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하는 CEO’ 이두경 서울라인 사장

해운중개업을 하는 서울라인은 직원수 18명의 중소기업이다. 선주와 화주를 연결해 주고 외국 선주 대신 행정적인 일을 처리해 주는 선박대리점 업무도 한다. 이 회사 직원들은 지난해 말 대학로 무대에 연극을 올렸다. 이를 위해 9개월 동안 일주일에 두번, 한번에 두시간씩 일과시간에 연습을 했다. 대본 집필은 집단 창작 형태로 이뤄졌다. 소재는 장모님이 반대한 결혼, 첫 사랑의 실패담, 고아나 다름없이 성장해 가정을 꾸린 이야기 등 자신들의 인생사. 관객은 직원 가족이었다.

요즘은 뮤지컬 공연을 하기 위해 춤을 배우느라 구슬땀을 흘린다. 준비 기간은 2년, 연기 지도는 극단 서울공장 사람들이 맡았다. 이두경 서울라인 사장은 “공연 덕에 직원들 간의 소통이 좋아졌고 상대적으로 스펙이 떨어지는 직원들의 사기가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공연에 도움되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을 보면 학벌과는 무관하더라”고 덧붙였다. 경영에도 도움이 됐을까? 10월 28일 이 회사를 찾아가 그와 만났다.

✚ 사장도 연극에 출연했습니까?

“가발을 쓰고 엄마 역을 했습니다. ‘야 이년아 아직도 자고 있냐’ 같은 대사를 쳤어요. 결혼적령기의 직원들이 결혼을 잘 못하는 것 같아 표정 관리 스킬이라도 가르쳐 보려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 커졌습니다. 중소기업 사장은 아버지 노릇도 좀 해야 하거든요.”

 
✚ 학벌과 연극에 대한 소질은 무관하더라? 스펙 좋은 사람은 그럼 뭘 얻었나요?

“우리나라가 소위 학벌 사회잖습니까? 어딜 가나 학벌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직장에서도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명문대를 나와 자신감에 차 있는 사람이 공연 같은 창의성의 영역에서는 남들보다 떨어지다 보니 겸손해 지더군요. 정형화된 인간을 길러내는 우리나라 교육과도 무관치 않은 거 같아요. 학창 시절에 좀 놀고 한눈도 팔아 스펙이 처지는 사람이, 그랬기에 더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많은지도 모르죠.”

✚ 회사 실적만 놓고 보면 경영엔 마이너스 아닌가요?

“제가 쌓은 경험과 지식을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 전수하고 이 사람들과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게 회사를 하는 목적입니다. 돈도 같이 벌고 삶도 같이 누리려고요. 이렇게 마음먹으면 경영에 대한 피로감도 별로 없어요. 반면 경영의 목적이 이윤 추구가 돼 버리면 일을 잘못해 돈을 못 벌면 열등한 사람이 되고 일 잘하는 사람은 과도하게 회사에 돈을 벌어준다고 생각을 합니다.”

✚ 남들 일하는 시간에 연극 연습을 하면 경영 성과야 줄어들겠죠?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저는 이윤이 적게 나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돈을 많이 번들 결국 나눠 써야 하는데 돈을 뿌리고 다니거나 어디 기부를 하거나 하겠죠. 아니면 사랑하는 자식에게 물려줘 자식을 망치거나.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나아가 그 가치를 높여주는 게 저는 기업이 본질적으로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의성은 스펙과 무관”

서울라인은 의료기기 등록 대행 업무도 한다. 외국의 의료기기를 들여오면 판매 전 식의약청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 일을 대신 해 준다. 중국과의 비즈니스가 많은 이 회사는 중국에 의료기기를 수출하려는 국내 기업을 위해 중국 당국에의 등록 업무도 대행한다. 이 업무를 한 지 10여 년 됐는데 계속 적자라고 했다. 이 사장은 일감은 계속 들어오지만 돈이 되는 일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돈이 안 되는 일이 실은 좋은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돈이 되는 일을 하다 보면 탐욕스러워집니다. 반면 돈이 안 되는 사업은 성실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고, 돈이 안 되다 보니 누가 넘보지도 않습니다. 빼앗아 가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이런 일이 직원 입장에서는 훨씬 좋은 사업입니다.”

