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선 TG삼보컴퓨터 대표

TG삼보컴퓨터가 재기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재기무대는 PC시장이 아니라 서버시장이다. 7년 만에 다시 회사를 되찾은 이홍선 대표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 대표는 이용태 TG삼보컴퓨터 창업주의 차남이다. 이 대표의 야심찬 도전, 성공할 수 있을까.

▲ 7년 만에 창업주 품에 돌아온 TG삼보컴퓨터. PC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9월 11일. 서울 양재동 엘타워에서 인텔코리아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신제품을 공개하고, 국내 데이터센터 전략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매년 되풀이되는 전력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서버를 선보이는 자리에 또 다른 업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국산 PC의 상징이던 ‘TG삼보컴퓨터’였다. 행사장 한편에 부스를 차린 TG삼보컴퓨터는 ‘TG서버’ 브로셔를 배포했다. 인텔 프로세서를 탑재한 서버로 에너지 효율을 보장하는 신제품이었다. 다음날 업계에서는 ‘TG삼보컴퓨터가 서버 시장에 진출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TG삼보컴퓨터 관계자는 “올 10월 말을 목표로 X86 서버 신제품 2종을 출시하고, 연말까지 2개의 제품을 더 선보일 계획”며 “교육기관 등 관공서를 중심으로 납품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7년 만에 창업주 품으로

PC제조업체 TG삼보컴퓨터가 서버 시장에 진출한다. 지난해 연구개발(R&D)에 착수한 이 회사는 올 7월 인텔코리아와 공동으로 서버 제품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TG삼보컴퓨터가 시장에 선보일 서버는 1소켓 G3 030과 G5040. TG삼보컴퓨터는 제품군을 G시리즈로 출시할 계획이다.

▲ 국산 PC제조업체 TG삼보컴퓨터가 10년 만에 서버시장에 재진출한다. 사진은 TG삼보컴퓨터의 서버시장 진출 소식이 알려진 9월 11일 인텔코리아 행사 모습.

TG삼보컴퓨터의 서버시장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10년 만의 ‘재진출’이다. 2004년 국내에서 서버사업을 펼치던 TG삼보컴퓨터는 2005년 법정관리, 상장폐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서버시장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TG삼보컴퓨터는 위기 속에서도 저력을 발휘했다. 2년 반 만에 법정관리를 졸업하고 재기를 모색했다. 그렇다고 길이 쉽게 열린 건 아니다. 대주주 셀런사의 횡령 사건이 터진 데다 신규사업이 부진에 빠졌기 때문이다. TG삼보컴퓨터는 2010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는 비운을 맞았다.

법정관리→법정관리 졸업→워크아웃 등 악재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되면서 TG삼보컴퓨터의 실적은 더욱 곤두박질쳤다. 4조원을 넘나들던 매출은 2010년 2891억원으로 급감했다. 법정관리 신청 전만 해도 약 1000명에 달했던 직원은 180여명으로 줄었다. 당연히 시장 관계자들은 벤처기업 1세대의 몰락을 기정사실화했다.

깊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던 TG삼보컴퓨터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은 지난해 8월. 주주총회에서 TG삼보컴퓨터를 나래텔레콤에 매각하기로 합의한 것이었다. 매각 대금은 약 130억원. TG삼보컴퓨터를 인수한 나래텔레콤은 1998년 국내 최초 인터넷폰을 도입한 종합통신서비스 회사였다.

흥미로운 것은 TG삼보컴퓨터를 인수한 나래텔레콤의 주인이 TG삼보컴퓨터 창업주 이용태 전 회장의 차남인 이홍선 대표라는 사실이다. 창업주 일가가 법정관리 7년 만에 채권단으로부터 TG삼보컴퓨터를 다시 가져온 셈이다. 이 대표는 당시까지 삼보컴퓨터로 불렸던 사명을 TG삼보컴퓨터로 바꿨다. 새로운 도약을 선언한 셈이었다.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이 대표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회사를 되찾은 이 대표는 조직정비에 들어갔다. 1년간 고군분투한 그는 고심 끝에 ‘서버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10년 전 사업을 중단한 시장에 재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유가 뭘까. 이 대표가 TG삼보컴퓨터를 인수하기 전의 수익구조를 살펴보면 답을 찾을 수 있다.

