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농가 죽이는 사료값

▲ 축산 농가들이 높은 사료가격에 비명을 지르고 있다. 수익성 감소로 폐업을 선택하는 농가도 속출하고 있다.
높은 사료 가격에 축산 농가가 시름하고 있다. 축산 농가의 사료값 부담은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늘었다. 앞으로도 사료 가격이 내려간다는 보장도 없다. 직접 곡물을 배합에 섞여 먹이거나 풀 먹인 가축을 기르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이유다.

한우 농가수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우 농가수는 2005년 18만7000여 가구에서 2010년 16만6000여 가구, 지난해에는 14만1000여 가구로 감소했다. 올 3분기 기준 한우 농가수는 약 12만6000 가구로 쪼그라들었다.

한우 농가가 잇따라 폐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성 감소’에 있다. 전국한우협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우(600kg·수소) 평균 거래 가격은 384만원으로 5년 전인 2009년(438만원)보다 12%가량 떨어졌다. 2010년 1마리당 73만9000원의 순이익을 내던 한우 비육우(고기소)는 수익은 커녕 지난해 91만6000원의 적자를 냈다.

생산비 절반이 사료값

최근 육우 송아지 한 마리가 단돈 1만원에도 팔리지 않는 일까지 있었다. 높은 운영비 탓에 소를 팔아도 수익이 나지 않아 농가들이 송아지 입식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경영 악화로 한우 생산을 포기하는 농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민경천 전국한우협회 광주전남도지회 지회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 쇠고기 수입량이 늘고 천정부지로 뛰어 오르는 사료값 때문에 한우 농가들이 힘들다”며 “3년 전 사료 25㎏짜리 한 가마니가 9000원이었는데 지금은 1만3000원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소 1㎏을 살찌우는 데 14㎏의 사료를 써야 하는 등 부담이 막중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축산 농가들은 높은 사료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를 사육하는 데 들어가는 사료 비용은 전체 생산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비육우 한 마리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평균 사료값은 2010년 228만원에서 지난해 288만원으로 26.1% 올랐다.

소뿐만이 아니다. 이연원 가나안 농장 대표는 “보통 돼지 한 마리를 키우는 데 평균 60% 정도를 사료값으로 쓴다”며 “하지만 지금 같이 돼지 가격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사료값이 돼지값보다 비싸다”고 말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육돈 한마리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사료가격은 지난해 평균 17만4000원으로 2010년(15만원)과 비교하면 15%가량 상승했다.

 
대부분 축산농가는 가축 사육을 위해 두 종류 이상의 사료원료를 일정한 비율로 혼합한 배합사료를 주로 쓴다. 배합사료의 주원료는 옥수수·콩·밀·대두박 등의 곡물인데,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이들 곡물의 수입 비중은 75.9%로 전체 사료원료 사용량의 60%를 차지한다. 그런데 주요 사료 원료인 옥수수·콩·대두박 등은 국내 자급률이 1% 내외다. 국제 곡물가격이 오르거나 환율이 요동치면 당연히 사료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이들 곡물 수입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거다. 관세청의 사료 원료 품목별 수입현황에 따르면 1t당 사료 원료 수입 평균단가는 옥수수는 2010년 228달러, 2012년 311달러, 소맥도 2010년 207달러에서 지난해 284달러로 치솟았다.

 
다행히 지난해 말부터 국제 곡물가가 하락세로 돌아섰지만 문제는 한번 오른 사료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조혜인 한우협회 지도홍보부 과장은 “사료 업체들이 원료 인상 등의 요인이 있을 때마다 사료값을 금방 올리는데 내리는 데는 인색하다”며 “곡물 가격이 떨어지고 환율도 안정됐는데도 사료값을 내리지 않는 통에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전국한우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농협중앙회의 자회사이자 국내 최대 사료업체인 농협사료에 최근 안정된 환율과 하락한 국제 곡물가격을 적용해 사료값 인하를 촉구했다.

지인배 한국농촌경제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 곡물 가격이 많이 안정됐지만 사료 업체들이 가격은 낮추지 않고 있다”며 “사료 가격은 환율과 국제 곡물가격 같은 외부 요인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장담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그의 말처럼 앞으로가 문제다. 농협경제연구소가 올 8월 발표한 ‘국제 곡물가격의 변동성 분석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최근 국제 곡물가격은 하향 안정세지만 글로벌 통화정책의 기조변화(양적완화 종료 등)로 곡물 가격의 변동성 확대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

이 보고서는 “곡물가격의 변동주기가 짧아지고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곡물가격 변동 특성을 파악하고 이에 기초해 조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단기적으로 곡물 가격이 하락했지만 여전히 가격 상승에 대한 리스크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축산 농가들이 직접 사료를 배합해 먹이거나 풀 먹인 가축을 키우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이연원 가나안농장 대표는 “지금 키우는 유기농 돼지도 사료 비중을 줄이는 대신 풀을 먹이고 있다”며 “앞으로는 곡물사료를 먹이고 싶어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어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 중대형 마트와 손잡고 풀 먹인 소를 키우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인 그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육류 섭취율이 낮은데도 심혈관 질환 발병률이 세계 최고인 이유는 지방이 많은 부위를 선호하기 때문”이라며 “곡물사료를 먹여 만드는 쇠고기의 마블링은 결국 몸에 좋지 않은 지방”이라고 말했다. 그가 풀을 먹인 친환경 소를 키우려는 이유다.

▲ 마블링이 많다고 좋은 쇠고기는 아니다. 마블링이 좋다는 건 결국 지방이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곡물 대신 풀을 먹여 가축을 기르기란 쉽지 않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나 호주·뉴질랜드처럼 가축을 방목할 수 있는 초지가 충분치 않다는 거다. 산림을 개간해 초지로 조성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 초지를 조성하려면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자연환경 훼손이라는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해서다.

이연원 대표는 “스위스 같은 나라는 산림 개간을 통한 초지에 가축들을 방목하는 데도 모두가 아름답다고 말한다”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산림을 훼손하고 자연경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초지 조성이 쉽지 않다”고 꼬집었다.

풀 먹인 소가 ‘대안’

민경천 지회장도 “우리나라에 노는 땅을 갈아서 가축들이 풀을 먹을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 “친환경 축산물을 위해 가축들을 방목하라고 하지만 허가 받지 않은 초지에 가축을 방목하면 범법자가 되는 지금의 시스템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법 개정과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초지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인식 전환도 중요하다. 지인배 부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는 시장이 커질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풀 먹인 소 시장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며 “생산을 하더라도 판매 루트가 거의 존재하지 않아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친환경 농산물이 메인이 되기 쉽지 않은 것처럼 풀 먹인 소도 마찬가지”라며 “아직까지 소비자들은 지방이 많은 쇠고기를 맛있다고 인식해 성공 여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미선 기자 story@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