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정신 살아나는 소니

무선 헤드폰에 MP3 기능을 장착했다. 고화질 카메라 렌즈를 스마트폰에 결합했다. 이런 신개념 스마트 디바이스를 연달아 출시한 기업은 애플도, 삼성전자도 아니다. 35년 전 워크맨 하나로 세계 전자업계를 주도했던 ‘소니(SONY)’다. 소니의 도전정신이 부활하고 있다.

▲ 소니가 장인정신과 실험정신을 살린 신개념 스마트 디바이스를 연이어 출시하고 있다. 소니의 도전정신이 부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용산 전자랜드 2층의 한 매장. 지난 20년간 다양한 브랜드의 전자제품을 취급해온 주인장은 올 10월 국내에 출시된 소니 헤드폰을 받고서 “역시”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소니가 헤드폰에 MP3플레이어 기능을 탑재했기 때문이다. 이 헤드폰은 혼자뿐만 아니라 가족ㆍ친구와도 함께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구성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헤드폰에 탑재된 내장메모리에 MP3 파일을 저장하면 바로 플레이된다. 요즘 IT업계의 화두인 스마트 컨버전스(융합) 디바이스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업계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용산매장 주인장은 “MP3플레이어가 탑재된 헤드폰은 과거 소니의 영광을 이끌었던 워크맨을 떠올리게 한다”며 “워크맨의 역사를 잇는 제품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소니의 실험정신과 장인정신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1년 동안 신제품 37종 출시

소니의 도전정신이 부활하고 있다. 부활의 신호탄은 지난해 취임한 히라이 가즈오 소니 CEO가 쏘고 있다. 히라이 CEO는 올 초 ‘대대적인 쇄신’ ‘소니의 부활’을 선언했다.

한때 글로벌 IT시장을 평정했던 소니는 현재 올 1분기 기준으로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3.8%, 평판TV 시장점유율은 7.5%에 불과하다. 특히 TV는 삼성전자(25.5%)ㆍLG전자(14.7%)와의 격차가 크다. 비디오 카메라와 게임기(콘솔) 시장에서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산업 환경의 변화로 시장이 줄어들고 있다.

소니의 공격적인 행보는 신제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최근 소니가 집중적으로 출시한 제품은 헤드폰ㆍ노트북ㆍ미러리스 카메라다. 특히 올 한해(11월 기준) 소니는 헤드폰(18개)ㆍ노트북(9개)ㆍ미러리스 카메라(5개) 등 총 37종의 신제품을 선보였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나 국제가전박람회(IFA)에서 보여준 신제품도 다양하다.

소니의 달라진 행보는 특유의 실험정신과 장인정신에서 비롯되고 있다. 올 11월 머리에 쓰고 3D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개인용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를 출시한 것은 소니의 무서운 실험정신을 보여준다. 세계 최초로 풀프레임 렌즈 교환식 카메라를 내놓은 것은 소니가 얼마만큼 장인정신을 중시하는 기업인지 증명한다. 연구개발(R&D)은 거의 무한도전 수준이다. 최근 소니는 사양의 길로 접어든 CD에 300GB 저장기술을 개발했다.

업계는 소니의 달라진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올 9월 IFA에서 공개된 뮤직비디오 레코더(HDR-MV1)와 액션캠(HDR-AS30V)은 소니의 저력을 보여준 제품이었다. 대부분의 제조사가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에 집중하고 있을 때 소니는 의외로 콤팩트 카메라 신제품을 선보였는데, 손바닥의 반도 안 되는 크기에 칼자이스 렌즈를 삽입한 것이 놀라웠다.” 카메라 업계 안팎에서 ‘소니가 저력을 되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카메라 업계만의 얘기는 아니다. 헤드폰?노트북 등에서 소니의 부활이 감지된다.

