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사태와 재스민 혁명의 상관관계

글로벌 시장은 왜 크림반도에 민감한가.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크림반도가 시끄러우면 우크라이나의 곡물가격이 올라갈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곡물수입국 중동과 아프리카에선 ‘제2의 재스민 혁명(중동 민중저항)’이 일어날 수 있다. 모잠비크 정부가 빵 가격을 인상하자 민중소요사태가 터진 것처럼 말이다.

▲ 우크라이나 사태는 곡물과 에너지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사진=뉴시스]
악재가 발생하면 금융시장은 초기에 위험성을 모조리 반영하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위험성은 완화되고, 금융시장은 악재에 적응한다. 이런 패턴은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3월 3일부터 글로벌 금융시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군사적 충돌 가능성, 서유럽의 에너지 수급, 곡물가격 급등 등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불거질 수 있는 위험성이 초기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크라이나 사태는 3가지 문제가 뒤섞였다. 정치적 문제, 유동성 리스크, 지급불능 위험이다. 문제가 해결되려면 시간이 상당히 걸릴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대립이 진정되더라도 우크라이나 경제는 외부의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외부로부터 2015년까지 350억 달러(약 37조2750억원)를 지원받아야 한다. 구제금융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디폴트(채무상환불이행) 가능성은 낮지만 구제금융을 받는 과정에서 강도 높은 구조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과 맞물려 금융시장이 변동성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초기에 반영됐던 위험과 불안은 점차 완화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문제의 해결보다는 타협의 실마리를 찾는 과정에서 안정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 증시도 빠르게 안정을 찾을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자세히 살펴보자. 3월 1일 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일대를 장악했다. 이는 국내 정치문제에 국한됐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글로벌 금융시장 사태로 확산됐음을 의미한다. 이로 인한 금융시장의 충격은 러시아가 가장 컸다. 동유럽과 서유럽 역시 영향을 받았다.

▲ [더스쿠프 그래픽]
금융시장이 요동친 건 3월 3일이었다.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러시아와 동유럽의 주가와 환율이 크게 떨어지고, 상품가격은 급등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우크라이나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거나 장기화될 경우 금융시장보다는 곡물과 에너지 시장에서 문제가 촉발될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에 대한 대외채무가 높아 금융시장의 리스크가 러시아와 동유럽에만 한정된다. 반면 곡물은 중동ㆍ북아프리카ㆍ아시아, 에너지는 서유럽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는 우크라이나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유럽의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는 농업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를 차지한다. 2012~2 013년 곡물 수출량은 3190만t으로 세계 6위다. 생산량 대비 수출 비중은 48%나 된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원자재 수송 통로를 갖고 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금융시장의 불안이 곡물가격 변동으로 이어졌다. 밀 선물에 대한 비상업순매도폭은 올 1월 말보다 축소됐다. 가격은 7.8%나 상승했다. 우크라이나로부터 곡물을 수입하는 중동ㆍ북아프리카ㆍ아시아는 직격탄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곡물ㆍ에너지 직격탄

그러나 우크라이나 사태로 급등했던 가격은 정상화될 전망이다. 곡물가격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부터 이미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2월 중국이 식량정책을 발표하면서 곡물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그렇다면 금융시장이 우크라이나의 곡물가격 인상과 수급 불균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뭘까.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2010년 흑해지역은 극심한 가뭄으로 곡물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그해 8월 러시아는 연말까지 수출을 금지했고, 우크라이나는 같은 해 10월 수출 쿼터를 전년도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했다. 수출제한조치가 이뤄지기 전을 기준으로 2010년 연말 국제 밀과 옥수수 선물가격은 각각 63%, 73% 급등했다.

▲ [더스쿠프 그래픽]
이로 인해 타격을 받은 것은 곡물 수입국인 중동과 아프리카였다. 모잠비크 정부가 빵 가격을 30% 인상하자 민중은 소요사태를 일으켰다. 튀니지는 고물가와 정권부패에 대항하는 시위(재스민 혁명)가 일어났고, 이집트는 주식인 아이쉬(Aish) 가격 인상과 독재정권에 대한 불만을 품은 민중저항이 발발했다. 2010년 곡물파동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민주화 시위로 이어진 셈이다. 금융시장이 곡물가격과 수급 불균형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현재 우크라이나 상황이 2010년 중동 민주화 당시와 흡사하다는 거다. 중동 민주화가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주목할 점은 친유럽과 친러시아 세력 간 내분이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천연가스) 독립문제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과 러시아가 생산하는 천연가스는 17.6%에 달한다.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수입하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산 가스의존도가 50%나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우크라이나 사태가 천연가스 가격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크다. 두 나라의 분쟁이 우크라이나의 파이프라인을 통해 러시아산 가스를 공급받는 유럽국가의 불안으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이미 유럽은 2006년과 2009년 가스공급 중단사태를 경험한 바 있다. 2009년 1월 7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유럽행 가스를 유용했다고 비난하며 가스공급을 중단했다. 당시 가스 소비량의 약 4분의 1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었던 유럽국가들은 홍역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EU가 중재에 나섰고, 가스공급 중단 6일 만인 1월 13일 가스공급이 재개됐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가격 인상에 대응하기 위해 파이프라인 통관료를 인상할 수 있다. 통관료가 인상되면 유럽국가의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유럽지역의 가스공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천연가스 공급불안 파장 제한적

하지만 러시아의 천연가스 무기화 전략은 단기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현재 러시아의 금융시장이 좋지 않은 데다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주변국가의 의존도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의 주가가 하락하자 3월 3일 러시아 MICEX(모스크바은행간외환거래소)지수는 12%나 하락했다. 2008년 11월 이후 최고 기록이다. 루블화 환율마저 올 들어 11.3% 급등하자 3월 3일 중앙은행은 기존 기준금리를 5.5%에서 7%로 인상했다. 이는 러시아의 경제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보여준다.

▲ [더스쿠프 그래픽]
우크라이나가 디폴트 위험에 처하면 우크라이나 기업과 우크라이나 정부에 재정을 지원한 러시아 은행들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9년 석유공급 중단을 경험한 가스 수요 국가들은 현재 2개월 이상 비축분을 보유한 상태다. 가스 공급처도 여럿 확보했다. 이런 이유로 과거와 달리 러시아가 장기적으로 분쟁을 끌고 나가기는 여의치 않을 전망이다.

다행히도 3월 4일 러시아 훈련군이 철수한 이후 금융시장은 안정세를 회복했다.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의 일보 후퇴가 우크라이나 사태가 해결됐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올 5월 25일 예정된 대통령 선거까지는 정치불안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서다. 앞길이 구만리요 눈앞은 첩첩산중이다.
오승훈 대신증권 연구원 oshoon99@daish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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