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대박 옛말 된 이유

‘상장대박’. 주식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공식이다. 기업이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큰돈’을 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공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 트럼프 대통령 당선, 브렉시트 등 굵직한 국내외 이슈가 터지면서 상장기업의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역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상장도 이제 기대할 게 못 된다.

▲ 올해 84개의 기업이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에 새로 상장했다.[사진=뉴시스]

‘코스피 25개, 코스닥 140개’. 한국거래소가 올초 밝힌 기업공개(IPO) 목표치다. 2015년의 뜨거웠던 IPO 시장의 열기가 올해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실제로 2015년 한해 증권시장에 상장한 기업의 수는 128개(코스피 19종목ㆍ코스닥 109종목ㆍ스팩상장 포함)에 달했다. 전년 대비 62%나 증가한 수치로 그야말로 뜨거운 한해를 보냈다.

양적 숫자만이 아니다. 수익률도 뛰어났다. 한국거래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 신규상장 종목의 공모가 대비 주가 수익률은 상반기 20.26%, 하반기 11.06%에 달했다. 코스피지수의 등락률을 반영한 수익률도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24.53%, 12.81%를 기록했다.

IPO를 향한 시장의 관심은 올해도 계속됐다. 상반기 기준 코스피 5종목, 코스닥 19종목이 신규상장하면서 지난해 열기가 이어졌다. 실적도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 6월초 신규 상장한 15개 기업 중 12개 기업이 공모가 대비 상승세를 기록했다. ‘상장대박’이라는 주식시장의 속설이 그대로 실현되는 듯 했다.

하지만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시장의 상황이 돌변했다. 경기침체, 기업구조조정 이슈 등으로 주식시장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IPO의 열기가 빠르게 식었다. 여기에 6월로 예상됐던 호텔롯데 상장 무산, 6월 발생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ㆍBrexit), 박근혜ㆍ최순실 게이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등 대내외적인 이슈가 등장하면서 IPO 시장은 더 얼어붙었다.

그 결과, 올해 IPO 실적(12월 16일 기준)은 코스피 17곳, 코스닥 67곳으로 한국 거래소가 세운 연초 목표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공모가 대비 주가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신규 상장기업 56곳(스팩상장 제외) 중 공모가 대비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는 곳은 절반이 채 안 되는 22곳에 불과했다. 하반기 코스피에 신규상장한 기업의 공모가 대비 평균 주가수익은 12월 14일 기준 -8.35%로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하반기 대비 21%포인트나 떨어진 수치. ‘상장 대박’이라는 법칙이 1년 만에 무참히 깨져버렸다는 얘기다.

뜨거웠던 2015년 IPO

최종경 BNK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상장, 넷마블게임즈의 청구서 접수 등으로 공모시장이 커질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하지만 넷마블게임즈의 상장이 내년 상반기로 연기되면서 공모시장 규모는 지난해(4조5000억원)에도 못 미치는 4조2000억원에 머물렀다”고 설명했다. IPO 시장이 부진에 빠지면서 상장을 연기하는 기업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코스피 시장에서는 호전실업ㆍ텐티움ㆍABC마트코리아 등이 심사 승인 이후에도 상장을 미루다 내년 상장을 선택했다. 코스닥 기업 12곳도 상장 시기를 내년으로 넘겼다.

▲ 기업의 상장이 하반기에 집중되면서 적정 가치를 평가받기 힘들다는 의견이 나온다.[사진=아이클릭아트]

그렇다면 IPO 시장이 침체한 이유가 위축된 시장에만 있을까. 시장은 그동안 논란이 됐던 국민연금의 ‘벤치마크(BM) 복제율’에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은 지난 6월 운용사에 순수주식형ㆍ장기투자형ㆍ대형주형은 벤치마크지수의 50% 이상, 사회책임투자와 가치주형은 60% 이상, 중소형주형은 20% 이상 투자하라는 BM 복제율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이 정작 투자자들에게 ‘대형주만 사라’는 메시지로 읽히면서 시장이 왜곡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BM 가이드라인으로 코스닥 시장을 포함한 중소형주가 모두 외면 받았다”며 “투자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BM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보수적으로 투자를 단행하면서 공모주가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분석도 있다. 상장기업이 크게 증가면서 상장효과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시장이 떠들썩해질 만한 대기업 계열사나 유력기업의 상장이 아니면 시장의 관심을 끌기 어렵다는 얘기다. IPO의 연말 쏠림 현상도 문제다.

IPO 대어 나왔지만 흥행은 실패

올 상장 기업 84곳(스팩상장ㆍ이전상장ㆍ재상장 포함) 중 상반기에 상장이 이뤄진 기업은 28곳(코스피 12곳ㆍ코스닥 23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56개 기업은 하반기에 상장했다. 상반기 월평균의 2배에 가까운 9개 이상의 기업이 하반기에 상장했다는 것이다. 시장 수요는 뻔한데, 특정 시기에 상장을 원하는 기업이 쏠리면서 관심이 줄었다는 얘기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코스닥의 경우 12월 들어 9개 기업이 상장했다”며 “공모기업이 하반기에 몰리면서 희망 공모 가격을 낮추거나 낮은 금액을 공모가로 선택하는 경우가 크게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정 시기에 상장이 집중되면 시장에서 적정 가치를 평가 받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상장 직후 시장의 저평가를 이유로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기업이 증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다양한 원인 때문에 국내 IPO 시장은 침체를 겪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상장기업을 향상 시장의 관심이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문제는 경제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경기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는데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증시를 이끌었던 저금리 시대마저 저물고 있어서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상장 대박’은 말 그대로 ‘옛 이야기’일 뿐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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