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밤샘근무, 과로가 자살 불렀나
툭하면 밤샘근무, 과로가 자살 불렀나
  • 김정덕 기자
  • 호수 229
  • 승인 2017.03.03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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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 가산동 디지털센터에선 무슨 일이…

▲ 신제품 출시 전 LG전자 디지털센터의 업무강도는 극에 달한다.[사진=뉴시스]
위험설비가 가득 찬 공장도 아닌데 툭하면 자살이나 돌연사로 직원이 죽어 나간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 LG전자 디지털센터 얘기다. LG전자와 한 건물을 쓰는 협력업체 직원은 “거긴 ‘갑甲’이라 우리보다는 낫다”면서도 “이곳은 업무 강도가 센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탄했다. 자살이나 돌연사가 ‘과로 때문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도는 이유다. LG전자 디지털센터에선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지난 14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위치한 LG전자 디지털센터에서 연구원 한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에선 “과로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 나온다. 2012년 5월과 6월엔 LG전자 연구원과 협력업체 직원이, 지난해 8월에는 휴대전화 개발자 2명이 자살과 돌연사로 목숨을 잃은 적 있어서다. 대략 1년에 1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LG전자 측은 “절대 과로 때문이 아니다”면서 “과로 의혹이 있다면 유족들이 산재보험이라도 신청할 텐데, 아무도 산재보험을 신청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LG전자 디지털센터는 안 그래도 ‘노동강도가 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내부 구성원들은 이곳을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라고 부를 정도다. 특히 이곳에 둥지를 튼 LG전자 협력업체들의 사정은 말이 아니다. 익명을 원한 LG전자 협력업체 관계자는 “5~6시간 초과근무는 기본이고, 초과근무수당은 지급되지 않는다”면서 “주5일 근무는 고사하고 주6일 근무도 꿈꾸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LG전자 디지털센터의 주요 업무는 신제품 개발. 그래서 목업(mock-upㆍ시제품을 디자인하거나 작동이 가능한 실물 크기의 모형을 제작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LG전자는 2010~2011년 목업디자인업체 중 5곳(그랜드ㆍ한빛ㆍ엠엔에스ㆍ일진ㆍB2M)을 선정해 LG전자 디지털센터에 입주시켰다. LG전자 스마트폰ㆍTVㆍ냉장고 등의 목업을 한곳에서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입주 과정부터 개운치 않았다. LG전자가 내건 조건은 업체당 1000~1650㎡(300~500평)의 작업공간을 주는 대신 5000만원가량의 월 임대료를 내는 거였다. 가산디지털단지 사무실임대료가 3.3㎡당 2만~4만원이었던 걸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럼에도 상당수 업체들이 입주를 원했다. 업체 관계자는 “비싼 돈을 내고 입주하는 대신 LG전자의 일감을 안정적으로 받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면서 “때문에 일부 업체는 자기 건물까지 팔고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생각했던 만큼 일감은 나오지 않았다. LG전자의 신형 스마트폰이 줄줄이 실패한 탓이었다. 5개 업체는 제품 모델이 바뀔 때마다 저가경쟁입찰을 벌였다.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한 업체도 적지 않았다. 협력업체 관계자는 “직원 50명 이상이라는 조건까지 다 채워서 들어갔는데, 일감이 많지 않아 (직원을) 다시 내보내야 했다”면서 “몇개월 근무하고 나간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LG전자의 폭탄 된 목업협력업체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가뜩이나 센 근무 강도는 더욱 세졌다. 근로기준법은 ‘그림의 떡’으로 전락했다. 협력업체에 근무하는 경력 25년차의 목업기술자 오관일(가명)씨는 “스마트폰을 예로 들면 신제품 1개당 디자인 목업을 100개가량 제작해야 한다”면서 “작업 지시는 금요일에 하고 월요일 오전에 봐야겠다고 하면 꼼짝없이 주말은 날아가고 특근을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건비 감축을 위해 인원을 줄였으니 근무강도가 더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거다.

사고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협력업체 기술자들이 충분히 쉬지도 못한 상태에서 기계를 조작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사고가 나도 보상체계가 엉망이라는 점이다. 오관일씨는 “협력업체 사장들이 산재처리를 하지 않고 공상처리를 한다”면서 “요즘 일부 업체에서는 공상처리조차 하지 않고, 개별 보험을 들어 보험처리하는 곳들도 있다”고 말했다.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해당 법률에 따라 산재 보험료를 내고, 직원이 사고를 당하면 이 보험으로 보상하는 방식이다. 반면 공상처리는 법적 조치가 아니다. ‘회사 업무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재해를 입었을 경우 사업주가 직접 치료비를 보상해주는 거다. 비슷해 보이지만 산재처리를 하면 장애진단 시 연금을 받을 수 있고, 후유장애까지 치료할 수 있으며, 치료 중 실업급여도 받는다는 점이 다르다. 재해를 입은 당사자로선 산재처리를 하는 게 더 이익이다.

사업주들이 산재처리를 꺼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고용노동부가 사업장의 안전관리를 하면서 산재보험 기록을 기준으로 평가하다보니 사업주들이 산재처리를 꺼린다”면서 “안전관리 감독과 산재보험 보상체계를 분리해서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화’ 사라지면서 사망사건 늘었나

얼마 전까지 협력업체 한 곳에서 일했던 26년차 목업기술자 박준영(가명)씨는 “LG전자 디지털센터 안에서 손이 잘리거나 얼굴이 뭉개지는 사고가 나도 대부분 조용히 처리한다”면서 “LG전자 측도 알고 있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 노무사는 “원청업체가 협력업체의 불법행위 등에 대해 원청업체가 관리감독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가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오관일씨와 박준영씨는 “신제품 발표회가 있을 때는 밤샘근무도 부지기수”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LG전자 소속 연구원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제품 하나당 100개에 달하는 디자인을 뽑아내야 하는 연구원들도 쉴 틈이 없다. 협력업체보다는 ‘갑甲’이니 우리보다는 낫지만, 그 연구원들도 정말 힘들어한다.”

이들의 얘기가 사실이라면 LG전자 디지털센터는 내부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품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공교롭게도 지난 23일 LG전자는 TV 신제품 발표회를 열었고, LG전자 연구원은 14일에 숨졌다. 내부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한번쯤은 점검해야 할 때다. LG그룹의 경영 철학은 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한다는 뜻의 ‘인화人和’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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