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주 ‘불문명한 대답’ 展

▲ ❶ 얇은 찬양 A Frail Hymn, 2017, Korean Paint on Linen, 100×162㎝ ❷ 오목한 노래 A Concave Song, 2017, Korean Paint on Linen, 120×240㎝ ❸ 내가 본 것 Things I Have Seen, 2017, Korean Paint on Linen, 120×81
낯익은 소재인데, 들여다볼수록 낯설다. 이진주 작가의 작품을 바라볼 때 드는 기분이다. 커다란 돼지 한 마리가 흰 천에 누워 평화롭게 자고 있다. 하지만 그 아래 엉켜있는 사람의 눈동자는 매섭다. 주변에 화분이 널브러진 가운데 엄마 무릎을 베고 누운 아이. 하지만 엄마도 화분이 돼버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성들이 캔버스 표면을 표류하듯 불안하게 서성이기도 한다. 그 곁에는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어색한, 세심한 듯 거칠게 뒤엉킨 오브제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때론 수수께끼 같고, 때론 오싹하거나 비밀스러운 작품들은 마치 끝나지 않은 문장과도 같다.

2003년 홍익대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개인전을 통해 주목을 받은 이진주 작가가 2014년 뉴욕 전시에 이어 또 한 번 개인전을 연다. ‘불분명한 대답’이라는 타이틀로 회화와 설치작품 10점을 전시한다.

“그동안 ‘대화’ 혹은 기억과의 ‘대면’에 주목했다면 이번엔 감춰진 내면끼리의 ‘불완전한 대화'를 다뤘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번 전시는 관찰자적 시점이 더 깊어졌다. 아주 세밀하게 작업한 극사실화임에도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다.

“우리가 다 알고 경험하는 것이지만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낯설고 오묘한 지점을 깨닫게 해주는 예술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생활 속에서 무심히 툭툭 떠오르는 작은 ‘파편’들에 집착하는 작가는 기억의 조각, 생의 편린들을 그렇게 캔버스 안에서 하나씩 맞춰나간다. 아주 세밀하게 재해석하는 그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조각조각 맞춰진 파편들은 기이하거나 낯설다. 그러면서도 한 폭의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어떠한 제목도 붙이지 않은 채 약 3년간 작업실에 펼쳐 놓고 그 위에 차곡차곡 형태를 쌓아온 ‘오목한 노래’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2014년 어느 날부터 작가의 진부한 삶 속에 콕콕 찌르듯 침투해 들어온 예기치 못한 사건의 잔상이다. 작가는 거짓말처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과 그것이 남기고 간 ‘부재의 형상들’과 마주했다.

기존 전시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조명도 작품해석에 도움을 준다. 벽은 어둡고 조명은 작품 전체를 환하게 비춰 세밀함이 강조되는 작가의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수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이진주 작가의 ‘불분명한 대답’은 서울 종로구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5월 7일까지 계속된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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