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파트1]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김경민 서울대 교수는 동대문 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신진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봉제 기술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쇼핑타운 롯데피트인이 ‘신진디자이너를 발굴해 동대문 패션산업을 도약시키겠다’며 동대문에 둥지를 튼 지 6개월. 아직 뾰족한 실적은 없다. 롯데피트인이 신진디자이너의 활력에 춤을 추는 것도 아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롯데피트인의 패션산업 성장전략이 성공하려면 봉제 기술자도 육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신진디자이너만 육성하겠다는 전략은 애초부터 ‘쇼잉’에 불과했다는 지적이다.

10여년 전 동대문의 잠재력은 굉장해 보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춤꾼들이 야외무대를 장악했다. 새벽이면 지방에서 올라온 보따리 상인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뤘다. 그러나 요즘 동대문을 찾는 건 대부분 중국 관광객들이다. 한단계 더 도약하는데 실패해서다.

「리씽킹 서울」이라는 저서에서 작은 개발, 착한 개발, 공정한 개발을 통한 도시개발을 주장한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동대문의 답은 창신동(봉제공장)에 있다”고 지적했다. 무슨 말일까. 그를 만나봤다.

✚ 동대문 패션산업이 고전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많은 이들이 ‘패션=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좋은 봉제 기술자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들이 바로 디자이너의 상상을 현실화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예쁜 옷도 몸에 어울리지 않고 불편하면 팔리지 않는다. 봉제 기술자들이 중요한 이유다. 디자이너와 봉제 기술자의 협업이 잘 돼야 좋은 제품이 탄생한다. 하지만 샘플을 만들고 패턴을 만들어내던 창신동의 봉제산업이 거의 죽었다. 이런 곳에서 기술력 향상은 꿈도 못 꾼다. 봉제가 좋아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디자인도 빛을 잃을 수밖에 없다.”

✚ 봉제산업이 패션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건가.
“한때 프랑스 파리는 이탈리아 밀라노를 따라잡겠다며 디자이너를 양성했다. 하지만 성공한 디자이너들은 죄다 밀라노로 떠났다. 파리엔 디자인대로 샘플을 만들어줄 봉제 기술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대문 신진 디자이너들이 유명해지면 동대문을 떠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 옷이 그렇게 많이 팔리는데 봉제산업이 죽는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30년 전 야구점퍼 한벌의 봉제 공임이 5000원이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지금도 5000원이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선 좋겠지만 그들은 죽을 맛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유통채널에 있다. 힘을 가진 유통채널에서 단가를 낮추라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 이 때문에 신규 노동력이 부족한 건가.
“그렇다. 임금이 떨어지는데 누가 와서 일 하겠나. 기술자들은 갈수록 노령화돼 가고 있다. 창신동의 봉제산업이 가내 수공업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동대문은 가격이 아니라 디자인으로 경쟁하는 곳 아니었나.
“대부분의 쇼핑몰은 하나의 상품이 인기를 끌면 금세 디자인을 베껴 똑같은 상품을 진열한다. 그러니 남는 건 가격경쟁뿐이다. 자연스럽게 디자인의 가치가 떨어졌고, 덩달아 샘플과 패턴의 가치도 하락했다. 현재 디자인으로 경쟁하는 곳은 두산타워뿐이다. 그나마도 봉제 기술자에 대한 대우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게 문제다.”

