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페이퍼 = 김상훈 기자] 프리랜서라는 단어는 일정한 회사나 집단에 소속되지 않고 자유계약에 의해 일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프리’ ‘소속되지 않는다’, ‘자유계약’ 등의 표현으로 인해 마치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들리지만 실상은 열악한 노동 환경에 고통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프리랜서가 법적으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으로, 프리랜서와 기업 간의 계약은 사용자와 근로자의 계약이 아니라 사업자와 사업자 간의 계약으로 간주된다. 노동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노동3권 또한 적용되지 않는다. 

영화, 드라마와 같은 영상 매체부터 만화, 웹툰, 일러스트, 소설, 음악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프리랜서로 문화 콘텐츠 창작에 기여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18 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업예술인 중 프리랜서의 비율은 7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프리랜서는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했기에 횡포에 가까운 불공정계약이나 갑질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당해야만 했다. 

오랜 기간 고통받아온 프리랜서 창작자들은 지난 수년 사이 노조를 결성하며 노동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특히 막내 작가 등으로 불리며 고초를 겪은 드라마 · 방송 작가들이 적극적으로 운동해 참여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웹소설, 웹툰, 일러스트 작가들이 모인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자지회(이하 디콘지회)가 설립되기도 했다. 

하신아 부지회장과 김희경 지회장 [사진 = 뉴스페이퍼]
하신아 부지회장과 김희경 지회장 [사진 = 뉴스페이퍼]

디콘지회는 불공정한 계약을 근절하고 창작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스페이퍼에서는 디콘지회 김희경 지회장과 하신아 부지회장을 만나 창작자에게 왜 노조가 필요한지를 들어보았다. 

- ‘프리랜서에게 무슨 노조?’ 근로기준법, 노조법 개정 요구 나오는데 시대착오적 생각

디콘지회는 레진코믹스에 맞선 레진불공정행위규탄연대와 사상검증으로 피해를 입은 여성일러스트레이터연대(WFIU)를 모태로 만들어진 프리랜서 노조다. 두 연대 모두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활동했으며, 레진불공정행위규탄연대가 레진코믹스 측으로부터 사과와 보상을 받으며 소정의 성과를 얻은 이후에는 두 연대 간 교집합을 찾으며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모색했다. 18년 중순부터 노조 결성의 윤곽을 그렸으며 최종적으로 18년 12월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자지회로 정식 설립된다. 

노조 설립 후 프리랜서 창작자들로부터 가입 문의가 쇄도했고 응원의 말이 잇따랐지만 반발도 컸다. 김희경 지회장은 “저희가 여성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기에 그에 대한 사상검증이나 비하발언이 이어질 줄 알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반발의 형태는 전혀 뜻밖이었다. ‘프리랜서가 무슨 노조냐’는 식의 공격에 시달린 것이다. 법을 열거하며 프리랜서는 노조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 프리랜서는 1인 사업자이니 노조가 필요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신아 부지회장은 “노동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노동3권을 모르거나, 프리랜서는 단체를 만들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2명만 있어도 헌법상 권리가 보장된다. 노조를 만들 수 없는 근거로 근로기준법이나 노조법을 제시하는데,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고 이야기했다. 

프리랜서는 법적으로 노조를 결성하는데 어려움이 크다. 프리랜서가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에서 정의하고 있는 근로자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움이 크다뿐이지 노조를 만드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며, 근로자가 아니라도 노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2013년 노조창립허가를 받은 청년유니온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청년유니온은 대한민국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으로, 만 15세부터 만 39세 미만의 청년 노동자라면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고 프리랜서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은 택배기사, 배달원,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직 근로자의 처우 개선 주장이 제기되며 법 개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는 단계를 거치고 있다. 

창작자 노조의 존재는 근로기준법이나 노동조합법의 개정과 별개로 가능할 수 있으리란 전망도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와 미투 운동 등으로 인하여 재정이 촉구된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인이 단체를 구성하여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예술인 조합’이라는 형태로 제시한다. 예술인 조합은 2인 이상의 예술인이 모인다면 누구나 설립할 수 있으며 단체교섭권을 법적으로 인정받는다. 이 법은 예술인의 의견 청취 단계를 거쳐 추후 법안으로 발의될 예정이다. 

하신아 부지회장은 “영화산업 등의 분야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오래됐는데, 의외로 웹툰, 웹소설, 일러스트 분야에서 창작자와 수용자들이 노조는 안 된다고만 생각하고 계시더라. 그만큼 오랫동안 타성에 젖어있었던 것 아닐까.”라고 이야기했다. “본인이 창작노동자임에도 노동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라고 가볍게 정체하는 것 같다.”며 “많은 창작자들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다보니 마음의 여유가 많이 없는 상황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뉴스페이퍼]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 = 뉴스페이퍼]

- 대형플랫폼의 갑질 대응하기 위해 창작자 노조 필요할 것

디콘지회는 현재 대형플랫폼이 작가들과 직접 맞닿지 않고 중간에 ‘쿠션’을 만들어 책임을 회피하는 문제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4월 11일 리디북스에 작품을 연재하는 A 작가는 자신이 리디북스로부터 의도적으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희경 지회장은 “A 작가는 만두코믹스라는 곳과 계약을 하셨던 분인데 만두코믹스를 리디북스가 흡수했다. 이제는 리디북스와 계약한 셈인데 리디북스는 만두코믹스라는 표시를 딱지처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놔두고, 고의적인 게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빈번하게 프로모션에서 제외시켰다.”고 설명했다. 

A 작가가 문제제기를 한 이후 리디북스에서는 문제제기와 관련된 사과문을 게시했으나 프로모션은 제대로 진행됐으며 안내가 미숙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김희경 지회장은 “이 이슈가 처음 제시되고 불매운동 일어날 때에는 당장 수습할 것처럼 사과문을 발표하더니 지금은 아무 말이 없다.”며 “처음에는 면담할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사람들의 관심이 사라지면 외면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하신아 부지회장은 “케이툰도 비슷한 문제다. KT는 모든 문제는 에이전시와 해결하라고 하는데, 악질적인 시장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케이툰 문제는 KT가 운영하던 웹툰 플랫폼 케이툰이 연재 작가 10여 명에게 연재 중단을 통보한 사건이다. 매출 부진이 이유였지만 작가들은 매출 리포트를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KT에 직접 항의하고자 했지만 KT는 작가들과 접촉하지 않았고, 작가와 KT 사이에는 에이전시가 끼어 있었다. 

플랫폼은 향후 더욱 커지며 영향력 또한 막대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신아 부지회장은 “플랫폼 노동이 되면서 예전보다 훨씬 창작노동자의 권리가 악화되는 상황”이며 노조의 필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았다. 프리랜서라는 존재 자체가 개인사업자로 간주되고 노동자로서 어떠한 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노조가 작가 권익을 위해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신아 부지회장은 “노동자의 정체성이 왜 필요한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왜 아니어야 하는가, 라고 되물어봐야 한다.”라며 창작자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말이 일종의 마취약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스로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권리를 찾는데 소홀해지고 일방적으로 착취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신아 부지회장은 “우리가 노동자라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며 창작자가 창작노동자라는 점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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