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랭크인 | 유리정원

▲ 영화 ‘유리정원’의 장면들.[사진=더스쿠프 포토]

식물의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던 과학도 ‘재연(문근영)’은 후배에게 연구 아이템을 도둑맞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빼앗긴다. 충격에 빠진 그녀는 세상을 등지고 숲속 유리정원 안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충격적인 실험을 이어간다. 같은 시기 무명 소설가 ‘지훈(김태훈)’은 소설의 실패로 슬럼프를 겪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재연을 알게 된 후 그녀의 삶을 훔쳐보기 시작한다. 지훈은 재연을 모티브로 초록색 피가 흐르는 여인에 관한 소설을 연재해 순식간에 인기 작가로 거듭난다. 하지만 재연이 충격적인 미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면서 상황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게다가 사건이 지훈의 소설 속 이야기와 동일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다.

영화 ‘유리정원’은 한국영화에선 보기 힘든 독특한 소재와 독창적인 스토리를 갖고 있다. 판타지적인 요소 속에 현실적인 공감을 가미한 미스터리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일상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독특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는 과학도라는 지극히 사실적인 무대에 초록의 피ㆍ나무의 저주라는 환상적인 요소를 배치해 소설과 현실을 넘나든다.

하지만 영화가 얘기하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다른 사람의 욕망에 의해 삶이 파괴된 주인공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린다. 연출을 맡은 신수원 감독은 “영화는 ‘재연’이라는 한 과학도가 신념을 가지고 연구한 것이 다른 이의 욕망 때문에 무너지면서 숲으로 들어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며 “삶이 파괴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유리정원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남동철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는 “한국영화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준 영화”라는 말로 개막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상처를 받고 유리정원에 자신을 고립시킨 과학도 재연역은 문근영이 맡아 열연을 펼쳤다. 그녀는 자신만의 신념을 갖고 이상을 꿈꿔온 순수한 과학도가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에 의해 좌절을 맛보는 과정을 깊이 있게 연기했다.

미스터리한 무명작가 지훈역은 연극 무대에서부터 연기력을 다져온 배우 김태훈이 맡았다. 김태훈은 소설의 실패로 밑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재연의 삶을 훔쳐보면서 성공하는 지훈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그는 재연의 비밀스러운 삶에 공감하면서도 성공 앞에서 흔들리는 이중적인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밖에 현실적인 이유로 재연을 배신한 정교수는 서태화가 맡아 무게감을 더했다. 재연을 배신하는 후배 연구원 수희는 영화 ‘마이 라띠마’로 데뷔와 동시에 청룡영화제 신인상을 거머쥔 신인 박지수가 연기했다. 꿈과 이상이 현실에 의해 좌절된 주인공이 위로받는 과정을 통해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한다.
손구혜 더스쿠프 문화전문기자 guhso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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