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전락한 한국의 신기술

▲ 와이브로 기술은 참여정부가 집중 지원했던 기술이지만 MB정부 이후 조직개편과 함께 무너졌다.[사진=뉴시스]
당신은 와이브로를 쓰는가. 단언컨대 아닐 게다. LTE에 시장을 완전히 빼앗겼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이브리드차를 타는가. 단언컨대 아닐 게다.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와이브로와 하이브리드는 최고의 기술력으로 만든 제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런데 시장에선 ‘통’하지 않았다. 왜 일까.

2004년 11월, 통신시장은 시끌벅적했다. 1990년대 후반 개발이 시작된 영상통화기술이 인터넷 전화에 적용돼 상용화됐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에서도 영상통화가 가능해졌다. 일부에선 ‘IT기술의 대도약’이라는 말도 나왔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전화통화를 한다는 건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영상통화에 대한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KT에 따르면 국내 1인당 영상통화량은 월 평균 5분 미만이다. 일반 음성통화량의 10분의 1도 채 안 된다. KT관계자는 “사용량이 너무 적어 통계를 따로 잡지도 않는다”고 털어놨다. 꿈에 그리던 기술이 상용화됐지만 잘 쓰지 않는다는 얘기다. 왜 이렇게 된 걸까. KT관계자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화질이 좋지 않아서라든지 서비스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영상통화는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한데, 많은 이들이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합의되지 않은 영상통화를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사생활 보호문제 때문에 영상통화의 인기가 시들하다고 보긴 어렵다. 진짜 문제는 가격에 있다. 초기 휴대전화의 영상통화요금은 10초당 120원 가량으로 10초당 18원대를 넘나들던 음성통화요금의 6배에 달했다. 신기술이라지만 소비자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 영상통화요금은 초당 3원 정도로 1원 후반대인 음성통화요금보다 여전히 비싸다.

더구나 ‘인터넷 요금’만 내면 컴퓨터로 영상통화와 화상채팅이 가능해 영상통화의 입지가 좁아졌다. SK텔레콤과 KT가 영상통화의 장점을 부각하는 마케팅을 경쟁적으로 펼쳤지만 무선인터넷과 애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하는 아이폰의 등장으로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한 건 이 때문이다.

그래도 영상통화 기술은 아직 유용하다. 접목할 수 있는 분야가 다양해서다. 현재 영상통화 기술은 다시 3D 기술과 접목된 3D 영상통화로 진화했다. LTE 기술의 진화와 함께 초고속으로 대용량 데이터를 좀 더 쉽고 빠르게 전송할 수 있게 되면서다. 하지만 이 역시 전체 시장을 키우는 일에 소홀하면 영상통화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애물단지로 전락한 기술은 또 있다. 와이브로 기술이다. 와이브로는 2000년대 초 삼성전자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중심으로 개발된 국산 이동통신기술이다. 속도는 3G(WCDMA)보다 2배 이상 빨랐고, 시속 120㎞로 달리는 차 안에서도 인터넷을 할 수 있었다. 2006년 와이브로의 세계 최초 상용화는 대단한 이슈였다.

하지만 지금의 와이브로는 계륵 신세다. 유럽이 주축이 돼 만든 LTE와의 경쟁에 완전히 밀렸기 때문이다. 훨씬 앞선 것으로 평가받은 기술이 찬밥신세로 전락한 이유는 뭘까. IT 전문가 중 상당수는 정부 탓으로 화살을 돌린다. 먼저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의 조직개편이 문제의 단초였다는 시각이 많다.

참여정부는 정보통신부를 컨트롤 타워로 두고 차세대 성장동력 사업으로 와이브로 사업을 전폭 지원했다. 하지만 MB정부가 들어선 후 정보통신부의 ICT 관련 업무가 지식경제부(IT산업지원), 방송통신위원회(방송통신), 문화관광부(콘텐트), 행정안전부(정보화와 정보보호) 등으로 분산되면서 엉망진창이 됐다는 거다. 
 
