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떨어지는 이유

▲ 쌀 값 하락으로 생계문제에 직면한 농민은 정부에 ‘밥쌀’ 수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쌀이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 들었다. 생산량은 증가하는데 소비량이 줄어 재고량만 늘고 있어서다. 쌀값 역시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쌀을 중국에 수출해 공급량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정부는 중국의 쌀을 수입하고 있다. 왜일까.

쌀값이 무섭게 떨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쌀 도매가(상품 20㎏)는 2013년 4만4151원(연 평균값)에서 지난 3월 23일 3만6200원으로 18% 떨어졌다. 정부와 농민은 쌀값 하락의 원인으로 생산량 증가와 소비량 감소를 꼽는다. 실제로 쌀 생산량은 2013년 423t에서 지난해 433t으로 증가한 반면, 1인당 쌀 소비량은 같은 기간 4.3㎏(67.2㎏→62.9㎏) 줄었다.

정부는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 ‘대對중 쌀수출’이라는 대책을 꺼내들었다. 지난 2월 24일 강원도 철원 오대산 쌀 36t이 중국 광둥성廣東省으로 첫 수출길에 올랐다. 그렇다면 쌀값 하락세를 막을 수 있을까. 답은 “글쎄올시다”이다. 우리도 중국과 미국으로부터 밥쌀을 수입하고 있어서다.

그렇다면 정부가 밥쌀을 수입하는 이유는 뭘까. 시계추를 1993년으로 돌려보자. 우리 정부는 그해 세계무역기구(WTO)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을 벌였다. 협상 내용에는 ‘쌀 시장 개방’도 포함됐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쌀 시장 전면개방 대신 10년간의 ‘유예기간(1995~2004년)’을 두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단 전제가 있었는데, 매년 2만t의 가공용 쌀 의무수입이었다. 완전 개방을 미루는 대신 가공용 쌀의 ‘의무수입’이라는 족쇄를 차게 된 셈이다.

그런데 이 족쇄가 2004년에 더 조여졌다. 노무현 정부가 2004년 WTO와의 재협상 자리에서 유예기간을 연장(2005~2014년)하는 대신 가공용 쌀에 밥쌀까지 의무수입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의무 수입량 중 10%는 밥쌀로 채우고, 그 비중을 2010년까지 30%로 늘리는 게 합의 조건이었다.

2차 유예기간이 끝나는 2014년 말 박근혜 정부는 WTO와의 재협상 자리에서 관세 513%를 조건으로 쌀 시장 완전개방을 결정했다. 대신 의무수입 족쇄는 풀렸다. 그런데도 정부는 2015년 7월 3만t(미국 2만t·중국 1만t)의 밥쌀을 수입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우리가 제시한 513%의 관세율에 미국·중국은 불만을 가졌다”면서 “이런 맥락에서 ‘밥쌀 수입’은 어쩔 수 없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종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부장은 “2014년까지는 전체 수입량의 30%, 2015년에는 약 13%가 밥쌀”이라면서 “올해도 약 3만t의 밥쌀을 추가로 수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한 쌀 수출정책은 생뚱맞은 쌀 수입정책에 막혀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쌀값은 폭락, 농민의 주름살이 깊게 파이고 있다. 경기도 파주에서 30년간 쌀농사를 지어온 K(66)씨는 “지난해 손에 쥔 돈이 3000만원도 안 된다”며 “정부가 농민 살릴 대책도 없으면서 밥쌀만 수입하니 이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4년 전 귀농한 M(36)씨 부부도 “쌀값이 바닥이라 둘이 먹고살기에도 빠듯하다”고 하소연했다.

쌀 재고량과 쌀값 하락 문제를 연구해온 장경호 녀름연구소 소장은 “밥쌀 수입을 당분간 금지하고, 재고량을 해외에 원조하거나 공공급식 부문에서 쌀 사용량 늘리면 쌀 재고량을 줄여나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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