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폭탄에 한풀 꺾인 베를린 구상

북한과 미국의 전쟁발언이 심상찮다. 전쟁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많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7월에만 해도 문재인 대통령은 ‘베를린 구상’을 내놓고 “남북관계의 운전대를 잡겠다” 호언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스스로 발목 잡힌 구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이 흔들리고 있다.[사진=뉴시스]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전환해 안전을 보장받을지 비참한 종말을 맞을지 선택해야 할 것이다(8월 2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북한의 핵 능력을 제거하기 위한 ‘예방전쟁’도 염두에 두고 있다(8월 5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미국 위협을 멈추지 않는다면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다(8월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중장거리 전략 탄도로켓 ‘화성-12형’을 발사해 괌을 포위사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8월 9일 조선중앙TV).”

“‘화염과 분노’ 경고 충분하지 않다. 북한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8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최근 북한과 미국이 다양한 경로로 주고받은 ‘대화’다. 내용만 두고 보자면 이미 북한과 미국은 전시상황이다. 사실 북한과 미국의 ‘말 전쟁’은 올해 초부터 꾸준히 계속돼왔다. 하지만 지난 5일을 기점으로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지난 5일(현지시간)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예방전쟁’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상대방이 공격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입장이 “공격하지 않아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 전쟁까지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전쟁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주변 여건도 이런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6일 UN안전보장이사회에서는 북한 광물 수출 봉쇄 방안을 담은 ‘대북결의안 2371호’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8일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들의 모임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는 “안보리 결의를 즉각 준수하라”는 대북 경고 성명을 채택했다. 국제사회에서의 전방위적 대북압박 분위기가 조성된 셈이다.

표현 거세지면서 긴장 가속화

언론보도 역시 가세하고 있다. 8일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 기술 확보에 성공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같은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미국 위협을 멈추지 않는다면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전에 없던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을 맞은 북한의 반격도 거세다. 북한은 7일 “미국에 1100배로 결산할 것”이라면서 유엔안보리 결의안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 다음날인 9일에는 전략군 사령부 성명을 통해 “괌을 포위사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맞불을 놨다. 특히 “화성-12형은 3356㎞를 날아가 괌 주변 30~40㎞ 해상에 떨어질 것”이라면서 “8월 중순까지 괌 포위사격 방안을 최종 완성할 것”이라고 매우 구체적으로 위협했다.

그러자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 경고가 충분하지 않았다”면서 “북한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도 “북한 정권의 행동은 우리에 의해 지독하게 제압될 것이며, 어떤 무기 경쟁이나 전쟁에서도 주도권을 잃게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표현은 ‘포위사격’ ‘예방전쟁’ ‘화염과 분노’ 등으로 점점 더 과격해지고, 구체적인 전쟁 계획까지 나오고 있다. 전쟁 발언 주기도 1일 간격으로 좁혀졌다. 이에 따라 한반도 긴장이 가속화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대치국면 속에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내고자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 계획이 틀어지고 있다는 거다. 이미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은 동력을 크게 잃은 모양새다.

베를린 구상이란 7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문 대통령이 밝힌 ‘한반도 평화 구상’이다. 5대 정책 방향을 비롯해 정책 실행을 위한 4가지 대북 제안을 담고 있다. 요지는 우선 전쟁 방지에 초점을 맞춰 평화를 정착한 후, 북한의 안보ㆍ경제적 우려를 잠재워 ‘체제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비핵화’를 추진하겠다는 거다. 이산가족 상봉을 제시한 것도 이를 통해서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전쟁 불사’ 기세여서 당분간 대화국면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북ㆍ미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한국이 끼어들 여지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 북한과 미국이 연일 말폭탄을 터뜨리고 있다.[사진=뉴시스]

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을 통해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고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정작 핸들은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남북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 등을 통한 대화를 제안을 했음에도 좀처럼 대화국면이 열리지 않는 데에는 애초부터 문재인 정부가 대화와 압박을 무 자르듯 분리해놓아 병행할 수 없게 됐다는 거다.

‘베를린 구상’ 모순 드러나나

더구나 문 대통령은 7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미가 힘의 우위에 기반한 강력한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을 핵폐기 협상의 장으로 이끌어내는 방법으로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화 시점이 아니라는 걸 강조한 거다. 현재 상황만을 놓고 보면 이전 정부와도 별반 다르지 않은 스탠스다.

일부에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을 코너로 몰아넣은 다음 대화 테이블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하고, 핵개발 중단을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유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대화를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치 않으며, 제재가 대화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면서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대화를 하는 것이지, 여건이 조성돼야만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과거 미국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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