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일가, 소극장 상권 진입 논란

▲ 웃기고 재미있는 공연만 인기를 끌면서 재벌 일가가 대학로 소극장까지 진출하는 상황이 벌어졌다.(사진=지정훈 기자)
과거 연극은 시대의 자화상을 담았다. 그래서 한국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엔 낭만과 지성이 넘쳤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경제논리 탓이다. 대학로를 예술이 아닌 자본이 지배하기 시작한 건 오래전 일이다. 이런 틈새를 롯데그룹 오너 일가까지 파고들었다.

지난해,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뒤쪽 골목에 ‘유니플렉스’라는 극장이 새로 생겼다. 영세소극장이 대부분인 대학로에선 보기 드문 ‘멀티형 공연극장’이었다. 최대수용인원 200여명의 소극장부터 6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극장까지 3개관을 갖췄다. 1층과 5층에는 직영 레스토랑도 둥지를 틀었다.

좋은 극장이 생기면 반길 일이다. 하지만 이 극장은 특별한 게 있다. 유니플렉스의 대표는 서진석씨다. 외식업체를 운영하는 유기개발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부인 서미경씨의 오빠다. 유니플렉스를 두고 ‘유통재벌 일가가 이젠 대학로 소극장 상권에까지 발을 뻗쳤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실제로 수용인원이 고작해야 150명 안팎인 대학로 소극장들은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것조차 벅차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을 앞세운 유니플렉스가 등장하자 생존압박을 느끼는 소극장 주인들이 많다.

문제는 유통재벌의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골목상권에 침투했을 때 머리띠를 둘렀던 영세상인들처럼 유니플렉스를 문제 삼는 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정대경 한국소극장협회 이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문화는 상품이 됐고, 소비자는 더 이상 연극이나 뮤지컬 등 공연을 통해 인문학적 교양을 쌓길 원하지 않는다. 오로지 재미만을 추구한다. 물론 공급자가 재미없는 공연을 만들어낸 탓도 있지만 소비자가 찾지 않는 공연에 공급자가 모험을 걸 수 없다. 결론적으로 재벌이 공연장 사업에 손을 대도 그걸 잘못이라고 비판할 명분이 없다.”

씁쓸한 얘기다. 20여년 전만 해도 대학로 공연은 정극에서부터 로멘틱 코미디극, 번역극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현재의 공연은 로맨틱 코미디 혹은 인기배우를 섭외한 뮤지컬이 대부분이다. 유니플렉스가 기획한 첫 작품도 흥행이 검증된 뮤지컬 ‘그리스’다. 대학로 공연사업이 단순한 돈벌이로 전락하자 그 틈새를 재벌이 파고든 셈이다. 

경제 이어 예술도 양극화

대학로에서 5년째 활동 중이라는 한 연극배우는 이렇게 말했다. “극단 중심의 소극장은 명맥이 끊긴 지 오래다. 기획사가 공연을 주관해 배우는 극에 따라 계약을 맺고 일을 하는 신세가 됐다. 스타가 되지 못하면 오를 수 있는 무대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롯데 일가의 진출로 손익을 맞추지 못하는 극장들은 문을 닫고 떠날 것이고, 실험적인 공연은 사라질 것이다. 제작비도 건지지 못하는 공연을 누가 만들겠나. 예술도 경제논리에 따라 양극화로 가고 있는 거다.”

 
물론 ‘재벌 일가의 대학로 진출로 공연문화가 더 활기차게 바뀔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유니플렉스 관계자는 “롯데와 우리와의 관계를 설명해줄 수는 없다”면서도 “유니플렉스는 대학로 공연문화를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관 작품 중 하나로 창작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윤만 추구하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창작 뮤지컬은 ‘루나틱’이란 작품이다. 창작 뮤지컬은 맞지만 흥행 측면에서 검증을 받았다. ‘대학로에 예술이 사라지고 이윤만 남을 수도 있다’는 우려는 기우가 아닐지 모른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juckys3308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