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다름없이 정치권이 볼썽사나운 이전투구(泥田鬪狗)를 거듭하던 지난해말. 기자는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한 풍수지리가를 만났다. 조선후기 실학적 학풍으로 자연환경이 인간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기술에 놓은 청담(淸潭) 이중환의 ‘택리지’를 통해 ‘한국의 명당은 어디일까’라는 궁금증을 풀 요량이었다.

이 풍수지리가의 말이 걸작이었다. “국회의사당은 절대 명당이 될 수 없습니다. 그 터가 병신자리이기 때문이죠.” 이 말에 귀가 솔깃해 졌다. “그토록 잘난 사람들이 왜 싸우기만 하는 것일까”라는 원초적 질문을 풀 수 있는 단초가 될 만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사실 ‘금배지’를 단 사람들의 이력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학벌을 가지고 있고, 검사, 변호사 등 직업도 혀를 내두를 만하다. 그런데 그들 모두 금배지만 달면 한결같이 ‘머리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하기 일쑤고, 입에 침 한방울 안 바르고 거짓말하는 게 예사다.

국민의 힘을 빌어 자랑스런(?) 금배지를 달았지만 국민에 대한 고마움은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단지 선거철만 되면 값비싼 양복을 벗어 던지고 시장바닥에 나가 ‘머슴’인 것처럼 행동하면서 연신 허리를 굽실거리기만 할 뿐이다.

18대 국회가 공식 출범했을 때, 대부분의 국민은 ‘이번에는 변하겠지’라는 기대감을 마음 한켠에 간직했다. 이를 의식해서였을까, 그 해 권부(權府)의 마차에 동승한 사람들은 발 빠르게 변화의 물결에 동참했다. 너나 할 것 없이 ‘개혁’을 운운하고 나섰고 기득권 포기, 구태정치 청산 등 멋진 정치구호를 입에 달고 살았다.

4년이 지난 지금. 국민의 마음은 ‘배신의 칼날’에 난도질당한 듯 상처투성이다. 앞에서는 개혁을 내세우고 있지만 뒤에서는 행여 밥그릇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선량들의 애처로운 모습에 분개하고 있다.
19대 국회가 돛을 올렸다. 하지만 국민감정이 싸늘하게 식어있는 것을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국회는 여전히 밥그릇 싸움에만 열중이다.

이 때문인지 정치개혁을 두고 합리적인 백가쟁명(百家爭鳴)을 기대했던 국민의 인내심도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듯하다. 그 풍수지리가의 말대로 “원래 병신자리니까…”라면서 체념한 채 살아가자니 오장육부가 뒤틀릴 정도로 분노가 치민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국민만을 위하는, 그리고 국민만을 생각하는 ‘진짜 병신(炳臣·빛나는 신하)’들로 가득 차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이게 국민의 마음이다.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