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설국열차 ❷

▲ ‘혁명 지도자’ 커티스는 살아남기 위해 저질렀던 끔찍한 기억을 고백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설국열차’는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만큼 서사敍事 구조가 다분히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닮았다. 커티스(크리스 에반스)가 지도하는 ‘꼬리칸’의 혁명군은 절대군주 루이 14세와 같은 윌포드(에드 해리스)가 장악하고 있는 ‘엔진칸(베르사이유 궁)’을 향해 진격한다. 일자형의 좁은 기차라는 공간 설정은 절대 권력의 교체를 향한 혁명의 길에는 어떤 우회로도 없음을 보여준다. 비켜서거나 숨을 수 있는 작은 공간도 없고 목표를 향해 우회할 방법도 없다. 전진하려는 자들과 막으려는 자들이 정면으로 충돌해 죽고 죽이는 수밖에 없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우리 속담은 누구든지 외나무다리에서 맞닥뜨리면 서로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존의 비정함을 말한다. 외나무다리와 같은 ‘설국열자’의 미장센(연출)은 그래서 끔찍하고,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욱 끔찍하다. 모두가 원하는 신분이동의 통로가 동맥경화증 환자의 혈관처럼 점점 좁아지는데 그 혈관을 뚫고 나가려는 피는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든다. ‘좋은 칸’을 선점한 승객들은 자리를 나누거나 빼앗기지 않기 위해 수단괴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사적으로 ‘꼬리칸의 개돼지’들을 밀어낸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걸린 외나무다리에서 만나 모두가 원수가 되고 ‘갑질’ ‘금수저’ ‘흙수저’ ‘개돼지’와 같은 온갖 해괴한 말들이 오간다.

끔찍한 살육전 끝에 엔진으로 진입하는 마지막 관문 앞에서 ‘혁명 지도자’ 커티스는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에게 꼬리칸에서 살아남기 위해 저질렀던 끔찍한 기억을 고백한다. 어린아이의 ‘고기’에 맛 들려 엄마를 죽이고 어린아이를 끌고 갔던 참담한 죄를 고백하며 오열한다. 꼬리칸의 민중들이 세상을 장악해도 결국 재화의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끔찍한 상황이 무한 반복될 것을 두려워한다. 오히려 통제와 억압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들의 고삐 풀린 이기적 생존 본능은 더욱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어서다.

커티스의 참담한 고백이 우리 시대, 우리 사회 도처에서 벌어진다. 돈 때문에 부모를 버리기도 하고 부모를 죽이기도 한다. 부모 역시 자신의 욕망 때문에 자식을 버리고 죽이기도 한다. 뉴스에 보도되는 사례들이 그 정도라면 드러나지 않은 참상들은 과연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기 어렵다.

▲ 절대 권력의 교체를 향한 혁명의 길에는 어떤 우회로도 없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의 결말은 충격적이다. ‘식스센스’급 반전을 보여준다. 커티스가 이끈 혁명은 사실 최고 권력자인 윌포드와 꼬리칸의 ‘민중의 성자聖者’ 길리엄이 배후조종한 것이었다. 아이를 도살하려는 인간들에게서 칼을 빼앗아 자신의 팔을 잘라 내어준 ‘민중의 성자’나 최고 권력자 모두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에 공감한다. 그리고는 전쟁을 통해 꼬리칸의 인간 74%를 인위적으로 소멸시키는 궁극적 해결책을 실행에 옮긴다.

인류통계학자들은 인구통계가 어느 정도 가능했던 13세기 이후, 크고 작은 전쟁을 통해 ‘인위적’으로 소멸된 인구수를 약 20억명으로 추정한다. 만약 전쟁을 통해 인구수가 통제되지 않았다면 인류의 생존 자체가 불투명했으리라는 우울한 분석도 내놓는다. 미국의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John Lewis Gaddis)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를 “전쟁이 없는 역사상 유례없는 ‘기나긴 평화’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기나긴 평화와 의료기술의 발전 덕에 지금 전세계 인구는 80억명을 향하고 있지만 ‘먹을 것’과 ‘일자리’를 향한 투쟁도 그만큼 가열된다.

‘기나긴 평화’의 필연적인 산물인 ‘제한된 가치’를 향한 투쟁은 점점 가열돼 그 엄혹함은 사실상 전쟁과 다름이 없다. 전쟁이 사라진 시대에 결혼과 출산 자체를 포기해 자발적으로 인구통제에 나서야 하는 우리 젊은이들 모습이 가슴 아프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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