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주의 쓴소리 바른소리

▲ 정영주 더 스쿠프 발행인
그리스 재정위기는 물론 어제 오늘 불거진 일이 아니지만, 혹자가 말하듯 그리스인들이 게으르고 놀기를 좋아해서 생긴 것도 아니다. 피상적으로 보면 그리스의 GDP(국내총생산)에 비해, 그리고 이에 비례하는 세수에 비해, 정부가 과다한 재정 지출을 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볼 수 없다. 더구나 그 지출 가운데 놀고 먹는 사람들에 대한 지출 규모, 까놓고 말하면 복지 지출의 규모가 커 재정 위기에 빠졌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실을 왜곡하는, 국내 보수언론들이 자기 독자들을 기만하기 위해 쳐놓은 아전인수식 주장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우선 그리스의 1인당 국민소득 대비 정부 복지 지출의 비중은 21.3%로 유로존 17개 회원국 가운데서 가장 낮다. 많기로는 스웨덴 27.3%, 덴마크 26.1%, 핀란드 24.9%의 순이다. 단순히 복지 지출이 많아서 망한다면 스웨덴부터 망해야 한다.우리도 속해 있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 국가들의 평균은 19.3%, 우리나라는 7.5%다.

이를 보고 우리나라는 복지 지출이 적어 재정이 건전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우리나라의 재정 상태가 건전재정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복지 지출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리면 박재완 기재부장관의 주장처럼, 우리도 재정 위기에 빠질 것이라는 논리는 선입관에 사로잡혀 통계적 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재정 악화는 토건사업에 돈을 낭비한 때문

색안경을 벗고 보면, 강부자 세금 감면과 4대강 등 생산성이 지극히 낮은 토건사업에 재정을 낭비한 것이 재정 건전성을 해친 주범이다.
그리스는 복지 지출이 많아서 위기에 직면했다는 비판은 사실관계부터 틀렸다. 복지 지출을 늘리면 그리스 꼴이 될 것이라는 비판 역시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리스 재정 위기의 원인은 무엇인가. 왜 국가 부채가 누적될 수 밖에 없었는가. 한마디로 경제의 낮은 생산성 즉, 투자자본의 효율이 저조했기 때문이다. 그 저효율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리스 관료들의 부패도 한몫했다고 한다.

외국인에 의한 투자는 예상이윤율이 저조해 기피되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 자본들도 더 투자효율이 좋은 지역으로 이탈했다. 그 결과 십여년이 넘게 세수를 포함한 재정 수입이 지출을 따라가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국가간 자본이동의 자유를 제한없이 보장하는 체제다. 무정부적 시장을 무대로 약육강식, 승자독식이 벌어지는 카지노 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이기도 하다.

유로존 가입 이후 그리스는 미국, 일본과 같은 나라들과는 달리 통화주권(발권력)이 없어졌다. 말하자면 그리스 정부로서는 경기대책에서 통화의 확대 공급이 불가능해지는 등 가용정책수단이 제한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 정부는 국채 발행을 통한 재정 지출 확대정책 밖에 쓸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유효수요를 늘려봤지만 실물투자를 자극하지 못했다. 미국·일본·영국도 그렇지만 유로존 전체에서도 경제의 실물부분으로 투자돼야 할 돈이 금융시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리스의 실업자는 늘고 그 결과 세수감소, 재정적자의 누적으로 그리고 급기야는 국채수익률의 상승(국채 시세 하락)으로 나타났다.

국내외 투자가의 외면으로 국채 유통금리가 어느 한계를 넘어서자 국가의 대외신용 위기가 발생했다. 국채의 차환발행이 어려워지고 원리금 상환 불능 사태가 예견됐다. 그리하여 그리스 사태, 그리고 유로존의 위기가 불거진 것이다.

