가운데 골프를 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당사자의 입장에선 극형에 해당하는 해임을 당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금품수수 비리로 공직생활을 접은 수 만큼 된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 4월에는 울산의 한 공무원이 병가를 핑계로 골프를 쳤다 하여 법원으로부터 파면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받았다. 필자 역시 공무원 고위직에 몸담은 적이 있는데, 지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주말에 운동이나 하자”고 하면 “골프채를 쥐는 순간 파면인데 나에게 독약을 주는 거냐!”고 호통 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거 내 정신인가?”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그때도 지금도 공무원은 수해, 국경일, 대형사고, 대통령 해외순방, 심지어 전직 대통령 기일에 골프를 치면 파면 사유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엔 언론의 취재 아이템도 뻔해진다. 데스크가 취재기자에게 “골프장 출입명단을 뒤져봐라”고 하면 기삿거리가 무더기로 나온다. 공무원이 없어도 문제없다.

“이 와중에 한가롭게 골프를 치는 한심한 작자들…” 이라고 달아버리면 그만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권을 쥐면서 “재임기간 중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곧 골프 금지령이다. 그러나 그때 자란 어린이들이 지금 세계 여자골프를 점령했다. 김영삼 정권 때 박세리가 활약했고, 체육인으로선 대한민국 최고 수준인 청룡장을 수상했다.

박세리 부모가 공무원이었다면? 아니, 대통령이 골프를 치지 않는데 어디다 대고 감히 골프를 치고, 더욱이 세계 정상까지 되는가. 골프광인 클린턴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난(김영삼)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하여 둘이 조깅으로 대체한 모습에서 글로벌 세상을 외면한 북한의 김일성이 연상됐었다.

지금 세계 여자골프 톱 랭커 중에는 부모가 김영삼 정권 때 또는 현재에도 공무원인 선수가 있다. 그 선수들이 착하고 효녀여서 그렇지, 솔직하다면 미국서 인터뷰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해야 한다. “전 어릴 때 아버지가 공무원이어서 골프를 몰래 쳐야 했어요. 아버지는 직장에서 딸이 골프를 친다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았지요. 오바마 대통령이 이번 휴가 때 골프를 쳤다고요? 어유~. 우리나라에서 그러면 소요사태 나요. 다른 공무원이 그랬다면 그 자리에서 파면이죠…” 미국언론은 이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 한국 선수들, 하늘에서 떨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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