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3人의 ‘물류 고질병’ 해소책

국내 물류업계가 ‘공급과잉’에 시달리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IMF) 이후 해결되지 않고 있는 문제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강화하는 한편 해외시장 진출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뾰족한 실적은 아직 없다. 물류업계의 평가도 신통치 않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 서상범 실장, 권오경 교수, 신환산 전무(왼쪽부터)가 서울 한진빌딩에서 물류기업의 해외진출과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대해 논의했다.
국내 물류업계의 핵심 과제는 ‘해외진출’과 계열사로부터 받는 ‘물량 줄이기’다. 주요 물류기업의 계열사간 내부거래 비중은 80~90%에 달한다. 이들은 모기업(제조업체)으로부터 물량을 받아 성장했다. 반대로 말하면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면 성장동력이 약해진다는 얘기다. 2014년 2월부터 총수 일가 지분이 20% 이상(상장사 30%)이고, 내부거래액이 매출의 12% 이상인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 대상이 된다.

해외시장 진출도 중요하다. 규모가 작은 한국시장에서 경쟁하다 보니 공급(사업자)에 비해 수요(물량)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선 해외로 나가는 게 능사다. 국내 물류기업이 지닌 ‘숙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에선 ‘글로벌’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물류기업이 없다. 기업 역량이 부족한 것도 이유지만 정부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권오경(52)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 신환산(48) 한진 전무, 서상범(45) 한국교통연구원 물류정책ㆍ기업인증연구실 실장 등 물류 전문가 3인을 12월 23일 만나 물류기업이 안고 있는 과제에 대해 물었다.

✚ 정부가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나섰다.

서상범 한국교통연구원 물류정책ㆍ기업인증연구실 실장(서상범)
: “정책이 조금 빠른 듯하다. 시장수용범위를 감안했을 때 규제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권오경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권오경) : “일감몰아주기는 대기업이 물류 자회사에 특혜를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을 보자. 일본의 대기업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물류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지만 일감몰아주기란 이슈가 등장하지 않았다. 공정거래(계열사간 거래량 규제)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일감몰아주기의 이면엔 ‘지배구조’ 문제가 숨어 있다. 실제로 대기업 총수 일가가 물류기업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권오경 : “지배구조 문제 역시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한 대기업이 물류 합리화를 위해 자회사를 만들었다고 치자. 일반적으로 법인이 투자해 회사를 설립하는데, 핵심주주가 개인(오너 일가)인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설립 목적이 물류 합리화인지 상속이나 다른 목적이 있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규제에 나선 것이다.”

틀어진 시장 구조부터 잡아야

신환산 한진 전무(신환산) : “정부가 일감몰아주기를 규제한다고 물류시장이 바뀌지는 않는다. 오너 일가가 문제가 되는 기업의 지분을 빼고, 다른 법인을 통해 지배하는 것도 가능하다. 가려운 곳만 긁어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구조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제대로 짚어야 한다.”

✚ 구조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살펴보려면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물류시장에 일감 몰아주기라는 화두가 왜 나온 것인가.

신환산 : “공급과잉으로 공급과 수요의 밸런스가 깨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규제를 만들어 시장에서 공급과 수요를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시절(1993~98년) 규제를 모두 풀었다. 이후 시장이 꼬이기 시작했다.”

 
✚ 물류시장이 어떻게 틀어졌다는 것인가.

신환산 : “과거 운송사업을 하려면 차량 5대 이상을 보유하고, 주차장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트럭 1대만 있으면 아무나 사업을 할 수 있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IMF)를 거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물류시장으로 유입됐다. 공급이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수요는 한정돼 있다. IMF 이후 시장이 헝클어졌다는 얘기다.”

권오경 : “또 다른 시각도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물류는 만들어진 제품을 보관했다 운송하는 ‘단순 물류’를 말한다. 반면 도요타의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시스템처럼 공장생산과정 중 시기적절하게 부품을 공급ㆍ지원하는 ‘세밀한 물류’도 있다. IMF 때 공급과잉과 현재 일감몰아주기의 원인은 단순 물류였다. 이런 맥락에서 생산공정과 연결되는 세밀한 물류를 더욱 키워야 한다.”

✚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통해 ‘모기업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과거 물류기업은 그룹의 정책(단순 운송업체 역할)에 따라 운영됐다. 이 때문에 성장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서상범 : “모기업의 덫보다는 그들의 경영전략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하다. 한 대기업 A사에서 판매 물류사업을 분사한 물류 자회사를 설립했다고 가정하자. 분리된 회사지만 사실상 하나다. 지분도 화주인 A사가 100% 보유하고 있다. 만약 그 물류기업이 외부영업을 한다고 하면 A사가 좋아할 리 없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버는 것보다 자신을 잘 지원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 해외 진출도 국내 물류기업이 지닌 중요한 과제다.

권오경 : “한국시장에서만 경쟁하다 보니 공급이 너무 많다. 살길은 그 안에서 공급을 조정하는 것인데, 쉽지 않다. 다른 곳에 가서 장사를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해외에서 물류기업의 숨통을 열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쉽지만은 않다. 국내에서 수출되는 품목이 소형화됐고, 이마저도 해외공장에서 생산돼 물류기업의 물량이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 국내 물류기업 중엔 ‘글로벌’이라는 수식어를 불일 만한 기업이 없다.
✚ 종합상사와 함께 해외로 진출한 일본의 물류기업 성장전략을 벤치마킹하자는 목소리도 많다.

서상범 : “괜찮은 성장 모델이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일본 제조기업(화주)과 물류기업은 서로 신뢰를 가지고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기업간 신뢰가 부족하다. 물류기업은 해외에 진출하며 향후 5~10년을 보고 투자해야 한다. 그런데 화주가 그때까지 계약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국내 물류기업의 계약 기간을 보면 보통 3~6개월이고, 길면 1년이다. 투자에 대한 회수가 이뤄지지 않는다. 당연히 물류기업도 투자를 적당히 한다. 화주 역시 질이 낮은 서비스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상호 신뢰가 쌓이지 않는 이유다.”

신환산 : “물류업은 거점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미래를 보고 장기간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성과가 제대로 나온다. 글로벌 물류기업은 보통 5~10년 장기 계약을 한다. 하지만 한국기업은 단기성과에 집착해 계약기간을 1년보다 짧게 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이런 게 좀 허물어지고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화주ㆍ물류기업간 신뢰가 중요해

✚ 정부가 국내 물류기업을 글로벌 기업으로 육성한다고 밝혔다. 해외시장 진출에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신환산 : “민간기업이 스스로 해외 진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나라마다 상거래 구조, 통관절차 등이 달라서다. 그래서 정부 대 정부 차원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자금지원이 아니라 해외로 나가는 길을 열어주는 게 정부의 임무다.”

서상범 : “그렇다. 정부가 나서서 해외시장의 진입규제를 풀어주거나 어떻게 접근할지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최근 무역협회에서 국제물류지원센터를 다시 만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긍정적인 움직임이다.”

권오경 : “센터를 만드는 것은 분명 좋다. 하지만 목표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국제물류, 국내 운송 공정거래, 연구개발(R&D) 등 조직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그에 따른 전문가를 배치해야 한다.”
박용선 기자 brave11@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