올 9월 소니는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 IFA2013에서 사이버샷(QX10?ZX100)을 선보였다. 고화질 카메라 렌즈와 스마트폰을 결합한 제품이었다. 초고화질 수준으로 촬영이 가능한 렌즈를 스마트폰과 블루투스로 연동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촬영된 사진은 스마트폰에 바로 저장돼 곧바로 이미지를 편집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할 수 있다. 당시 이 콤팩트 카메라를 살펴본 외신들은 “카메라 크기와 무게를 소형화한 것은 물론 카메라와 스마트폰과의 연결성까지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소니가 놀라운 실험성을 뽐낸 사례는 더 있다. 올 10월 세계 최초로 공개된 풀프레임 미러리스 카메라(A7ㆍA7R)는 카메라의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일반적으로 풀프레임 카메라는 정교하고 깨끗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일반 보디 카메라에 비해 무겁고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전문가나 카메라 마니아 등 일부만 사용한다. 그런데 소니가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고 가벼운 바디를 탑재해 단숨에 풀프레임 카메라 시장의 판도를 바꿔버렸다.

크기가 작아졌다고 화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탁월한 수광 성능으로 뛰어난 고감도를 자랑한다. 화질만은 타협하지 않는 소니의 장인정신을 엿볼 수 있는 카메라인 셈이다.

언급했듯 MP3플레이어를 무선 헤드폰과 하나로 합친 워크맨 WH시리즈도 실험성이 엿보이는 제품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충전 기능이다. 3분만 충전해도 1시간 동안 음악을 들을 수 있고, 100% 충전을 했을 때는 최대 20시간까지 MP3플레이어 사용이 가능하다. 소니가 MP3플레이어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탑재하고 방수기능을 장착하는 등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얻은 혁신이다.

올해 IFA2013에서 선보인 노트북과 태블릿PC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 제품은 소니의 고집스러운 장인정신이 빛을 발한 제품이었다. 제품 이름처럼 화면을 뒤로 넘기거나 반을 접어 당겨 노트북으로도 사용이 가능하고 태블릿 모드로도 전환이 가능하다.

 
소니의 달라진 행보 예의주시해야

스마트폰 사업 분야에서도 부지런히 실험 중이다. 모바일 대응에 한참 늦었던 소니가 삼성전자나 애플을 따라잡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최근 내놓은 신제품에선 이를 만회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올 9월 IFA2013에서 소니는 스마트폰 ‘엑스페리아 Z1’를 선보였는데, 함께 공개한 렌즈 사이버샷을 탈부착할 수 있는 게 특징이었다. 스마트폰과 카메라 렌즈가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형태를 내놓은 것이다.

신사업에도 적극적이다. 소니는 올 4월 올림푸스와 함께 외과 내시경 개발과 제조ㆍ판매를 진행할 공동출자회사 ‘소니ㆍ올림푸스 메디컬 솔루션즈’ 설립했다. 업계는 소니의 영상기술과 올림푸스의 내시경 기술이 접목되면 체내의 3D 영상을 고화질 4K 기술로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관건은 소니의 도전정신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느냐다. 업계의 평가는 아직은 ‘유보적’이다. 소니의 고가정책 때문에 실험적인 제품이 당장 수익으로 연결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소니가 최근 주력하는 컨버터블 노트북은 이미 시장에서 식상한 개념이기 때문에 전혀 새로울 게 없다”며 “제일 중요한 것은 가격인데 노트북 한대값이 200만원을 내외여서 당장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소니가 언제든 정상을 되찾을 기업이라는 데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35년 전 소니의 역작인 워크맨을 탄생시킨 원동력이 도전정신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의 행보를 별것 아닌 일로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소니가 과거엔 다소 무모해 보일 법한 실험적인 제품을 내놓았다면 최근엔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한 제품을 적절한 타이밍에 내놓고 있다”며 “국내 제조사들은 긴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ㆍIT의 모든 영역에서 신제품을 출시하는 소니의 행보는 국내 IT기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내 IT기업의 사업포트폴리오는 대부분 한쪽에 치우쳐 있어서다. 삼성전자가 전체 순이익의 66%를 모바일 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대표적 사례다. 스마트폰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위기를 키울 만한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소니, 그들의 진격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소니는 한때 세계 1등 기업이었다.
김건희 기자 kkh4792@thescoop.co.kr|@kkh4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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