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실종일기」

▲ 서승환 지음|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여기 마감이 무서워 아예 집을 나가버린 작가가 있다. 아즈마 히데오의 「실종일기」는 마감 스트레스 때문에 가출해서 노숙 생활을 한 저자의 실제 경험담을 그려낸 만화다. 아즈마 히데오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쓰이는 ‘미소녀’ 캐릭터의 원형을 창조했다고 평가받는 대표적 원로 만화가다. 그는 1970~1980년대에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를 노숙자 신세로 만든 건 그 폭발적 인기로 인한 과중한 노동과 겹치기 마감의 스트레스였다. 「실종일기」는 귀여운 그림으로 작가의 노숙 체험기를 마치 ‘노숙하는 법 가이드북’처럼 자세하고 코믹하게 그려낸다.  상식적으로 노숙 생활이라는 게 결코 즐거울 리 없다. 눈 내리는 한겨울의 야산에서 낙엽에 뒤덮여 잠을 자고, 주택가 쓰레기통에서 찾아낸 음식물 쓰레기로 배를 채우며, 슈퍼에서 내버리는 식재료를 훔쳐 먹는다.

자판기 밑을 막대기로 휘저어 긁어낸 10엔짜리 동전을 모아 싸구려 컵술을 사 마시고, 공원 수돗가에서 몸을 씻으며, 폭력배의 인신매매 표적이 되기도 한다. 경찰이 나타나면 괜히 두려움에 떨고, 야산에서 혼자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하기도 한다. 행인들의 시선도, 동네에서 키우는 개 짖는 소리조차 지붕 없이 사는 노숙자에게는 거대한 공포로 다가온다.

작가가 유명 만화가라는 걸 알아본 경찰 덕분에 아즈마 히데오의 노숙 생활도 막을 내린다. 하지만 그는 또 가출을 하면서 육체노동 체험담이 이어진다. 또다시 노숙을 하며 떠돌던 작가는 우연한 기회로 가스 배관공 일을 하기 시작한다. 가스회사 사보에 익명으로 4컷 만화를 연재하기도 한다. 아무도 정체를 알아보지 못했다나.

일하면서 만난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어느 한구석이 망가진 사연 많은 양반들이다. 마치 작가처럼. 배관공 일을 하며 노숙생활로 망가진 몸을 회복하고, 돈도 벌고, 육체노동의 위대함을 깨달으며 제대로 된 사람으로 갱생하는가 싶더니 웬걸, 마지막 에피소드로 넘어간다. 알코올 중독자 재활센터 체험담이다. 이쯤 되면 ‘구제불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실종일기」는 단지 한 예술가의 해괴한 인생 경험담에 머무르지 않는다.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네가 알아?” 하는 식의 뒤틀린 불행 자랑은 더욱 아니다.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극도로 정서가 불안한 노숙자이자 알코올 중독자로 살며 겪은 기막히고 잔혹하고 때로는 슬픈 이야기들을 시종일관 밝고 가벼운 코미디로 그린다.

멀쩡히 살던 사람이 노숙자가 된 사연이 있겠지만 작가는 그저 원고를 하기 싫었다고만 할 뿐이다. 「실종일기」에서 자기 연민과 정당화는 없다. 변명을 하지 않는 것만큼 큰 반성도 없을 것이다. 엉망진창 노숙자 생활을 코미디로 그려냄으로써 작가는 자신이 얼마나 망가진 어른이었는지를 반성하고, 동시에 노숙인과 알코올 중독자들의 생활상을 독자들에게 알린다.
이진 소설가 elbbubjin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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