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ㆍ佛 청년의 엇갈린 대처

청년실업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청년이 좌절하고 있는데도 계속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우리나라의 일만도 아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프랑스 청년들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다. 프랑스 청년은 밤샘토론을 하는 등 적극 대응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청년들은 침묵하고 있다.

▲ 프랑스 정부의 '친기업' 노동법 개정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시위가 프랑스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영화 ‘내 깡패같은 애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나라 백수 애들은 착해요. TV 보니까 프랑스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 부수던데. 우리나라 애들은 다 지 탓인 줄 알아요. 자기가 못나서 그런 줄 알고. 다 정부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실제로 프랑스에선 얼마 전에도 영화 대사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 파리의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밤만 되면 청년들이 몰려들어 시위를 펼치고 있다. 지난 3월 31일부터 이어졌으니 벌써 두달이 넘은 장기 시위다.

이들이 광장으로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이 너무 팍팍해서다. 현재 프랑스의 실업률은 10.3%다. 2013년부터 10% 이상의 높은 실업률을 기록하고 있다. 25세 이하의 청년 실업률은 25%에 육박한다. 일부 지역에선 청년 실업률이 40%를 웃돈다. 앞으로의 경제도 불투명하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파리 연쇄 테러로 관광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고, 내수 부진으로 경제가 활력을 잃고 있다. 푸조ㆍ르노 등 프랑스가 자랑하는 자동차 산업은 경쟁 업체에 밀려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프랑스 정부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높은 실업률은 극단 테러리즘만큼이나 위험하다”고 선언했다. 그는 실업률을 떨어뜨리지 못하면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약속했을 만큼 실업률 낮추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문제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꺼내든 대책이 ‘노동법 개정’이라는 점이다. 2000년 도입한 ‘주 35시간 근로제’의 사실상 폐기, 해고조건 완화 등 친親기업 조치들을 과감히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프랑스 노동법전은 2800쪽에 이른다. 그만큼 촘촘하게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 실업률의 원인이 이 노동법전에 있다고 봤다. 노동자를 고용하고 해고하는 데 너무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고용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거다.

흥미로운 건 프랑스 정부가 청년들을 위해 꺼낸 카드가 오히려 프랑스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는 점이다. 정부가 노동법 개정안을 발표하자 밤샘 시위가 시작됐다. 열기는 뜨거웠다. 매일 저녁 6시가 되면 수천여명의 학생들은 무리지어 자유토론을 하며 광장을 ‘점령’했다. 고등학생들도 시위에 동참하면서 100여곳의 학교의 수업이 중단됐을 정도다.

결국 4월 말까지 국회 표결로 개정안을 통과시키려 했던 프랑스 정부는 방향을 바꾸고 수정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마저도 반대에 부딪혔다. 프랑스 일간지 ‘르 파리지앵(Le Parisien)’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수정안이 발표된 후에도 전체 프랑스인 중 71%가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수정안 역시 기업에 유리하고, 노동자 보호는 미흡하다는 평가 때문이다.

佛 노동개혁에 청년들 분노

그럼에도 프랑스 정부는 표결 없이 총리 직권으로 수정안을 발표, 법적 효력을 부여할 수 있도록 했다. 높은 반대 여론뿐만 아니라 보수 야당, 집권당 의원 일부도 반대표를 던질 것이 예상되자 급기야 ‘표결 없이 통과’라는 꼼수를 택한 것이다. 결국 프랑스 청년들의 노동법 개정 반대 시위는 폭력사태로 번졌다. 그르노블, 몽펠리에, 낭트, 마르세유 등 도시들에서도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프랑스 청년들이 이토록 분노한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법 개정안이 실업률을 낮춘다고 판단하지 않은 것이다. 더군다나 노동자의 권리가 축소된 노동법안은 미래의 노동자인 본인이 감당해야 할 과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이미 올랑드 정권은 ‘노동시장 유연성 강화’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지금까지 세 차례 법안을 통해 매년 노동개혁을 시도해왔다”며 “그럼에도 여전히 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친기업적 정책이 신뢰를 잃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우리나라의 고용상황 역시 프랑스 못지않다. 청년실업률은 올해 2~4월 3개월 연속 10%를 웃돌고 있다. 15~29세 청년 경제활동인구 448만명 중 실업자 구직 단념자 취업준비생 등 체감실업자는 149만명으로 체감실업률이 33%에 달한다. 그 결과, 임금근로자 1947만명 중 임시직 일용직이 656만명에 달하고 상용직은 1291만명에 그치고 있다.

흥미로운 건 우리나라 정부도 프랑스 정부와 해결책이 똑같다는 점이다. 바로 노동개혁이다.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릴 수 있고, 파견노동자의 허용 범위를 지금보다 넓히자는 게 핵심이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프랑스와는 딴판이다. 이 노동개혁을 노동개악이라며 반대하는 집단은 민주노총 등 노동ㆍ시민단체뿐이다. 더구나 이들은 청년 실업률의 문제보다 ‘재벌 개혁론’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익명을 원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대중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사안들 위주로 활동하기 마련”이라며 “노동계와 시민단체가 청년 계층의 입장을 온전히 대변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입 꽉 다문 우리 청년들

그사이 우리나라 청년을 위한 안전망을 마련하는 일은 멀어지고 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우리나라 청년이 힘들어하는 건 비정규직 일자리가 많은 데다 최저임금 등 소득이 낮기 때문”며 “그런데 비정규직을 확산하는 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해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와 사회는 청년 일자리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논의과정에서 이런 목소리를 내는 청년은 많지 않다”고 꼬집었다.

프랑스와 우리나라 청년의 서로 다른 대처가 양국의 경제에 어떤 효과를 가져다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다만 프랑스 청년들의 대응방식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토론문화가 발달한 국가답게 반대 측 의견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를 꾸준하고 치열하게 설득하려는 태도에 있다. 우리나라 청년들도 이제 닫힌 입을 열 때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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