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금융상품의 불편한 진실

▲ 절세금융상품에 가입할 여유자금이 있는 서민은 많지 않다.[사진=뉴시스]
정부와 금융회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 상품에 가입하면 서민들도 재산을 불릴 수 있다.” 그러면서 의무가입기긴과 만기를 둔다. 생각해 보자. 가계를 꾸리기도 벅찬 서민 가운데 몇 년씩 돈을 묵혀둘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정부 주도 절세금융상품의 불편한 진실은 여기서 시작된다.

올 겨울 결혼을 앞둔 직장인 윤영민(38)씨. 지난 3월 윤씨는 전세대출을 알아보러 은행에 들렀다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가입을 권유받았다. 그는 잠시 고민했다. 결혼을 앞둔 상태라 예상치 못한 돈이 들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연봉이 3400만원인 윤씨의 경우 3년만 정기적금처럼 납부하면 이후 투자수익이 났을 때 20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게 윤씨를 유혹했다. 은행 직원도 “요즘 비과세 혜택을 이렇게 주는 상품이 없다”면서 “정부에서 지원할 때 얼른 챙기지 않으면 기회가 날아간다”고 부추겼다. 결국 돈을 불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입했다.

그로부터 넉달이 흐른 지금, 윤씨는 ISA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 중이다. 문제는 속도위반으로 예비신부가 임신을 하면서 시작됐다. 결혼 후 아내는 곧바로 일을 쉬어야 할 테고, 복직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3년(의무가입기간) 동안 매월 50만원씩 불입하기로 했던 ISA를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윤씨는 가입해지를 위해 은행을 찾았다.

그런데 ISA 가입을 권유했던 은행직원은 “지금 해지하면 그동안 낸 원금보다 더 적은 돈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씨는 “적금처럼 매월 차곡차곡 쌓아놓는 돈인 줄만 알았지 원금손실이 있는지 몰랐다”면서 “가입할 때 원금손실 설명을 했다고는 하지만, 얼렁뚱땅 넘어가고 비과세 혜택만 강조하니 정신이 홀렸던 것 같다”고 푸념했다.

사실 윤씨처럼 뭔가에 홀리듯 ISA에 가입했다가 낭패를 본 직장인은 한둘이 아니다. 중요한 건 정부가 ‘서민을 위한’ 절세금융상품을 내놓을 때마다 비슷한 문제들이 터져 나온다는 점이다. 2013년에 다시 만들어진 재형저축과 2014년 출시된 소득공제 장기펀드(소장펀드)가 대표적이다.

맹점은 ‘의무가입기간’과 ‘만기’였다. 두 상품 모두 펀드에 투자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의무가입기간에는 수익이 나든 손실이 나든 아무 상관이 없지만, 만기 시에 수익이 나지 않으면 원금조차 건질 수 없는 상품이었다. 당시 일부에서 “무조건 가입은 금물”이라는 조언이 나온 건 이 때문이다.

불완전 판매가 문제의 단초

조경만 금융컨설턴트(엉클조 대표)는 “특히 소장펀드의 경우 5년간의 의무가입기간을 지키는 것은 물론 10년을 묶어둬야 완전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인데, 과연 10년 뒤 상황을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정부가 절세효과로 선심을 쓴 것 같지만, 사실은 대놓고 가입자를 우롱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윤씨와 같은 이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병복 금융산업평가 컨설턴트는 “단점보다는 장점만 부각하는 불완전 판매형식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정부 주도 정책금융상품들은 서민의 돈을 불려주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원금손실의 위험이 있거나 해지시 혜택보다는 손해를 볼 수 있는 상품들도 있고, 혜택의 요건이 변경되면 혜택을 못 받는 상품도 있다. 문제는 자금을 끌어들이는 금융권에서는 이런 설명들을 제대로 해주지 않는다는 거다. 가능한 한 자금을 많이 모아야 높은 운용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서다. 수익률조차 검증되지 않은 ISA의 경우 비과세 혜택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 혜택을 충족할 만한 수익을 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요즘 투자시장에서 수익을 내기가 그리 쉬운가. 더구나 펀드 운영 수수료에다가 계좌관리 수수료까지 붙으니 수수료도 굉장히 높은 편이다.”

실제로 현재 운용되는 정부 주도의 절세금융상품들은 가입 시 유의해야 할 점들이 꽤 많다. 납입금액의 13.2%를 연말정산시 세액공제에 포함하는 연금저축이나 퇴직연금은 원금손실의 위험이 있다. 연말정산 시 과세연도 납부금액의 40%를 소득공제해주는 주택청약종합저축은 5년의 의무가입기간을 채우지 않고 해지하거나 국민주택 규모인 85㎡(약 25평) 이상의 주택에 당첨되면 세금이 부과된다. 저축성보험 역시 5~10년의 의무가입기간이 있어 중도 해지 시 혜택을 보지 못한다. 농협이나 수협 등을 통해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합출자금은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니어서 최악의 경우 원금을 모두 날릴 수도 있다.

절세금융상품들이 진짜 서민을 위한 것이냐는 지적도 있다. 이병복 컨설턴트는 “절세금융상품은 애초부터 중산층 이상을 위한 상품이고,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상품들은 여차하면 중산층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상품”이라면서 “한두푼이 아까운 서민들은 몇십만원, 아니 몇만원만 손해를 봐도 가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는 상황에서 원금보장조차 안 되는 상품이 과연 ‘서민을 위한 절세금융상품’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서민에게 목돈 묶어둘 여력 있나

신승근 한국산업기술대(복지행정학) 교수 역시 “절세금융상품들은 대부분 가입한도만큼 불입해야 재산 증식이든 절세든 제대로 혜택을 볼 텐데, 현재 우리나라 급여수준에서 연간 2000만~3000만원씩 3년 혹은 5년씩 묶어 둘 수 있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라면서 “어떻게 서민 재산 증식에 이바지한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절세금융상품들이 진짜 서민을 위한 상품이 아니라는 얘기다. 

ISA 가입을 권유하는 한 은행원조차 “부자들을 제외하기 위해 연봉 5000만원을 가입제한 규정으로 뒀지만, 연봉이 5000만원 이하인 부잣집 자녀는 가입이 된다”면서 “가입제한 규정을 왜 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민을 위하지 않는 절세금융상품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는 뭘까. 이병복 컨설턴트는 이렇게 설명했다. “주식시장에 자금이 들어오지 않는 상황에서 서민들 돈으로 금융사들을 지원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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