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의 생각하는 골프

대한민국 스포츠는 ‘나홀로 집에’처럼 주위의 도움이 없는 환경에서 혼자 힘으로 세계를 들썩인 경우가 많다. 그런 케이스를 따진다면 골프처럼 할 말이 많은 종목도 없다. 대한민국 골프는 선수는 세계 최강이지만 정책적으로는 세계 최후진국으로 불린다.

어린이 무용담을 그린 영화 ‘나홀로 집에’는 대박이 나서 무려 4편까지 나왔다. ‘스타워즈’ ‘람보’ ‘터미네이터’ 못지않은 흥행작이다. 여행을 떠나는 부모가 깜빡해 홀로 버려지게 된 어린이는 각 편마다 도둑ㆍ강도ㆍ테러범 등 업그레이드된 상대를 혼자 기지를 발휘해 이겨낸다. 제목 그대로 ‘혼자서도 잘해요’다. 우여곡절 끝에 부모의 품에 다시 안기게 된 주인공은 부모를 원망하는 등 할 말이 많지만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모든 것을 이해한다.

대한민국의 스포츠가 꼭 이런 꼴이다. ‘우리의 여왕’ 김연아 신드롬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요즘이다. 김연아 성공 스토리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지원조차 없었던 시절’에서 출발한다. 피겨는 극히 일부만 하고 있는 낯선 종목이었다. 당연히 정부나 체육계에서도 육성종목으로 지정하지 않았다. 후원자와 빙상연맹의 얼마간의 보조금 등으로 근근이 대회에 참가하다가 세계 정상에 섰고,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 활짝 꽃을 피웠다.

▲ 국내에는 골프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거의 없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2의 김연아는 없고, 없었다. 1960년대 초 김기수란 프로복서가 있었다. 1966년 WBA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이 되면서 온 나라가 복싱 신드롬에 휩싸였다. 복싱경기가 열리는 장충체육관은 인산인해였다. 당시의 복싱 신드롬은 김기수 단 한명이 해낸 것으로 지금의 김연아 경우와 비슷하다.

대한민국 스포츠는 ‘나홀로 집에’처럼 주위의 도움이 없는 환경에서 세계를 들썩인 경우가 많다. 김기수ㆍ김연아 외에 양궁 김수녕, 수영 박태환, 여자하키 등이 그 예다. 대체 멤버나 2인자조차 없이 딱 한명(한 팀)이 해낸, 극단적인 엘리트 스포츠 형태다. 이정도가 되면 외국의 경우, 국민의 상당수가 복싱을 한다거나, 전국 동네마다 수영장이 널려 있거나, 공간만 있으면 활을 쏜다고 법석을 떠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선수 따로, 일반인 따로다.

생활체육화가 돼야 하는데 저변이 없으니 순식간에 인기가 시들해지거나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나홀로 집에’ 케이스를 따진다면야 골프만큼 할 말 많은 종목도 없을 것이다. 1998년 박세리가 느닷없이 세계 최고권위의 양대 타이틀인 US여자오픈과 LPGA챔피언십을 차지하면서 16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여자골프는 세계 최강이 됐다. 그러나 박세리 때는 물론 지난 16년 동안 골프에 대한 정책적 배려는 거의 없었다. 골프 관련 정책 입안자조차 골프를 치면 자신의 공직 생명도 끝장나는 게 우리나라다. 대한민국 골프가 선수로선 세계 최강이지만 정책적으로는 세계 최후진국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스포츠 스타 통한 생활체육 활성화

스포츠는 국민을 건강하게 만든다. 체력은 국력이다. 매우 당연한 말이다. 전 국민이 골프를 치면 어떤가. 그러다가 양궁도 하고, 배드민턴을 치고, 겨울에는 피겨, 쇼트트랙 링크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스포츠 저변확대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저변확대 등 정책 개선이 될 수 있을까. 올 2월 말 대한민국 체육정책 담당인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한 세미나의 기조강연에서 “스포츠를 정책수단으로만 활용했던 과거에서 탈피해 국민이 참여하고 즐기는 스포츠, 나아가 경제적 가치ㆍ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 맞춤형 스포츠로 탈바꿈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해야한다”고 역설했다.

황홀한 로드맵이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존재하지 않는 이상향)를 듣는 것처럼 거북스러웠다. 세계 스포츠사에 불세출의 스타를 정부 입장에선 코도 안 풀고 공짜로 얻어놓고 하늘이 내려준 저변확대의 기회를 되레 이상한 형태의 규제와 정서를 유발해 억제하는 대못이 너무나 많이 박혀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병진 더스쿠프 고문 bjlee284120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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