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업계에 숨은 악순환의 고리

▲ 적자에 허덕이는 닭고기 전문업체들이 점유율 경쟁으로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민간식’ 치킨가게의 주문전화는 연일 불이 난다. 누가 보더라도 닭고기 전문업체와 닭 농가는 대박이다. 하지만 실상은 180도 다르다. 닭고기 전문업체의 실적은 하락세를 탄 지 오래다. 농가 안팎에선 ‘죽겠다’는 곡소리가 새어나온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치킨 시장에 숨어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파헤쳤다.

주부 이미선(가명ㆍ36ㆍ여)씨는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에 요리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서 퇴근한 남편에게 배달음식을 시켜 먹자고 졸랐다. 메뉴는 언제나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 평소 자주 시켜먹는 B치킨에 전화를 걸었다. 신제품이 나왔다는 소식에 주문을 하려하자 순살로 변경하면 1만9000원이란다. 속으로 ‘무슨 치킨이 1만9000원이나 하나’라고 생각한 이씨는 신제품 시식은 다음으로 미루고 평소 먹던 프라이드치킨을 주문했다. 치킨을 뜯으며 뉴스를 보니 닭 산지가격이 1000원대 밑으로 떨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씨와 가족들은 “도대체 유통과정을 거치면서 몇배가 뻥튀기 된 거냐”며 먹던 치킨을 바라봤다.

치킨가격이 2만원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몇몇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1만9000원짜리 메뉴를 내놓으면서 치킨 2만원 시대를 예고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생닭 가격은 갈수록 떨어진다. 지난 5월 2일에는 급기야 1000원대마저 붕괴돼 900원을 기록했다.

시름이 깊은 건 농가뿐만이 아니다. 닭고기 전문업체들의 실적도 심각하다. 닭고기 하면 떠오르는 ‘하림’은 2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마니커도 2014년 185억원의 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015년에도 139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닭고기 전문업체인 ‘체리부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2014년과 2015년에 각각 120억원과 44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닭고기 전문업체들이 적자에서 허덕이는 이유 중 하나는 ‘출혈경쟁’이다. 대한양계협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닭고기 전문업체의 시설 중 상당수는 낡았다. 최근 교체시기를 맞아 상당한 비용이 투입됐을 거다. 그런데 교체만 한 것이 아니라 증설도 했다. 계열업체들이 자기네 점유율을 높이려고 시설을 늘리고, 또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도계屠鷄수를 늘리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타난 거다.” 한마디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치킨게임(상대방이 항복해 물러날 때까지 정면충돌을 감수하는 게임)이 출혈경쟁을 빚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경쟁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새로운 업체들이 시장에 꾸준히 진입하고 있어서다. 사조인티그레이션은 2011년 육계 계열화 사업에 발을 들였다. 2013년엔 삼계 전문생산업체를 인수ㆍ합병(M&A)해 사조화인코리아로 이름을 바꿨다. 그러면서 2011년 1.9%에 불과했던 점유율은 3년 만에 5.2%로 치솟았다. 참프레는 2013년에 진입하자마자 4.2%의 점유율을 보이더니 1년 만에 7.4%로 훌쩍 높아졌다.

치킨가격 vs 닭 산지가격
 
닭고기 전문업체가 늘다 보니, 도계 마릿수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13년 7억 마리대였던 도계수는 2014년부터 8억 마리를 돌파했고 2015년엔 9억 마리까지 넘어섰다. 문제는 늘어난 공급량을 소비량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조사업체인 칸타월드패널이 집계한 2015년 가구당 4주 평균 닭고기 구매량은 1.75㎏으로 2014년의 1.85㎏보다 줄었다. 공급량과 소비량의 역관계가 닭고기 전문업체의 실적에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닭고기 전문업체의 신통치 않은 실적이 고스란히 ‘농가’로 전이되고 있다. 닭고기 산업은 현재 ‘위탁제’로 운영되고 있다. 닭고기 전문업체가 농가에 사육비를 주면 농가가 닭을 사육하는 방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닭고기 전문업체와 계약 사육을 하고 있는 농가는 전체의 95.3%에 달한다. 
 

이런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닭고기 전문업체가 충분한 사육비를 주느냐다. 농가에서 추가비용이 발생하면, 시스템이 꼬일 공산이 상당히 크다. 하지만 농가에선 육계 출하 시 1회 평균 약 638만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 닭고기 전문업체의 경영난이 농가로 전이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가비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익명을 원한 농가의 관계자는 “지금은 닭고기 전문업체와 농가가 연쇄부도 날 수 있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농가가 사육비만 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한다. 닭고기 전문업체가 망해도 우리는 간접적인 피해만 입는다고 한다. 모르는 소리다. 닭고기 전문업체가 망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돈 한 푼도 못 받는 신세가 된다. 게다가 사육성적을 좋게 하려면 내 돈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니 남는 게 거의 없다.”

악순환의 고리에 얽힌 닭 농가 
  
이런 이유로 농가는 산업의 안정을 요구한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중 하나가 종계種鷄를 적정수량으로 유지하자는 의견이다. 농가들이 판단하는 적정 종계수는 680만~700만수다. 현재는 800만수를 넘어섰다. 하지만 정부는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닭고기 전문업체와 농가에 ‘자율감축’을 하라고만 한다. 고육지책으로 ‘병아리를 매몰해 수를 줄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지만 이 역시 해법이 될 수 없다. 치킨은 날개 돋친 듯 팔리는데, 닭고기 전문업체와 농가에선 불평불만이 새어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귓등으로 흘려들을 볼멘소리가 아니다. 대책이 필요하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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