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생각의 힘」

제1회 ’멍 때리기’ 대회(2014년 10월 27일)의 우승은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K양이 차지했다. 우승자의 심사 기준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때 심박측정기에서 심박수가 가장 안정적으로 나타나는 사람’이었다. 그는 3시간 동안 매우 안정적인 상태로 ‘멍’을 때렸다. 하지만 K양은 정작 멍때리기와는 정반대 일상을 살고 있었다. 하루 2~3개 총 6개의 학원을 다니며 종일 뇌를 사용하고 있었던 거다. 쉬지 않는 K양의 뇌가 ‘멍’을 때리면서 스스로 쉬는 시간을 가졌다는 얘기다.

뇌에게 쉬는 시간을 주지 않는 건 K양만이 아니다. 대다수의 현대인은 멀티태스킹을 찬미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수많은 미디어는 1분 1초도 허투루 보내지 말라고 반복해 조언한다. 그래서인지 인터넷 검색창에 ‘집중’을 치면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음식·약·음악 등에 관한 정보가 줄줄이 올라온다. ‘일’과 ‘집중’의 강박 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지표인 셈이다. ‘집중’하지 못하면 학업성적이나 업무성과를 잘 낼 수 없을 것이란 ‘공포’가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집중하지 않는 시간은 우려대로 패배를 부를까.

인지심리학자 마이클 코벌리스 교수(뉴질랜드 오클랜드대)는 “집중하지 않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고 말한다. 저자는 「딴생각의 힘」에서 멍때리거나 딴생각을 하는 시간이 되레 ‘창조의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자아성찰, 자전적 기억, 사회성과 감정의 처리과정, 창의성을 지원하는 두뇌회로인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를 그 근거로 제시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사람이 쉬는 동안 오히려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영역도 넓어진다. 우리 스스로 쉬는 시간을 가져야 기억과 정보를 통합해 자아를 확립하고, 지식을 재구성하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인간의 기본 요소이자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필수요소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멍때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 ‘창의적 인간’의 모범답안처럼 여겨지는 인물이 멍때리는 시간을 적극 활용했다는 이야기도 알려지고 있다. 이제부터 불쑥불쑥 찾아오는 멍한 상태와 딴생각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을 때보다 정신줄을 놓고 있을 때 혁신적 아이디어가 뇌리를 때릴지 모른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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