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고난의 벽을 넘어…

▲ 실패했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사진=뉴시스]
급여생활자의 자리는 공항 출국라운지와 비슷하다. 수많은 사람이 출국라운지에서 북적거리지만 공통점은 하나. 누구나 반드시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점이다. 시계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곧 다가올 비행기 출발 시간을 조바심내며 응시한다.

피고용인에게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그동안 수고했다”는 위로의 말조차 제대로 듣지 못한채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허둥지둥 삭풍이 몰아치는 거리로 내몰린다. 2015년 연말 삼성그룹에서 새로 별을 단 임원 승진자는 예년보다 훨씬 적은 294명에 불과했다. 회사에서 쉬쉬하고 있지만, 퇴직자는 500명에 육박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잘려나가는 사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칼자루를 쥔 사람도 편안치 않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왕 내보내려면 추위나 좀 풀리고 내보내지….

때가 되면 떠나야 하는 것이 샐러리맨의 숙명이지만,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직장인의 떠나는 뒷모습은 언제나 쓸쓸하다. 전문경영인으로서 최고의 지위까지 올랐거나 요행히 정년까지 채워도 서운함은 남는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한순간에 놓아야 하고, 할일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급여생활자는 원금은 보장되지만, 금리가 낮은 정기예금에 든 셈이다. 젊은 시절 과감히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을 하지 않은 대가는 조직이 원하면 언제든지 의자를 비워줘야 하는 페널티로 돌아온다.

영전했다고 우쭐댈 일 아니고, 낙오했다고 좌절할 일 아니다. 이제 시작일 뿐 인생의 시계는 아주 많이 남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늘 자기만 어려움을 겪고, 다른 사람들의 인생은 훨씬 쉬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은 원래 힘들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불행은 피할 수 없지만, 비극은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겪느냐 겪지 않느냐가 아니라, 이런 고통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견뎌내느냐다. 신神은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태도를 바꾸면 삶이 달라진다.

제아무리 정주영 명예회장(1915~2001년 현대그룹 창업자)이라도 지금 태어나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며 낙담하는 사람도 많다. 정말 그럴까. 정주영 명예회장의 인생은 드라마 전체로는 성공스토리였지만, 고비마다 찾아온 좌절을 피눈물을 삼키며 버텨냈던 ‘실패왕’이었다.

강원도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네 번 가출한 끝에 1937년 22세 나이로 서울 신당동에 쌀가게 ‘경일상회’를 차렸다. 하지만 일제가 쌀 배급제를 실시하는 통에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1940년엔 서울 북아현동에 ‘아도서비스(현대자동차의 전신)’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창업 한 달만에 화재로 잿더미가 됐다. 평소 신용을 쌓은 후원자로부터 돈을 빌려 재기했지만 그마저도 일제가 기업정비령을 내려 1943년 문을 닫았다.

그의 불행은 끝이 아니었다. 한국전쟁 막바지에 그는 대구와 거창을 잇는 고령교 복구공사를 따낸다. 하지만 전쟁 중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120배 폭등하면서 건축자재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신용만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공사를 마쳤지만 친인척들의 집 4채를 팔아야 정도로 쫄딱 망했다.

개인사에도 곡절이 많았다. 1982년엔 비 내리는 한밤중에 홀로 차를 몰고 울산 현대조선서 현장을 순찰하다가 바다에 빠져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의 분신이었던 장남(몽필)은 교통사고로 잃었다. 그가 화폐에 그려진 거북선 그림으로 조선소 없이 선박건조를 수주한 일화는 마치 신화처럼 들린다. 그러나 인간 정주영은 한탕주의 모험으로 성공한 낙관주의자가 아니었다. 치밀한 사전조사를 거쳐 승산이 확실할 때만 베팅을 한 철저한 비관주의자였다.

승자와 패자는 주어진 매주 168시간 동안 무엇을 하려했고, 무엇을 남겼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이제 시작일 뿐, 인생은 아주 많이 남았다. 영화 ‘히말라야’에서 주인공 엄홍길(황정민 분) 대장은 이런 말을 한다. “두려워하지 말자. 등산이란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시작되는 법이다. 우리가 가게 되면 새로운 길이 되고, 또 다른 루트가 된다. 우리는 살아서 함께 오르고 함께 내려온다.”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에는 “세상은 모든 사람을 파괴했고, 그후 모든 것이 다 파괴된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시 강해졌다”는 구절이 나온다. 새로운 해가 뜬다는 새해다. 2016년에는 고난의 벽을 넘어 큰 성취를 이루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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