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일의 다르게 보는 경영수업

▲ 주군이나 조직을 위한 희생은 결코 대도의 길이 아니다. [사진=뉴시스]
주군主君을 감싸기 위해, 조직의 비리를 덮기 위해 목숨을 끊는 2인자의 마음을 어찌 헤아려야 할까. 주자학에서 말하는 충성과 의리의 실체는 무엇일까. 롯데그룹 2인자의 자살 사건은 반추해 볼 게 생각보다 많다. 일본의 가부키歌舞伎 고전인 ‘주신구라忠信藏’에서 답을 찾아보자.

롯데그룹이 점입가경이다. 신동주‧신동빈 형제의 권력다툼은 여전하고 총수 일가를 향한 검찰의 칼날은 갈수록 날카로워지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롯데 총수 일가를 위해 평생을 바친 2인자(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가 검찰 소환을 앞두고 목을 매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 일이 터진 직후 필자(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의 뇌리엔 하나의 사건이 스쳐지나갔다. 일본의 유명한 가부키歌舞伎의 고전인 ‘주신구라忠信藏’다. 이는 1701년 주군을 잃은 47명의 사무라이를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1701년 에도성에서 천황의 칙사를 접대하는 직분을 맡았던 아코번주 아사노 나가노리는 그의 상사인 기라 요시나카와 언쟁을 벌이다가 칼을 뽑아들었고, 기라 요시나카가 상처를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성 안에서 칼을 뽑은 죄로 아사노 나가노리는 할복 처분을 받았지만 기라 요시나카는 아무런 벌도 받지 않았다.

그 이후 아사노 나가노리의 가신들인 사무라이 47명이 칼을 갈기 시작했다. 무려 2년 동안 와신상담한 이들은 기라 요시나카의 목을 베어 주군(아사노 나가노리)의 무덤에 바쳤다. 이를 두고 당시 막부에선 구명 주장도 나왔다. 일부에선 충성심을 높이 산 셈인데, 결국 모두에게 할복 처분이 떨어졌다.

일본 막부 시대 주군과 신하 사이에 맺어진 맹목적인 충성의 근원은 흥미롭게도 주자학이다. 주자학에서 주군의 도덕적‧실체적 정당성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그저 신하들의 맹목적 의리만 강조했다.

일본의 석학 마루야마 마사오는 주자학의 폐해를 이렇게 꼬집기도 했다. “일본에선 기업‧국가 등 집단을 위해 죽은 사람은 많지만 진리와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기업이나 집단을 위해 죽는 것은 그것들을 살리는 게 아니라 반대로 죽이는 길이다. 어려움에 봉착한 기업이나 국가 등 집단을 진정으로 살리고 싶다면 그 어려움을 가슴에 안은 채 죽을 게 아니라 떳떳하게 앞장서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게 훨씬 더 가치 있는 충성과 의리의 길이다.

모든 사건을 은닉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건 주군에겐 눈물을, 유족에겐 한을 남길 뿐이다. 더구나 이는 정의를 세우는 대도大道의 길을 막는 ‘나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필자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대우그룹이 붕괴하던 시절, 총수와 임원들은 ‘죽고 싶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서로에게 던지곤 했다. 국내 굴지의 그룹이 무너졌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그 누구도 좌절하지 않으려 애썼다. 혹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대로 서로에게 연락을 주고받았을 정도다. 기업이 정부에 넘어가지만 창조‧도전이라는 그룹 정신까지 소멸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매일 다졌던 기억도 난다. 롯데그룹 2인자의 허망한 자살, 생각해 볼 게 많다.
김우일 대우M&A 대표 wikimokgu@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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