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솔직히 ‘퍼터’보다 ‘빠따’가, ‘거~얼프’보다는 ‘꼴푸’가 더 친근감이 든다. 연일 홍수처럼 밀려드는 미국 골프문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아닐까.

지금도 크게 다를 게 없다고 느끼지만, 일본 젊은이들이 미국문화에 흠뻑 빠진 시기는 1964년 도쿄 올림픽 전후다. 당시 뉴 제너레이션들은 미국의 1950년대 비트와 60년대 갓 탄생한 히피 문화를 동시에 받아들이면서 서재와 공부방을 나와 산발한 머리로 거리에서 공부하고, 사이키델릭 사운드(psy chedelic sound)에 심취하며 사랑을 나눴다. 상당수는 그들 젊음의 동경 대상인 미국으로 날아갔다. 그때 미국 유학파들이 일본을 세계 2위 경제국으로 만든 주역이다.

1990년대에 여러차례 일본 골프취재를 했다. 일본 골프 관계자 상당수는 유학경력이 있고, 미국어에 능통했다. 이들과 동반 라운드를 하는데 자기들끼리는 일본말로 “쓰리 빠따!” 라든가, “마구리가”란 게 거슬렸다.

▲ 우리나라 골프인과 언론은 미국 골프와 문화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당신들은 미국 유학까지 갔다 왔으면서도 왜 스리 퍼트(three putt), 맥그리거(mcGre gor)라고 발음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다. 그 관계자는 “수십 년 동안 써온 용어라서 되레 어색하다. (일본골프)협회에서 발간하는 용어집에는 원어에 충실하게 안내하지만 미국식 용어대로 쓰는 일본 골퍼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들 대다수는 옛날 그대로 쓰고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운이 좋다. 골프가 언론에 본격적으로 다뤄진 것은 정확히 1998년 6월 박세리가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시점부터다. 때문에 골프를 모르는 사람이 신문을 읽으면서 원어에 가까운 용어를 접하며 골프에 입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골프를 즐기던 국내 정재계인들은 일본 용어를 그대로 써왔다. 그동안 여러 언론이 “일본식 골프 용어를 쓰지 말자”며 사례를 들어 보도하곤 했다.

골프는 영국, 미국인들의 스포츠여서 모든 용어를 영어로 표기ㆍ발음하는 게 맞고, 올바른 용어 사용을 위해 꾸준히 개선하는 노력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파워풀한 다운 블로의 세컨드 샷이 나이스 온, 핀 1야드에서 원 퍼트 홀인, 버디가 됐다”처럼 조사만 있는 국내 언론 보도를 볼 때면 한국인으로서 멋쩍을 때가 많다. 이런 심경을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말했더니 한 친구가 “자네는 시대에 뒤떨어졌군. 그럼 루크(Luke) 도널드(골프 세계랭킹 톱 10)는 ‘누가 도널드’라 표현해야 되나?”라며 핀잔을 줬다.

성경에서 이름, 지명의 거의 전부는 150여년 전 중국식 한자표기다. 예를 들어 Luke는 누가路加, Mark는 마태馬太 등으로 지금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교회입장에선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민법 상법 형사법 등에서의 용어 및 법 전개형식은 현재도 일제시대 그대로이고 일상생활에선 전혀 쓰이지 않는 용어로 가득 채워져 있다. ‘베이스볼’이 아닌 야구의 경우 내야ㆍ주루ㆍ도루ㆍ타격ㆍ포수ㆍ유격수 등 표현이 어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농구ㆍ축구도 그렇다.

긍정적인 면에서 그건 중국 일본 것이 아닌 우리 문화로의 흡수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현대 우리 문화와 사회는 일제의 온실 안에서 태동됐고, 1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근간은 일본이다. 정치적인 일제잔재 청산에 대해선 적극 찬성이지만, ‘용어 등 일본 것은 쓰지 말자’는 모 아니면 도식의 얘기는 무리다. 차라리 일본, 중국 것을 거부하는 것보다는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게 이 시대의 패턴이다. 뭐가 그리 무섭고 걱정되는가.

일본을 세계 경제대국으로 올려놓은 비트, 히피족 출신들은 그들이 귀국해 일본을 이끈 1970년대부터 골프장 건설 붐에도 기여했지만, 미국 골프에 정통한 엘리트이면서도 그동안의 일본 골프문화를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 골프 문화, 또는 언론은 온통 미국 골프에 집중돼 있다. 국내보다는 우선적으로 미국 골프를 취재하거나, 중계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비치고 있다. 국내 골프 에피소드나 보도는 시시하고 수준이 낮게 느껴진다.

솔직히 ‘퍼터’보다 ‘빠따’가, ‘거~얼프’보다는 ‘꼴푸’가 더 친근감이 든다. 연일 홍수처럼 밀려드는 미국 골프문화,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우리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아닐까. 혹시 필자가 나이 든 ‘보수 꼴통’은 아닌지!
이병진 발행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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