지난해부터 사실상 국가 부도에 빠져있는 이 나라에 대해 미·중·일 뿐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여간 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 김석동 금융위원장도 대공황을 언급하고, 현정권 들어 경제의 밑그림을 입안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강만수 KDB금융지주 회장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톤으로 대공황에 버금가는 체제의 위기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오늘날의 세계 경제가 공황적 위기상황임을 강조하는 것은 그래도 그리스처럼 우리나라는 아직 디폴트 위기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실이 아니므로 무시하더라도 그리스사태는 유로존 전체의 위기와 직결돼 있고 우리나라의 수출이나 유로자본의 국내 증시 유출입이 유로존의 향후 경기 향방과 직·간접적으로 밀접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려는 의도도 담겨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에는 문제가 많다. 우선은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려는 기술관료적 사고방식이다. 오늘날의 세계 경제 위기는 정치의 혼란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거꾸로다. 경제의 위기가 정치의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도 경제위기는 도외시하고 정치의 안정이 위기의 해결책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오늘날의 경제 위기가 2008년 리먼사태나 1998년 IMF 외환위기 보다 그 해결이 더 어려운 이유가 당시에는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있었으나 오늘날 그리스의 혼란한 선거양상에서 보듯, 강한 리더십이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말은 강한 리더쉽만 있다면 위기가 닥치더라도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극복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말로 들린다. 정치적 리더쉽을 탓하기 이전에 어떻게 사태를 해결할 것인지 대안이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위기 대처에 무슨 대안이 있는가. 아직 불똥이 떨어지지 않았으므로 아무 말이나 하면 안된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과연 대처방안이나 해결방향은 갖고 있는 것일까.

미국처럼 ‘양적완화’를 통해 실물투자를 자극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그리스라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필자가 보기로는 국가부채와 재정지출의 연동을 끊어야 한다. 재정의 운용은 그것대로 따로 결정해야 한다. 경기회복을 위해,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재정지출을 더 늘리되 그 재원을 지금보다는 다른 방법, 예컨대 부자증세 등과 같은 방법으로 조달해야 한다. 아래는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시리자(SYRIZA)’가 주장하는 해결책 가운데 일부로 시사하는 바가 많다.

“…우리는 현재의 채무 위기가 부자들이 조세부담을 회피하고 공공기금을 횡령하며, 과도하게 군수물자를 사들인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의 사항을 선언한다.
* 그리스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모든 부채에 대해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한다. 지금까지 누적시켜온 채무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도록 (채권국 은행들 및 트로이카)와 다시 협상한다.
* 이 과정에서 사회보험기금을 조성하고 소액예금자를 보호하는 조치를 마련한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 지불유예, 감사(audit) 등 이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 유럽중앙은행의 역할은 바뀌어야 한다. 유럽 민간은행들의 각종 투기적 금융상품을 금지시켜야 한다. 유럽 전역에서 부유세, 금융거래세 및 이윤세를 도입해야 한다.…”

이런 그리스인들의 문제의식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유력 경제인 가운데 한사람인 강만수 KDB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그는 대공황에 버금가는 ‘세계적 경제위기’의 대안을 묻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하고 있다.

“…선진국은 생산성을 올려야 하고, 중국 등 신흥국은 투자와 소비를 늘려야 하는데 두 가지가 말처럼 쉽지 않다. 유럽이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 임금에서 더 일하거나, 현재처럼 일하면서 임금을 낮추거나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이건 경제정책의 범위를 벗어난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데 정치인들은 계속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 침체하는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해법이 모색돼야 할 때다.
세계적 경제위기 시대를 맞아 우리나라는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일까. 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강만수 회장 답변 이외에는 아마 별 수단은 없는게 아닐까. 즉, 임금을 동결한 상태에서 더 일하거나, 현재처럼 일하면서 임금을 낮추거나 하는 것이다.

짐작컨데 이것이 현정부의 위기대책인 것 같다. 과연 이런 대책으로 오늘날의 세계적 공황사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또 이런 문제의식과 철학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 유효한 위기극복 대책이 나올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는 판단이다.

기술관료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그리스는 이런 논리를 일찌감치 뛰어넘었다. 그리스 정부나 그리스 민간의 디폴트를 두려워하는 쪽은 초국적의 1% 부자들이거나 금융기관등 금융자본이다. 그리스 국민들은 이미 이런 사태가 ‘금융자본의 전 세계적 서민수탈’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 같다.

이는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유력 경제인들의 의식과는 격세적 차가 있다. 이 점에서 그리스는 우리나라의 99%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1998년 IMF 외환위기로서 끝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지난 세기 내내 계속돼 온 조국근대화, 선진국 건설 등의 기만적 구호 아래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노동자, 농민, 서민이 21세기 들어서 지금까지도 또 다시 경제위기 해결의 희생양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희극적인 비극이다.

KDB금융지주 강 회장의 해법은 전술한 그리스인들의 위기해법에 비춰보면 어딘지 꽉 막혀 있으며 전시대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지금의 그리스에서는 국가부도(디폴트)를 주장하면서 분신자살을 택하는 노인들도 있는 시대가 아닌가.
정영주 더 스쿠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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