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한국이나 미국이나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골프가 정쟁政爭에 이용되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다만, 한국의 골프는 정치나 공직자에게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게 하는 위험천만한 스포츠란 게 씁쓸하다.

미국 공화당이 ‘오바마 케어’ 정책을 물고 늘어지면서 세계 경제를 들썩이게 했던 미국 국가 부도(디폴트) 위기가 10월 16일(미국시간) 파산 4시간 전에 극적으로 타결됐다. 결과론적이기는 하나 미국인 상당수와 세계 경제계는 이번 사태를 미국의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치싸움으로 여겨 증시 등 경제가 크게 요동치는 현상은 없었다. 그러나 후유증은 만만치 않을 것이란 보도다.

16일간의 셧다운(정부 일부 폐쇄)으로 미 전역 국립공원, 박물관 등이 문을 닫았고, 연방정부 직원들에 대한 강제 무급휴가 조처는 대량 실직공포를 주기에 충분했다. 우리나라도 똑같은 문제로 정치적 싸움을 벌이고 있다. 주장하는 바도 똑같다. 미국과 집권당과 야당의 위치만 바뀌었을 뿐이다. “복지를 추구하다가는 나라 망한다”와 “그래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정치싸움도 한국처럼 서로 양보나 용서가 없는 것 같다. 오바마 대통령은 극적인 타결에 성공하고도 공화당에 대한 칭찬은커녕 “미 국민들이 정치권에 신물이 났다는 것은 이제 더이상 놀랄 일도 아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셧다운을 주도했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오바마 케어 폐지를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다할 것”이라며 내년 초 다시 셧다운을 추진하겠다며 기세가 등등하다.

▲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골프는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와중에 오바마에 우호적인 워싱턴포스트(WP)의 사설이 눈길을 끈다. WP는 오바마가 골프를 즐기는 점을 지적하면서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나 미치 매코넬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등 야당 지도부와 평소 골프장에서 대화를 나누며 신뢰를 쌓았다면 현재 같은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대통령이 골프를 즐기는 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왜 골프를 매개로 의회와의 접촉을 늘리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공화당에도 오바마 못지않게 골프광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셧다운 전날과 한바탕 정쟁을 치른 4일 뒤인 10월 20일, 3주 만에 골프장을 찾았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골프 애호 못지않게 오바마도 골프광이다. 오죽했으면 군통수권자(Commander-in-Chief)를 빗대 오바마를 ‘Golf-in-Chief’로 표현하고 있을까. 역대 미국 대통령 골프광 중 아이젠하워는 애칭인 아이크 대신 ‘스파이크’로, 클린턴은 라운드 도중 멀리건을 너무 남발한다해서 ‘빌리건’이란 골프애칭이 붙었다. 오바마는 연간 평균 30차례 안팎의 라운드를 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겨울철을 뺀다면 거의 주 1회꼴이다.

미국 언론이 오바마 골프를 꼬집는 것은 그의 동반자 편력 때문이다. 그는 기분 좋은 상대가 아니면 거절한다. 때문에 야당 지도부와는 당연히 라운드 거절이다. 대통령이 된 뒤 오바마는 2011년 정적인 베이너 하원의장과 라운드한 적이 있다. 정계는 한껏 화해무드에 들 떠 있었고, 언론은 “오바마는 이번 라운드를 계기로 야당정치인들과 본격적인 골프회동을 가져야 한다”고 부추겼지만,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라운드였다. 이번 셧다운 사태도 WP를 비롯한 언론이나 심지어 공화당까지도 ‘골프로 풀어라’고 권하고 있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1989년 10월 당시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의 안양컨트리클럽 27홀 골프회동이 정치사에 남아있다. 유명한 3당 합당의 단초가 된 회동이다. 그러던 골프가 김영삼 대통령이 대권을 쥐자마자 청와대 골프연습장을 갈아엎는 등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고, 이후 대한민국 골프는 우여곡절을 겪어오고 있다.

어찌됐든 한국이나 미국이나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골프가 정쟁에 이용되는 스포츠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다만, 한국의 골프는 정치나 공직자에게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게 하는 위험천만한 스포츠란 게 씁쓸하다.
이병진 발행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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