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소비 시대

▲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이어 'K-세일데이' 행사가 진행 중이다. 이름만 빌려왔을 뿐 콘텐트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블랙프라이데이(11월 27일)와 사이버 먼데이(30일), 크리스마스로 이어지는 미국의 쇼핑 축제가 막을 올렸다. 미국 소비자들은 추수감사절 이튿날인 ‘블프’에 연중 최대폭의 가격할인에 나선 상점들을 찾아가 물건을 사들인다. ‘사먼(추수감사절 다음주 월요일)’은 블프를 놓친 사람들이 온라인 할인판매를 이용하는 날이다.

11월 27~30일 적지 않은 한국인들도 위 쇼핑 대열에 합류했다. 해외 직접구매(직구)다. 직구족族은 인터넷과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점차 중장년층으로 확산되면서 구입품목도 의류ㆍ신발ㆍ가방ㆍ서적 중심에서 화장품ㆍ음식료품ㆍ가전제품ㆍ통신기기ㆍ자동차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바야흐로 ‘국경 없는 소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소비시장도 미국ㆍ중국의 G2가 주름 잡는다. 중국 최대의 쇼핑 이벤트인 광군제光棍節(싱글데이)는 11월 11일 세계가 놀랄 신기록을 쏟아냈다. 주최사인 알리바바는 이날 하루에만 912억 위안(16조49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1이 네 개 겹친 싱글데이를 ‘독신자에게 선물을 사주는 날’로 마케팅해 주목을 끈 결과다.

수출이 감소하고 내수가 부진해 경제가 기진맥진하는 판에 그나마 남은 소비여력마저 블프와 광군제 등 해외 쇼핑에 빼앗기고 있으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값 싸고 괜찮은 상품을 찾아 태평양과 만리장성을 넘는 올해 직구 총액은 지난해보다 20~30% 불어난 2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라고 마냥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지난 10월 정부 주도로 처음 펼친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에 이어 한 달 만에 다시 ‘K-세일데이(11월 20일~12월 15일)’ 행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름만 빌려왔을 뿐 콘텐트가 너무 빈약하다. 유통업체가 미리 확보해 놓은 물건을 조금 싸게 파는 정도로는 직구의 큰 할인폭에 익숙한 젊은 소비자의 시선을 돌리기 어렵다. 소비자도, 정부 눈치를 보며 들러리로 참여한 유통업체도 불만이다.

이미 백화점의 연간 세일기간이 100일에 이르는 판에 여느 세일과 비슷한 수준으로 판매해서 먹혀들 리 없다. 미국 블프와 중국 광군제 사이에 끼어 애매한 콘셉트로는 통하지 않는다.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만 움직이는 반쪽 이벤트로는 블프에 마음을 빼앗긴 국내 소비자를 지키기도 어렵다. 제조업체까지 적극 참여하는 한국형 쇼핑 축제를 만들어야 한다. 관官이 주도하는 보여주기 이벤트에서 벗어나 민간 중심으로 진행하자. 명칭도 국적 불명의 용어를 갖다 쓰지 말고 한류 스토리를 입혀 우리 식으로 짓자.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슬로건에 부끄럽지 않도록.

블프가 오프라인 쇼핑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 비해 광군제는 전자상거래 전용 쇼핑 행사다. 중국 기업 외에 25개국에서 5000여 브랜드가 참여했고, 지구촌 230여개국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했다. 특히 전체 거래의 68%가 모바일을 통해 이뤄졌다. 홈쇼핑이나 인터넷쇼핑을 넘어 모바일 구매가 글로벌 소비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 같은 소비혁명은 알리바바가 온라인쇼핑몰 티몰, 택배 알리익스프레스, 결제 서비스 알리페이 등을 통해 전자상거래 생태계를 꾸준히 구축해온 덕분이다.

더 늦기 전에 블프와 광군제의 대항마를 키워야 한다. 스마트폰과 화장품, TV를 잘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글로벌 유통플랫폼 구축이다. 지난해 국내 소비자가 해외 사이트에서 사들인 직구 총액은 나라 밖으로 판 역逆직구보다 35배 많았다. 이제 모바일 구매와 결제는 글로벌 소비의 대세다.

우리도 미국ㆍ중국처럼 원스톱 결제 대상을 늘리고 제품과 결제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 관련 빅데이터를 개방하고 공유해 기업들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개발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을 갖고만 있으면 뭐 하는가.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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