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일본 골프팬들은 오자키의 옛날 모습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오자키에 열광하고 있는 것 같다. 장장 40년째다. 시니어 나이도 훨씬 지난 골퍼의 동정이 다뤄지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르고,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했다.

엊그제 TV 채널을 돌리다 일본 NHK 채널이 스치는 순간 화면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일본 골프계에 살아있는 신화 ‘점보’ 오자키다. 스포츠 뉴스였는데 “오자키가 11월 말 던롭피닉스오픈에 참가하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현역 프로골퍼가 시즌 막바지 메이저급 대회에 참가하는 게 무슨 뉴스인가’는 생각이 드는 순간 동시에 “아, 일본은 아직도 오자키 시대에 빠져 있다!”고 느꼈다.

마사시 ‘점보’ 오자키는 올해 66세의 할아버지다. 일본은 프로골프 규모나 산업으로 따지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아무리 대한민국 여자 골프가 세계 최강이라지만 선수층이나 저변은 일본이 훨씬 탄탄하다.

필자는 최근 일본 골프 뉴스에 거의 관심이 없어서 이번 NHK TV 뉴스 등에서 오자키 관련 기사가 얼마나 자주 다뤄졌는지는 확인해 보지는 않았다. 다만 시니어 나이도 훨씬 지난 골퍼의 동정이 다뤄지고 있는 현실이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르고, 한편으로는 부럽기까지 했다.

▲ 한국 골프계가 신세대만을 겨냥한 마케팅 풍조에 젖어들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오자키는 꼭 40년 전인 1973년 야구선수 생활을 때려치우고 프로골퍼로 전향했는데, 그해 시즌부터 우승퍼레이드를 시작해 일본 정규 투어 통산 94승, 통산 상금 26억8800여엔을 기록 중이다. 이 부문 역대 2위인 이사오 아오키의 51승이나, 가타야마 신고의 18억1100여 엔에 한참 앞서 있어 오자키 생애에 그의 기록이 깨질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나이 탓일까, 2002년 ANA오픈을 끝으로 11년째 우승이 없다. 지난해 시즌에는 무려 22개 대회에 참가했는데, 한번도 2라운드 컷을 통과하지 못했다. 살아있지만, 잊혀가는 영웅정도였다.

그런 오자키가 올해 시즌 초인 4월 25일 효고현 야마노하라 골프코스에서 벌어진 쓰루야오픈 1라운드에서 일본은 물론 세계 골프계가 놀랄 대형뉴스를 터뜨렸다. 62타를 때려낸 것이다. 40년 프로골퍼 생애 최저타수가 61인 점을 감안하면 일본 언론 보도대로 ‘거꾸로 가는 인생’이었다.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그 대회에서 그의 드라이버 평균거리는 293야드로 측정됐다. 1979년 미국 PGA투어 쿼드시티오픈 4라운드에서 위대한 골퍼 중 한명으로 추앙받는 샘 스니드(67세)가 66타를 쳐내며 시니어 대회가 아닌 정규투어에서 최초로 에이지 슈트(age shoot)를 기록했을 때, 전문가들은 “그 나이에 그런 스코어는 앞으로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었다. 에이지 슈트는 18홀 경기에서 자신의 나이와 같거나 더 적은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 골프팬들은 오자키의 옛날 모습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오자키에 열광하고 있는 것 같다. 골프대회 주최 및 스폰서 입장에선 그가 골프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만으로도 최소 흥행의 본전은 건진다는 계산도 있는 것 같다. 달리 생각하면 일본 골프 스타마케팅 흥행 카드로 오자키만한 상품이 딱히 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일본골프는 여자의 경우 대한민국의 파워에 짓눌린 상태인데다 남자는 가타야마 신고라는 스타가 있지만, 오자키에 견줄 정도는 아니다. 일본 골프사에 가장 화려한 시기로 오자키와 같은 해에 데뷔해 오자키만 아니었다면 불세출의 스타가 되었을 아오키 두 골퍼가 1990년대 초반까지 벌인 스타경쟁 구도가 지금 일본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장장 40년째 지속되고 있는 일본 골프의 오자키 시대. 노령화 사회가 일찌감치 전개된 일본 특유의 현상인가. 노령화라면 일본 못지않은 우리나라 경우 2004년 작고한 연덕춘 옹의 장례식은 너무나 초라했고, ‘한국의 오자키’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최상호는 여전히 현역이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그와 관련한 언론 보도는 흔적도 없다. 박세리도 그저 그렇다. 본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신세대만을 겨냥하는 마케팅 풍조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이병진 발행인 bjlee28412005@gmail.com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