2011년 TG삼보컴퓨터의 수익 대부분은 PC사업에서 발생했다. 반면 2010년부터 시도한 신규사업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TVㆍ차량용 블랙박스 등 새로운 사업을 늘려갔지만 매출은 크게 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이마트와 제휴해 42인치 LED TV인 T-VIEW를 경쟁사 제품보다 30~50% 저렴하게 공급했지만 이마저도 바람을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올 초 기회가 찾아왔다. 정부가 통합전산센터 등 공공기관에 국산 서버를 적극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이었다. 1980년 창업 당시부터 관공서를 중심으로 시장을 공략해온 TG삼보컴퓨터로선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업계 관계자는 “PC제조업체로 대중에게 익숙한 TG삼보의 브랜드 인지도는 서버사업을 전개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30년 넘게 PC뿐만 아니라 복합기와 프린터를 제조해왔기 때문에 자사 제품을 통합 솔루션으로 제공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고 평가했다.

관건은 공공기관 서버사업을 통해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느냐다. 더구나 TG삼보컴퓨터가 출사표를 던진 X86 서버시장의 상황은 썩 좋지 않다. X86 서버는 인텔 CPU(중앙처리장치)를 장착한 서버를 말한다.

한국IDC에 따르면 올 2분기 국내 X86 서버 시장은 전년 동기 대비 6.3% 줄어든 1356억원 기록했다. 판매량은 올 1분기(3만1000여대)보다 감소한 2만9000여대에 그쳤다. 김용현 한국IDC 선임연구원은 “모바일ㆍ게임ㆍ클라우드 컴퓨팅 등 신규 수요와 맞물려 가파르게 성장하던 국내 X86 서버 시장은 최근 들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밝혔다.

서버시장 재진출 성공하면 자존심 회복

국내 X86서버 시장을 한국HPㆍ델코리아ㆍ한국IBM이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국HP의 시장점유율은 43.6%이다. 델코리아와 한국IBM의 점유율을 합치면 90%에 이른다. TG삼보컴퓨터가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넓지 않다는 얘기다.

TG삼보컴퓨터 관계자는 “TG삼보컴퓨터가 갖고 있는 PC와 모바일 제품, 전국 서비스 네트워크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서버 시장 개척으로 PC 시장점유율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이처럼 TG삼보컴퓨터는 갈길이 아직 멀다. 회사를 되찾는데 성공했지만 과거의 영예를 다시 누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시 꺼내든 ‘칼’ 서버사업. 첫번째 도전이자 장벽이다.


Issue In Issue│삼보컴퓨터의 흥망성쇠

벤처기업에 팔렸던 벤처 1세대

1980년 7월 문을 연 삼보전자엔지니어링(TG삼보컴퓨터 전신)은 34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이 기간은 TG삼보컴퓨터에게 영욕의 세월이었다. 창업자인 이용태 전 TG삼보컴퓨터 회장은 서울 청계천에서 6명의 동업자와 함께 자본금 1000만원으로 회사(삼보컴퓨터)를 차렸다. 국내 최초 PC제조회사였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사업 1년 만에 국내 최초 PC ‘SE-8001’을 개발해 국내 유일 PC 생산업체로 지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기술력이 뛰어났던 TG삼보컴퓨터는 1982년 일본 세이코엡슨사와 손을 잡고 프린터를 출시했고, 1983년 교육용 컴퓨터 ‘TRIGEM 20XT’를 내놨다. 당시 출시한 컴퓨터는 프로그램 언어 ‘코볼’과 ‘포트란’ 열풍을 일으킬 정도로 불티나게 팔렸다.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 TG삼보컴퓨터는 2000년 3월 나스닥에 상장했다.

 

TG삼보컴퓨터가 국내 대표 PC제조업체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저가 PC시장을 공략했기 때문이었다. 호재도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PC 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TG삼보컴퓨터가 매출 4조원이라는 신화를 쓸 수 있었던 이유다.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TG삼보컴퓨터는 자금난에 처했고, 급기야 2004년 서버 제품 출시를 중단했다. 불운도 있었다. 2005년 TG삼보컴퓨터의 최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고객이었던 HP가 대만업체로 거래선을 바꿔버렸다. 곧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 2005년 5월 TG삼보컴퓨터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2007년엔 IP셋톱박스를 생산하는 벤처기업 셀런에 팔렸다. 국내 벤처기업 1세대가 벤처기업에게 인수된 것이었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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