동대문, 고부가가치 패션과 경쟁해야

✚ 두산타워는 어떤 점이 다른가.
“운영구조에 차이가 있다. APM이나 밀리오레 등은 상점을 분양하는 방식이지만 두산타워는 임대방식이다. 두산이 직접 똑같은 디자인이 나오지 않도록 차별화하고 새롭게 세팅한다. 오너십이 디자인을 다양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 그럼 모든 패션타운이 오너십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현실적이지 않은 주장으로 들린다.
“오너십이 하나일 필요는 없다. 세계 패션산업을 이끄는 뉴욕도 20세기 초반엔 파리의 디자인을 베끼는 곳이었다. 지금의 뉴욕을 만든 건 건물주, 상인,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해 머리를 맞대는 이사회와 그들만의 규약이다. 임대료가 올라 봉제 기술자들이 떠나갈 때 이사회는 이를 적극적으로 막는 한편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사회라는 오너십이 지금의 뉴욕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 롯데도 동대문 쇼핑몰 피트인을 통해 신진 디자이너를 키우겠다고 나섰다. 어떻게 보나.
“디자이너만 육성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고급 봉제, 다시 말해 샘플과 패턴을 만드는 기술자에 대한 대우가 받쳐줘야 된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중엔 재단사 출신도 많다. 그런데 지금 모두 디자이너만 찾는다. 그럼 누가 디자이너의 상상을 현실화해 줄 건가. 제대로 하려면 롯데는 봉제산업을 함께 끌어올리며 가야 한다.”

✚ 유통채널이 봉제산업을 끌어안고 갈 수 있는 방법이 뭔가.
“공정한 거래를 통해 값을 제대로 쳐주는 거다. 물론 봉제산업 종사자들의 변화도 필요하다. 유통채널에 휘둘리지 않도록 기술력을 키우고, 디자이너와 협업할 수 있는 규약을 만들어야 한다. 그들 스스로 다른 유통채널들을 끌어들여 롯데나 두산타워의 경쟁상대로 붙여 놓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 동대문이 자라나 유니클로와 같은 패스트패션과 경쟁해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 동대문의 봉제 기술력은 자라나 유니클로에 비해 뒤처져 있다. 공임이 아무리 낮다고 하더라도 패스트패션 기업의 공임보다는 높다. 동대문의 경쟁상대는 자라나 유니클로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아니라는 얘기다.”

✚ 동대문이 고부가가치 패션산업을 이끌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디자이너가 봉제 기술자와 협업하는 부티크 형식을 추구해야 한다. 롯데가 진짜 동대문 패션산업을 활성화하려 한다면 봉제 기술력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상생만 외친다면 힘들 수도 있다.”

✚ 유통이 디자이너와 봉제산업을 통제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은가.
“잘 지적했다. 백화점에 입점된 브랜드의 경우 인근에 매장을 낼 수도 없고, 세일을 할 수 없다. 그만큼 국내 유통사 빅3(롯데ㆍ신세계ㆍ현대)의 파워는 어마어마하다. 외국의 경우, 쇼핑몰을 만드는 주체(Devel oper)가 따로 있고, 그들이 상인들을 끌어 모은다. 그런데 국내 대형 유통사는 피트인처럼 디벨로퍼 기능과 함께 유통을 한다. 외국에선 볼 수 없는 국내 재벌들만의 독특한 구조다. 이런 경우 디자이너와 봉제산업까지 장악한다면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 유통사가 패션산업의 모든 걸 결정할 수 있어서다.”
 
디자이너ㆍ봉제 기술자 협업구조 필요

✚ 그럼 어떻게 막아야 하는가.
앞서 밝혔듯이 봉제 기술자들의 처우를 개선해 그들 스스로 기술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그래야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격 경쟁력이 아니라 기술 경쟁력과 품질 경쟁력이 생기는 거고, 고부가가치가 생기는 거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들도 대부분 그렇게 탄생했다. 당연히 유통업체에도 득이다. 아무래도 유통업체들이 이런 그림을 꿰뚫고 공정거래로 건전한 시장을 조성하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다.

✚ 롯데 피트인이 신진디자이너 발굴에 실패했다는 주장도 있는 듯하다.
“이제 고작 6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실패했다고 하기엔 이른 면이 있다. 롯데가 동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아직 그리 크지 않아 ‘시장잠식’에 대한 우려도 설득력이 없다. 다만 롯데 피트인 경영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초 밝혔던 대로 제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혼자서는 패션산업을 일으킬 수 없다. 두산타워와 함께 공정거래시장을 만들고, 디자이너와 봉제 기술자가 협업할 수 있는 패션문화를 만든다면 동대문에서도 충분히 명품 브랜드가 탄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김정덕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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