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이야기「인간 인터넷」

구글노잉(Google-knowing)에 숨은 함정들

당신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 중 몇개나 외우고 있는가. 가족의 번호는 고사하고 자신의 것조차 기억 못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들은 전화번호를 굳이 외울 필요가 무어냐고 항변한다. 손가락만 몇번 움직이면 필요한 정보가 눈앞에 보이는 세상인데 무엇하러 수고스럽게 외워야 하느냐는 거다.

사람들의 이런 경향은 전화번호 암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길을 찾을 때도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는 대신 지도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고, 지식정보가 필요할 땐 도서관을 찾는 대신 구글링을 한다. 소통 방식도 바뀌었다. 시간을 내서 사람을 만나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대신 출·퇴근길 SNS에 접속해 지인들과 소통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1990년대 월드와이드웹(WWW)의 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한 인터넷은 몇십년 만에 우리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이는 인간의 지식 습득 방식은 물론 사고와 행동, 삶의 방식까지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하지만 이런 변화가 인류에게 긍정적이기만 한 것일까?

인식론의 권위자인 마이클 린치 코네티컷대(철학) 교수는 디지털 시대를 성찰하지 않는다면 이 시대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이클 교수는 그의 저서 「디지털 인간」에서 클릭 몇번만으로 얻은 정보, 이를테면 ‘구글노잉(Google-knowing)’을 두고 정말 ‘안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가 내린 지식의 정의는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인간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정보’다. 그래서 ‘Ctrl C+Ctrl V’를 통해 문서로 옮겨진 정보는 지식이 될 수 없다는 거다. 저자가 자신이 모르는 것을 끝까지 물어본 소크라테스의 태도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이클 교수는 ‘경험’의 중요성도 주장한다. 구글링을 통해 찾아낸 정보는 직접 보거나 들은 게 아니라서 무조건적으로 믿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로크의 경험주의 철학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이 찾을 수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정보를 믿어야 하며, 서로의 정보를 평가하기 위한 공통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건 또 있다. 현대인의 ‘지식 수용 태도’가 사생활과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정보를 찾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에 로그인을 하거나 회원가입을 하면 개인정보가 인터넷에 남는다. 이렇게 남은 개인정보를 아마존이나 페이스북 같은 기업은 물론 미 국가안전보장국 등 국가기관도 수집한다. 2014년 터진 미국 국가안보국의 도감청 의혹은 자본·권력기관이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모든 기술은 완전히 이해되기 전에 사용된다’는 문학평론가 레온 위셀티어의 말처럼, 우리는 마치 숨을 쉬듯 당연하게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사회가 가져올 변화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위험성은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바꿔놓을 미래에는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인터넷으로 연결된 인간의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선 무감각하다. 저자의 말처럼 디지털이 우리 삶의 형식이 돼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디지털 시대를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니다. 다만 성찰 없는 수용은 위험하다고 잘라 말한다.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건 철학적 논쟁이다. 


세가지 스토리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파시 살베르그 지음 | 푸른숲 펴냄

핀란드 교육개혁을 밑바닥부터 진두지휘해온 파시 살베르그가 핀란드 교육개혁 30년의 과정과 비밀을 낱낱이 소개한다. 교육 논의가 단편적인 수준에서 끓어올랐다가 식기를 반복하는 한국 사회에 핀란드의 교육개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진정한 교육 개혁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총체적으로 고민해보게 한다.교육정책과 복지제도의 연계과정이 흥미롭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사 펴냄

오늘날 대한민국을 설명하는 키워드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헬조선’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 정서다.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롭고 근본적인 성찰을 이어온 박노자 교수(노르웨이 오슬로대)가 이 키워드를 분석한다. 헬조선의 원인, 그럼에도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한다.

「모단 에쎄이」
이상·외 43명 지음 | 책읽는섬 펴냄


박민호 서울대 교수가 1910년부터 1940년대 후반,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한국전쟁 사이에 발표된 수필 90편을 발굴해 책으로 엮었다. 냉전의 그늘 속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김기림·임화를 비롯한 월북 작가와 나혜석·백신애 등 여성 작가를 두루 조명했다. 문학사적으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책의 미덕이다.
노미정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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