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만 고집하는 3%대 성장

▲ 주요 경제연구기관이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을 2%대 중반으로 낮춰 잡았음에도 정부는 홀로 3%대 성장을 주장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마침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주요 경제연구기관 가운데 막차인데, 지난 4월 발표한 한국은행(2.8%)보다 낮은 2.6%다. 국내외 기관 대다수가 2%대 중반으로 낮춰 잡았음에도 한국 정부만 홀로 3%대 성장을 고집하는 모양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등 경제팀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하고 선제적 정책을 구사하며 자신감을 보인다면 얼마나 믿음직할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딴판이다. 현실경제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미래경제에 대한 비전도 없이 우왕좌왕하며 책임질 줄도 모른다.

4ㆍ13 총선 직후 야당이 이례적으로 거들고 나섰는데도 달포가 넘도록 조선ㆍ해운업에 대한 구조조정 밑그림도 못 그렸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건에 대해선 책임이 없다고 강변하던 환경부는 대통령이 미세먼지 대책을 세우라고 한마디 하자 불쑥 경유값 인상 카드부터 꺼내들었다. 부처간 사전 조율이나 그동안의 클린디젤 정책에 대한 반성도 없이 4개 부처 차관급 회의를 열려다 직전에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물론 정부가 마냥 손을 놓고 있진 않았다. 총선 이후 신산업 육성 시책과 규제개혁 방안을 잇달아 발표하고 5월 6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시장은 한참 뒤 일인 신산업 육성이나 규제개혁보다 발등의 불인 조선ㆍ해운업 구조조정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5월 소비자심리지수와 취업기회 전망지수가 동반 하락했다.

특히 취업기회 전망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받은 2009년 3월 이후 7년2개월 만에 최저치다. 구조조정발發 실업대란이 현실화한데다 다른 업종에서도 취업시장이 냉각돼서다. 오죽하면 유일호 부총리가 여야 3당 정책위의장과의 첫 민생경제 현안 점검회의에서 “솔직히 일자리 창출 여력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실토했을까.

정부 정책이 국민의 공감을 얻고 실효를 거두려면 일의 앞뒤와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가려 추진해야 한다. 국책은행 등에서 6조원의 자금을 지원받고도 끝내 법정관리의 길에 접어든 STX해양조선 등 기업의 부실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대책도 등한시하면서 임시 공휴일 지정을 들고 나오니 공허하게 들리고 정책에 대한 피로감마저 안겨준다.

경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내로라하는 국내외 경제연구기관들이 3% 성장이 어렵다면 정부도 이를 수정하는 것이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방법일 것이다. 정부 고집대로 3%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면 유일호 경제팀이 명쾌한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정치의 불확실성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것도 시정돼야 마땅하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선진화법이 위헌이 아니라며 각하 결정을 내린 이튿날 정부는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상임위 차원의 상시 청문회가 가능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의결했다. 그것도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인 상황에서 국무총리 주재로. 대통령과 여야 3당 원내 지도부 회동으로 조성되는 듯 했던 협치協治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상시청문회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그렇게 일사천리로 처리하면서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민생 문제 해결 속도는 왜 그리 더디고 믿음을 주지 못하는가.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들은 19대 국회가 막을 내리고, 20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됐다. 의장단과 상임위원회 등 원院 구성에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또다시 끝이 보이지 않는 갈등과 소모전으로 일찍 찾아온 더위에 짜증을 더하지나 않을지? 국민은 벌써부터 20대 국회의 앞날을 걱정한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사사건건 충돌해 민생 입법이 늦어지고 진통을 겪으면 정부만 힘든 게 아니다. 경제는 더 망가지고 국민 피해도 커진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