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한국, 중국, 일본, 대만, 홍콩, 오키나와 등 동아시아의 출판인들이 함께하는 “동아시아 출판인회의 부천대회”가 지난 24일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5층 세미나실에서 열렸다. 이날 출판인들은 현 시대 동아시아의 상황을 짚으며, 출판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이 있는지 논의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동아시아의 인문학술 도서 번역과 출판, 유통을 목적으로 한 민간 국제회의이다. 이번 부천대회는 지난해 유네스코 창의도시에 가입한 것을 기념하여, 부천시와 부천시립상동도서관이 주최 및 주관했다.

한철희 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좌)과 장덕천 부천시장(우). 사진 = 육준수 기자
한철희 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좌)과 장덕천 부천시장(우). 사진 = 육준수 기자

행사는 한철희 동아시아출판인회의 회장(돌베개 출판사 대표)과 장덕천 부천시장의 축사로 시작됐으며,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기조강연을 맡았다. 이후에는 홍콩의 ‘리안’과 오키나와의 ‘모로미 시즈코’, 한국의 ‘강맑실’, 중국의 ‘잉홍’, 대만의 ‘장칭’, 일본의 ‘야마모토 도루’ 등 각국의 출판인들이 “사회적 상황에 대응하는 출판의 역할 : 2018년 각 지역의 HOT ISSUE”를 주제로 발제했다. 

한철희 회장은 “이번 회의는 시대적 상황과 나라, 지역 별로 각기 다른 상황과 이슈에 대비하는 출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대에 응답하는 출판인의 고민을 함께 나누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덕천 부천시장은 유네스코 창의도시 가입 1주년이 된 것을 언급하며, “부천은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국내외 모든 분야에서 인권과 문화 다양성을 증명하고자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현재는 통일 줄탁동시의 시대! 지금이 오기까지 출판은 어떤 역할을 했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사진 = 육준수 기자

기조강연을 맡은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현재를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히 오가는 ‘줄탁동시의 시대’라고 이야기했다. 줄탁동시는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어미가 밖에서 같이 쪼아주는 모습을 말하는 사자성어이다. 한 교수는 현재 한반도는 국제정세의 변화라는 외부 요인 뿐 아니라, 남과 북 각각의 내부 요인이 합쳐져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 시대는 과거부터 민주화의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민주화에는 출판인들이 많은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70년대 독재정권 당시 많은 이들이 출판계로 뛰어들었다고 전했다. 박정희 정권 당시 서울대학교에서 교수직에서 파면된 백낙청은 창비 출판사를 만들었으며, 직장을 잃은 기자들도 출판사를 차린 경우가 더러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에서 데모하다 제적된 학생들이 그 출판사의 직원으로 취직을 하고, 그들이 낸 책으로는 후배들이 다시 세미나를 여는 하나의 생태계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독재정권은 지식인들을 쫓겨나게 했지만 역설적으로 “70년 세대를 중심으로 출판계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밥 굶지 않고 자기 소신을 펼쳐나갈 수 있는 장이 사회에 만들어졌다.”며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에는 출판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홍구 교수는 당시 지배계층은 민중이 자기의식을 갖는 것을 경계했다며, 출판은 민중의 의식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고 이야기했다. 불온한 서적에 대한 압수수색 등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극단적인 반공에 맞서 좌파 성향의 책들을 출간했다는 점이 그렇다. 특히 한 교수는 “한국민중사 사건”을 한국 출판계의 중요한 사건으로 꼽았다. 한국민중사연구회가 펴낸 “한국민중사”는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다룬 책으로, 풀빛 출판사를 통해 출간됐으나 ‘민중’이라는 단어가 불순하다고 여겨져 대표인 나병식은 구속, 편집부장인 김명인은 불구속됐던 사건이다. 한 교수는 “민중이 자기 입장에서 세상을 봐야한다고 주장했더니 구속이 됐다.”며 출판은 이런 식으로 민중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끝으로 한홍구 교수는 출판의 역사는 민주화와 함께 진행되어 왔다고 이야기하며, 다가올 통일의 시대에는 출판이 어떤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 앞으로의 출판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목소리 높여야 

리안 홍콩 삼련서점 부편집장. 사진 = 육준수 기자
리안 홍콩 삼련서점 부편집장. 사진 = 육준수 기자

홍콩 삼련서점의 부편집장을 맡고 있는 리안은 현 시대에 출판계의 상황은 좋다고 말하기 어려우며 독서 인구도 계속 줄어들고 있지만, 그럼에도 현 시대의 출판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소리치는 한 번의 운동이라고 이야기했다. 출판은 사회성을 내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문, 사상적인 부분을 전파하는 데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삼련서점에서는 출간된 책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책들을 다수 펴냈다고 리안 부편집장은 말했다. 사망권을 요구한 전신마비 환자, 동성애자, 노예화된 가정부, 동물권자 등이 바로 사회적 약자들이다. 

“나는 안락사를 원한다”는 경추 골절로 인해 목 아래에 마비가 온 청년 빈자이를 다룬 책이다. 그는 사지마비 환자를 대변해 머리꼭대기에 달린 젓가락으로 자판을 두들겨 저서를 집필했다. 이 책은 전신마비 환자가 살아있으면서 느끼는 무기력함을 이야기한 책으로, 리안 부편집장은 이 책이 “사지가 마비된 이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다.”는 화두를 홍콩 사회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리안의 발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리안의 발제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또한 홍콩의 유명 디자이너 덩다쯔가 동성애자로서의 심리적 고통을 느낀 “별만이 동행하는 홀로 가는 여행”과, 홍콩 고용주의 집에서 일을 하며 노예처럼 취급 받는 소수민족 가정부의 이야기를 다룬 “가사도우미-우리집에 있는 낯선 사람”, 생명의 상부상조를 주장한 홍콩 작가 씨씨의 “인간 등활” 등의 책을 펴내며 사회적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전했다. 

끝으로 리안 부편집장은 삼련서점의 전 회장은 “출판인은 사회를 관찰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다며, “책이라는 것은 하나의 태도이고 캠페인이다. 사회발전을 이끌어내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때문에 향후에도 여러 분야에서 지식의 전승 뿐 아니라 감정의 공유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회의 둘째 날인 20일에 참여한 세계 출판인들은 “경험으로 배우다 : 출판, 경험을 나누다”를 주제로 자신들의 출판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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