애물단지 전락한 와이브로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시절인 2011년 “정통부는 CDMA 도입이나 초고속인터넷 등에 선제 대응해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며 “하지만 IT컨트롤타워가 없는 MB정부에선 제2의 IT부흥기임에도 IT산업은 뒷걸음질쳤다”고 지적한 건 이 때문이다.

통신사업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것도 문제였다. SK텔레콤과 KT는 당시 3G망 투자에 한창이었고, 너무 일찍 나온 와이브로는 3G를 잠식할 수 있었다. 아까운 설비를 썩힐 수 없었던 거다. 게다가 와이브로 망 투자비용보다 와이파이 투자비용이 가격 면에서 더 쌌다. 결국 와이브로 투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기술적으로 음성서비스 지원이 가능하고 식별번호를 부여할 수 있는 와이브로가 아직도 ‘휴대인터넷’ 영역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가 뒤늦게 와이브로를 살리겠다며 2012년 453억원의 투자를 결정했지만 승패는 갈린 후였다. 그러는 동안 LTE는 시장을 넓혀 통신시장의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이동통신사는 물론 와이브로 원천기술 개발자인 삼성전자조차 와이브로보다 LTE에 집중하고 있다.

▲ 하이브리드 차량이 나온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시장 반응은 신통치 않다.[사진=뉴시스]
‘혁신’이란 이름으로 등장했지만 국내시장에서만 찬밥신세로 전락한 기술이나 제품도 있다. 바로 하이브리드 자동차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 신규 등록한 하이브리드 자동차(휘발유+LPG)는 총 1만5523대였다. 전년 동기 대비 163대 줄었다. 같은 기간 일반 자동차의 신규 등록대수는 60만~70만대였다. 국내시장에 하이브리드차가 굴러다닌 지 10년이 흘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공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실 하이브리드차의 기술적 경쟁력은 상당하다. 하이브리드차가 자동차 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것이라 예상은 과장이 아니었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일본에선 2대 중 1대가 하이브리드일 정도로 인기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도요타가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판매한 하이브리드차만 해도 600만대에 이른다.

국내에서만 유독 하이브리드차가 잘 팔리지 않는 이유를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하이브리드차를 타는 건 연비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운전자들은 급출발과 급정거를 많이 하기 때문에 하이브리드차의 연기개선 효과가 뛰어나지 않다. 이 때문에 연비개선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낀 하이브리드차 소유자가 휘발유나 디젤로 차량을 바꿨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차 판매부진을 운전습관 탓으로 돌리기엔 아쉽다는 지적도 있다. 차 가격이 만만찮아서다. 세제지원으로 혜택을 보기는 하지만 기본가격이 일반 차량보다 15~20%까지 높아 혜택이 피부에 와닿기 어렵다. 한국도요타가 지난해 신형 프리우스와 뉴 캠리 하이브리드의 가격을 낮춘 이후 소비자 만족도와 판매대수가 올라간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선 돈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며 “때문에 비싼 가격은 판매기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기술과 제품도 가격조절에 실패하면 찬밥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더스쿠프 그래픽]
R&D 만큼 시장형성도 중요해

물론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면 기술개발이 어려워 실패할 수 있다. 제품에 따라선 시장의 반응을 끌어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잘못된 정책 탓에 혹은 기업의 경제논리에 밀려 실패한 기술과 제품은 다르다. 어쩔 수 없는 실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언급한 것처럼 기술개발이나 상용화까지 모두 앞섰던 와이브로 기술을 그냥 버려야 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낭비다. 와이브로 개발에 어마어마한 투자금이 쓰였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가 올해 책정한 연구개발(R&D) 투자비용은 지난해(16조8777억원)보다 5.1% 늘어난 17조7358억원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R&D 투자비용은 1인당 국민총생산(GDP) 대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스라엘 다음으로 높다. 하지만 투자 대비 효과는 신통치 않다. 기술무역수지 비율(기술수입액 대비 수출액)은 OECD 평균치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R&D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관련 시장을 만드는 정책까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는 얘기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