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산폰의 무덤에 뛰어든 샤오미

샤오미가 한국시장에 깃발을 꽂았다. 선봉先鋒은 스마트폰이 아닌 가전제품으로 삼았다. 그 때문인지 우리나라 IT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주력인 스마트폰이 없으니 무서울 게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샤오미의 전략은 며느리도 모른다. 가전제품으로 간을 살짝 본 뒤 스마트폰을 론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졸卒’로 시장판세를 읽고 ‘차포車包’를 띄울 수도 있다는 거다.

▲ 중국의 IT 기업 샤오미가 우리나라 시장에 공식 진출했다.[사진=뉴시스]

‘샤오미小米’의 별명은 중국의 애플이다. 이 회사가 아이폰의 디자인을 대놓고 베낀 듯한 제품을 잇따라 출시하자 붙은 조롱 섞인 별칭이다. 한술 더 떠 샤오미의 CEO 레이쥔은 신제품 발표 때마다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나왔다. 애플의 잡스를 떠올리게 하는 레이쥔의 행색 역시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다.

그러던 샤오미가 중국 스마트폰 시장 공략을 발판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대만ㆍ홍콩ㆍ인도ㆍ말레이시아에 법인을 세우고 글로벌 시장에 발도장을 찍었다. 이 때문인지 세계시장 점유율은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창업 3년 만에 일군 기적 같은 일이다. 우리나라 IT 업계에 ‘샤오미 경계령’이 제기된 것도 이때쯤이었다.

실제로 샤오미의 성장 스토리는 우리나라 기업에도 위협이 됐다. 2013년만 해도 중국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9.7%로 1위를 달리던 삼성전자의 지난해 점유율은 5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반면 지난해 시장점유율 15%를 찍은 샤오미는 시장점유율 1위 자리에 올랐다.

이런 샤오미가 최근 우리나라의 안방으로 진격했다. 유통업체 여우미와 총판계약을 체결하고 ‘외산제품의 무덤’ 한국에 공식 출사표를 던졌다. 국내 IT 업계는 일단 ‘덤덤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샤오미 한국 진출이 보조배터리 같은 소형 생활가전에만 국한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이나 TV가 없는 샤오미의 진출은 뉴스거리가 아니다”고 낙관했다.

실제로 지난 16일 총판 협약식에서 샤오미 측이 공개한 한국 출시 제품에는 샤오미의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ㆍTVㆍ태블릿 PC가 없다. 우리나라 시장에 론칭한 품목은 보조배터리ㆍ전동 스쿠터ㆍ체중계ㆍ블루투스 스피커 등의 소형 가전에 그쳤다. 국내 IT업계가 샤오미의 등장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다. 차포 다 뗐는데 무어가 무섭냐는 거다.

그럼에도 샤오미의 공식 진출을 가볍게만 볼 수 없는 현상도 있다. 무엇보다 샤오미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인터넷 쇼핑몰 11번가에서 판매되는 샤오미의 생활가전 제품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900%나 증가했다. 디지털 주변기기 카테고리에서 점유율은 2014년 1.2%에서 지난해 10.4%로 9.2%포인트 올랐다. 같은해 옥션에서 판매한 보조배터리 부문에서 샤오미 제품의 시장점유율은 무려 70%를 찍었다. 이번 총판 협약을 맺은 여우미의 관계자는 “샤오미 수입 제품 판매만으로 9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고 말했다.

한국진출 과정에서 적극적인 마케팅 한번 하지 않은 것치곤 놀랄 만한 성적이다. ‘가성비가 좋다’는 입소문이 샤오미의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번 공식 진출로 마케팅이 활발해지고, AS망과 오프라인 판매처가 확대되면 ‘작은 돌풍’은 더 강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가전제품으로 간보기

이유는 또 있다. 국내 총판업체와 계약한 샤오미의 부서가 ‘생태계팀’이라는 점이다. 이 팀은 스마트폰ㆍTV 등을 담당하는 샤오미 본사 부서 아래에 있다. 주요 역할은 성장가능성이 높은 업체를 선별해 인수ㆍ합병(M&A)을 통해 샤오미의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는 것이다. 웨어러블 기기 ‘미밴드’를 출시 1년 만에 세계시장 점유율 2위로 만든 ‘화미’가 샤오미 생태계팀이 발굴한 대표적 자회사다. 이 팀이 발굴한 6~7개 기업들이 만든 제품이 국내에서 유통된다면 이른바 ‘샤오미 열풍’이 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샤오미의 진출을 유심히 봐야 하는 마지막 이유는 ‘영토 확장’이다. 토니 주 샤오미 생태계팀 총괄이사는 한국 진출을 공식화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시장에 진출할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미펀米粉(샤오미 팬)이 있기에 샤오미가 있다’는 샤오미의 슬로건에 이끌려 여기까지 오게 됐다.” 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달리 해석하면 ‘샤오미 스마트폰에 미펀이 있다면 스마트폰도 팔 수 있다’는 뜻이라서다. 가전제품으로 간을 본 뒤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서면 ‘진짜 무기’를 내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외산폰 무덤에 출사표 던질까

걸림돌이 없는 건 아니다. 샤오미폰이 국내시장에 상륙하는 순간 삼성전자나 LG전자와의 특허 분쟁을 피할 수 없을 공산이 크다. 국내 이통3사가 샤오미폰과 TV를 판매하는 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싸고 품질이 좋다’는 국내 샤오미 팬의 요구를 언제까지 시장이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애플 아이폰을 처음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통3사가 소비자의 욕구가 폭발하자 문호를 개방한 전례도 있다.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ㆍTV 등의 한국시장 출시가 먼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샤오미 공습 사건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해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고는 울렸고, 샤오미는 이미 첫걸음을 뗐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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