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판도라 ❶

▲ 재난 앞에 행동한 건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 이름 없는 발전소의 일개 직원이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급 재난은 악령 같은 테러리스트나 외계에서 들이닥친다. 난데없이 혹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거나 온갖 비행물체들이 달려든다. 911 테러를 비롯한 크고 작은 테러를 경험하고, 전세계 모든 테러 위험인물과 집단들을 24시간 감시하는 미국은 목성토성명왕성까지 탐사선을 띄우고 관찰한다. 하지만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 했던가. 테러나 외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으니 덩달아 걱정도 많아지는 모양이다.

반면 우리는 아직 대규모 테러를 경험한 적도 없고, 직접 인공위성 하나 쏘아올린 적도 없다. 그래서일까. 한국형 재난블록버스터인 ‘판도라’는 비교적 현실적인 ‘원자력발전소 폭발’을 대재앙의 진앙으로 설정한다. 우리나라는 원자력발전 의존도 세계 1위 국가이며, 원자력발전소 밀집도 역시 세계 1위다. 못내 찝찝한 1위를 두개나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몇 해 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재앙을 생생히 목격했다. 구경 중에 가장 좋은 구경이 ‘강 건너 불구경’이라지만 ‘바다 건너 불구경’이었던 후쿠시마 원전 사태는 마냥 좋은 구경거리일 수만은 없었다. 부산 바닷가에 후쿠시마 발전소와 너무도 유사한 고리 원자력발전소를 안고 있는 우리에겐 ‘불편한 구경’이었다.

멀쩡해 보이던 한강다리, 대형백화점도 거짓말처럼 제풀에 주저앉았다. 대형여객선은 7시간 만에 속절없이 침몰했다. 그런데 원자력발전소라고 안전할 리 있겠는가.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기에 불안감을 떨칠 수도 없다.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자마자 벽이 갈라지고 천장에서 물이 쏟아지는 부실공사에 우리는 익숙하다. 같은 건설사가 시공했다는 원자력발전소의 사정도 미덥지 않긴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가동 중인 24기의 원자력발전소 어디에선가 사고가 발생해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고 받아들일 뿐 크게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불편하고 불안한 현실이다.

▲ 우리에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재앙은 ‘불편한 구경’이었다.[사진=뉴시스]
영화 ‘판도라’ 속에서 발전소 전직 소장인 평섭(정진영)은 ‘원자력발전소 사고’라는 미증유未曾有의 재난에 속수무책인 현실에 “이 나라가 겨우 이것밖에 안 되냐”고 묻는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크고 작은 재난들을 보고 있자면 “이 나라는 이것밖에 안 되는 것 같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한국형 재난블록버스터인 ‘판도라’는 할리우드 재난블록버스터와 차별화되는 명확한 지점이 있다. 할리우드판 재난영화에서도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재난 ‘컨트롤타워’가 재난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하지만 최소한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최선을 다해 대응한다. 하지만 영화 ‘판도라’에 등장하는 대통령(김명민)을 비롯한 국정의 책임자들은 무능하거나 무식하고,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그들이 관리하는 국가의 재난대응 ‘컨트롤타워’ 자체가 부실시공이었음이 드러난다. 결국 이름 없는 발전소의 일개 직원 재혁(김남길)과 동료들이 목숨을 내던지고 대재앙의 지옥문을 막아선다.

국정 책임자들의 무능과 무책임, 그리고 빚어낸 ‘국정농단’ 사태. 거기서 야기한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도 상황을 수습해야 할 책임자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이름 없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추운 광장을 지킨다. 재혁이 원전 폭발이라는 지옥문을 막아서듯, 광장의 시민들이 국가와 민주주의의 붕괴라는 지옥문을 막아선다. 영화는 항상 현실을 투영하고 관객의 호응도 현실을 반영한다. 그래서 영화 ‘판도라’의 개봉도 우울하고, 흥행도 우울하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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