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전경련은 늘 이런 의혹을 받아왔다. “윗분들의 지시로 돈을 모은다.” 미르재단, K재단의 모금에 전경련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지만 사실 이를 모르는 기업인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전경련이 가케무사(가짜 주군)를 자임하면서 집권층의 시녀侍女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 정부의 시녀 역할을 하던 전경련을 둘러싼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사진=뉴시스]

1961년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발전, 올바른 경제정책의 구현을 목적으로 창립된 전경련. 회원 기업이 약 600개에 이르는 전국경제5단체 중 하나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가 주도해 설립했다.

이 거대한 전경련이 요즘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리며 해체 위기에 봉착했다. 전경련이 앞장서 대통령의 비선秘線들이 설립한 재단에 800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모금해 전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서다. 전경련은 사상 처음으로 압수수색(10월 28일)을 받았고,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검찰에 소환됐다.

사실 전경련의 행적을 살펴보면, 이상한 일을 벌인 것도 아니다. 1977년부터 약 24년 동안 대우그룹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한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는 대외기부 업무도 담당했다. 매년 그룹 차원에서 300억원 규모의 기부를 하다보니,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 기부금을 내는 걸 어려워하는 계열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부분 현금성 기부였기에 유동성이 신통치 않은 계열사는 불가피하게 차입을 일으키기도 했다.

기부금을 전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타당성 검토’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당성 검토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전경련이었다. ‘전경련의 기부 요청은 곧 윗분들의 생각’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기부금이 바닥난 통에 어쩔 수 없이 전경련에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이내 다음과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기부 요청은 대부분 상부의 지시입니다. 청와대가 기부 요청을 못하니 전경련이 대신해 받는 겁니다.” 하지만 전경련은 이런 모금 활동 탓에 부메랑을 맞고 있다. 일본 사무라이 전쟁시대에 존재했던 ‘가케무사’를 통해 전경련의 민낯을 살펴보자. 가케무사의 역할은 가짜 주군 행세를 하면서 아군에는 사기를, 적군에는 공포심을 주는 것이었다.

적들이 가케무사를 집중 공격해 죽더라도 진짜 주군이 살아있기에 전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문제는 가케무사가 가짜라는 사실이 탄로날 때였다. 그러면 아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적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전경련의 현주소다. 전경련이 청와대의 가케무사 역할을 했다면 기업인은 물론 국민들까지 의욕을 잃을 게 뻔하다.

물론 진짜 주군인 청와대는 더욱 어려움에 빠질 공산이 크다. 한국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와는 경쟁자인 중국, 일본, 미국 기업들은 무형의 사기가 고무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전경련은 환골탈태를 꾀해야 한다. 정부 경제정책을 홍보하는 역할만 하지 말고 기업의 균형된 이익과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구태의연한 가케무사 역할만 계속한다면 차라리 해체하는 게 답이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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