중국에 특화된 기업이다 보니 대기업도 이 회사에 손을 벌릴 때가 있다. 한번은 중국에 진출하려는 한 대기업이 중국 시장에 대해 알고 싶다고 도움을 청했다. 공부를 하고 싶으니 담당자를 자기 회사로 보내달라는 요청을 이 사장이 거절했다. 경비는 얼마든지 지불하겠다는 그 회사에 돈은 안 받을 테니 와서 배우라고 응수했다. 결국 그쪽에서 찾아왔고, 그 회사 해외파 박사에게 학사인 직원이 강의를 했다고 한다. 이 사장은 “그 직원은 물론 다른 직원들도 정말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 지난해 서울라인 직원들이 공연한 ‘사이와 사이’.
✚ 연극과 뮤지컬이 극단 사람들과 함께 벌이는 일종의 산ㆍ예 협동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극단 사람들은 뭘 얻나요?

“자본주의 사회이다 보니 자본을 가진 사람이 예술이나 학문을 하는 사람에 비해 너무 높은 대우를 받습니다. 옛날 사대부들이 예인을 품지 않았습니까? 잔치 자리에 불러 먹이고 노잣돈도 쥐어 주고. 지금 이렇게 예인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저는 기업가라고 봅니다. 그래서 우리 직원에게 극단 쪽에서 비용을 청구하면 깎으려들지 말라고 해요. 직장 문화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는 극단 사람들은 우리 회사에 와 일종의 문화 충돌을 경험합니다. 단적으로 예술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예술을 하지 않는 사람을 배우자로 맞고 싶어하더라고요. 어쨌거나 저는 기업과 창작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손잡고 벌이는 활동이 확산됐으면 합니다. 사회체육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회예술이라고 할까요?”

마포대로의 서울라인 사무실은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방불케 했다. 고가옥에서 뜯어낸 송판을 벽면에 붙여 예스런 분위기도 연출했다. 그러느라 입주 당시 인테리어에 5억여원을 들였는데 화장실에 가장 신경을 썼다고 했다. 문화마루라는 이름의 공간은 낮잠을 잘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38층이라 전망도 좋다.

“직원들이 아는 사람을 데려오고 싶어해요. 여의도 불꽃축제 때면 직원 가족들을 불러 음식을 나눠먹으면서 함께 구경을 합니다. 출근하면 집에 가기 싫은 카페 같은 사무실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화장실 콘셉트도 들어가면 나오고 싶지 않은 공간이었어요. 중소기업 직원들은 대부분 전월세집에 살고 반지하방에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직원들을 위해 이렇게 투자를 했는데 부수적인 수확이 있었다. 거래처 사람들이 감명을 받은 것. 한눈에 잘나가는 회사로 비쳐 매출액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지도 않는다고 했다.

직원 자존감 세워주는 게 가장 어려워

✚ 중소기업 오너로서 애로가 뭔가요?

“직원을 뽑기 힘들고, 뽑고 나서도 이 사람들의 자존감 세워주기가 참 어렵습니다. 연극ㆍ뮤지컬도 포괄적인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활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죠. 우리 회사도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거래처인 대기업 상대하다 상처 받고 극복을 못해 공무원 시험 보겠다고 그만둡니다. 어쩔 수 없죠. 내 자식도 내 맘대로 못하는데.”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데 인사하는 직원들 틈에 베트남 여성이 있었다. 회사의 지원으로 국민대 경영대학원에서 야간과정을 밟고 있다고 했다. 주경야독.

“국민대와 제휴해 10년째 두명씩 데려와 공부를 시키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우리 두 나라는 각각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경제 성장을 했고 그 나라는 통일을 했죠. 나머지 절반이 각각 두 나라의 과제로 남아 있고요. 우리나라가 과거 베트남전에 참전해 그 나라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줬지 않습니까?”
이필재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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