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현의 Tax Class

▲ 소득 재분배를 강조하면서 간접세를 올리라는 OECD의 주장은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다.[사진=뉴시스]
OECD와 IMF는 ‘소득 불평등’이 ‘경제성장 정체의 주범’이라며 부유한 개인과 다국적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걷어 재분배정책을 펼칠 것을 주장한다. 반면 영미권 자유주의자들은 “경제성장 정체는 과도한 정부지출 때문”이라며 OECD와 IMF의 주장을 반박한다. 둘 다 근거는 있다. 우리는 누구의 말을 새겨들어야 할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6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2년 34개 회원국의 부유층 상위 10% 평균 소득은 빈곤층 하위 10% 평균 소득의 9.6배”라고 밝혔다. 1980년대 7배, 2000년대 9배보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더 커졌다. 소득 불평등 심화로 1990〜2010년 OECD 19개 회원국의 누적 경제성장률도 4.7%포인트 낮아졌다고 이 보고서는 분석했다. OECD는 이에 대한 해법으로 각국 정부가 부유한 개인과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증세를 통해 재분배정책을 추진하라고 권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980년부터 2012년까지 전 세계 159개국의 자료를 분석해 비슷한 결과를 내놨다. 소득 상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어나면 경제성장률이 0.08% 줄어드는 반면, 소득 하위 20%의 소득이 1%포인트 늘어나면 5년간 경제성장률을 0.38% 끌어올린다고 주장했다. 반면 영미 자유주의자들은 “과도한 정부지출이 ‘저성장’을 부른 예가 부지기수”라고 주장한다.

투자자문 분석가 매튜 쉔펠트(Matthew Schoenfeld)는 6월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칼럼에서 “OECD 국가 중 가장 불평등한 5개 나라(3.9%)는 2011~2013년 사이 전체 평균(0.84%)보다 약 5배 빨리 성장했다”며 “그리스는 재분배정책 관련 지출을 늘려 1999~2012년까지 지니계수를 6%가량 낮췄지만, 국가 경제는 2010년 이래 무려 20% 이상 침체됐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995~2012년 사이 OECD 회원국 중 GDP 대비 정부지출을 늘린 나라들은 정부지출을 줄인 나라들에 비해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약 30% 낮았다.

두 주장 모두 논리적인 근거는 충분하다. 문제는 OECD와 IMF의 진단과 처방이 오롯이 ‘증세’에 초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OECD는 ‘성장을 향한 2015 경제정책개혁’이라는 자료를 통해 “한국이 성장 동력을 되찾으려면 근로소득세는 낮게 유지하고, 소비세나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를 올려야 한다”고 권고했다. IMF는 6월 발표한 ‘공공부채는 언제 감축돼야 하는가?’라는 보고서에서 국가채무 위기가 낮은 나라들은 긴축재정이 오히려 경제에 해롭다고 주장했다. 높은 수준의 국가부채가 경제성장에 해가 된다는 전통 경제학과 상충된다.

그러면서 IMF는 2014년 5월 기준, 한국의 재정 여력이 OECD 국가 중 노르웨이에 이어 두번째로 괜찮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는 이처럼 양분된 주장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OECD 등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추정하는 한국의 장기 경제성장률은 1%대다. 고령사회와 초고령사회로 이행하는 속도는 프랑스의 5~6배다. ‘잃어버린 20년’을 앞서 경험한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도 강하다.

 
더구나 한국은 OECD와 IMF가 지적하는 ‘불평등’과 영미 자유주의자들의 ‘정부비효율’ 이외에도 광범위한 특권계층, 대기업편중 산업정책, 지하경제(종교계ㆍ의료계ㆍ지대소득자 계층 포함), 정부불신, 수준 낮은 정치 등 선진국 클럽 멤버들이 일찌감치 해결한 문제들을 여전히 품고 있다.

반면 납세자들은 과도하게 많은 조세를 부담한다. 자본소득에는 대체로 관대하고 근로소득자에게는 세 부담이 집중돼 있다. 이런 기형적인 구조는 근로가구의 구매력을 위협하고, 막대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과 사교육비 등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가계소비지출을 낮춰 경제성장을 위협한다.

OECD와 IMF의 ‘불평등 프레임’은 반가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프레임과 조언이 한국의 정확한 현실인식에 기초한 것인지는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한국이 지나치게 일찍 선진국 클럽에 가입해서다. 여전히 토목예산을 잘 끌어오는 보수 정치인과 ‘합리적이고 투명한 공동체 경영’이라는 과제를 협량한 집권욕으로 오해하는 진보 정치인이 대우를 받는 나라 아니던가. 
이상현 납세자연맹 정책전문위원 master@sustai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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