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마술사 이은결의 인생과 철학

이은결(36)은 한국의 대표적인 마술사다. 그는 각종 콜라보 공연으로 마술의 영토를 확장 중이다. 최근엔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저자 정재찬 교수와 ‘케미프로젝트 이은결 X 정재찬’을 선보였다. 그는 종사자의 활동 무대를 만들어 내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리더는 위계질서를 따지기보다 영역을 넓혀야 합니다.”

▲ 이은결은 꽃을 좋아하는 별난 황소 페르디난드를 연상시켰다.[사진=EG프로젝트 제공]

소년은 내성적이었다. 학교에서도 존재감이 없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마술학원에 등록했다. 곧바로 마술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마술사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무대 공포증에 시달린다. 마술사 이은결씨 이야기다. 그는 “마술 하는 사람은 스스로 특별하다고 느끼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게 마술의 함정이기도 합니다. 재능을 속이기도 쉽거든요. 마술 실력이 없어도 트릭 도구를 사용해 얼마든지 박수 받을 수 있습니다.”

✚ 이은결씨에게 마술은 어떤 것인가요?
“가능성입니다. 새로운 콘텐트를 개발해 마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저의 가능성도 확인하는 거죠.”

그는 마술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대에 선다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술은 나를 알게 해 준 거울이라고도 할 수 있죠.”

10월 27일 그가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저자 정재찬 교수와 함께 선보인 콜라보 공연 ‘케미프로젝트 이은결 X 정재찬’ 첫 날 공연은 전국의 소방관과 그 가족 240여명이 관람했다. 페이스북 그룹 ‘시인의마을’이 소방관들에게 이 공연을 기부하고 싶어 하자 두 사람이 뜻을 같이했다.

이은결씨는 공연 도중 이 사연을 소개하며 가수 정태춘이 만들고 부른 노래 ‘시인의마을’을 틀었다. 이들과 전국의 소방관들 사이에서 다리를 놓은 대한소방공제회 측은 “강릉ㆍ고성ㆍ광주에서까지 온 소방관과 가족들이 모처럼 힐링하는 기회였다”고 전했다. 본래 12세 이상 입장가이지만 그보다 어리거나 연로한 관객도 꽤 있었다고 한다.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었는지도 모른다.

✚ 왜 하필 소방관입니까?
“공무원 중 아웃사이더잖아요? 정말 중요한 일을 하지만 가장 아웃사이더입니다. 다른 사람들 돌보느라 스스로를 제대로 못 돌보는 소방관도 위로가 필요합니다. 저희 회사가 있는 경기도 이천에서는 이런 기회를 더러 만들어요.”

그는 소방관들을 위해 공연 첫머리에 대형소화기로 불을 끄는 장면도 끼워 넣었다.

✚ 마술과 시가 만났습니다. 이은결씨의 트레이드 마크인 화려한 대형 마술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헛헛했을 수도 있겠어요?
“상업 논리로는 쉽게 못하는 공연입니다. 검증된 콘텐트가 아니었고 실험적인 무대이기도 했어요. 돈이 되려면 소극장에서 몇달은 해야 됩니다. 회사에 올해 열심히 일했으니 투자 좀 하자고 했어요.”

▲ 마술사 이은결씨는 “실패를 용인해야 새로운 게 나온다”고 말했다.[사진=뉴시스]

✚ 마술사가 되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마술 공부 말고 다른 공부를 해야 남다른 마술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창작을 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남에게 배운 걸 하면 틀에 갇히죠. 끊임없이 의심하고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합니다.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저와 최현우씨(2009년 FISM 월드 챔피언십 오리지널리티 어워드 수상자. 가장 권위 있는 이 마술대회에서 이은결은 2006년 월드 챔피언십 제너럴매직 부문 1위를 했다.)가 하지 않은 마술을 시도하기 바랍니다. 마술은 스포츠가 아니에요. 너도 나도 다하는 건 이미 마술이 아니죠. 이은결의 성을 깨뜨리는 사람이 되세요.”

그는 심지어 이은결을 따라하느라 정작 자신은 1년밖에 안 다닌 동아방송예술대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공연계도 문제가 있어요. 새로운 것을 요구하면서 검증된 예시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새로운 건 남들이 여태 안 해 본 거거든요. 실패를 허용해야 새로운 게 나오죠.”

✚ 이은결씨의 영업비밀은 뭔가요?
“대중이 좋아하는 구성과 리듬을 경험과 감으로 아는 거죠. 그래서 전체의 30%는 제가 하고 싶은 실험을 합니다. 7대3의 법칙이죠. 30%를 넘겨 6대4가 되면 저는 행복하지만 흥행이 위험해집니다. 관객이 원하는 건 대중공연에서 보여 주고 연중 30%는 하고 싶은 실험을 합니다.”

✚ 이은결 마술의 흥행 코드는 뭐라고 할 수 있나요?
“버라이어티입니다. 마술의 스펙트럼을 넓혔고 더 넓히려 합니다.”

그는 정보화 시대 인터넷 세상의 도래로 마술이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마술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보는 마술에서 시와 함께 읽을 수 있는 마술 등으로 확장을 시도하는 것도 그래서라고 말했다. “모든 예술의 바탕은 문학이라고 봅니다. 마술은 예술이 아니지만 문학을 차용할 필요가 있어요. 시와 손잡은 건 다분히 의도적인 거예요.”

케미프로젝트에서 정재찬 교수는 꽃을 좋아하는 황소 페르디난드를 소개했다. 어려서부터 꽃향기 맡는 것을 좋아한 페르디난드는 힘센 황소로 자라 마드리드 투우시합에 나가게 됐지만 투우장을 찾은 아가씨가 던진 꽃을 보고 전의를 상실한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 꽃향기를 맡으며 살아간다. 디즈니는 1938년 이 이야기를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고 이 애니메이션은 오스카상을 탄다.

“마술엔 아방가르드가 없었다”고 말하는 이은결은 꽃을 좋아하는 별난 황소 페르디난드를 연상시켰다. 2004년부터 작가주의 공연을 해 온 그는 일루셔니스트라는 직함을 사용한다. 그의 마술을 집대성한 공연 디일루션은 관객을 환상적인 세계로 인도한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조화시켰다.

마지막에 보여주는 아프리카의 초원과 석양은 그림자 퍼포먼스다. 그가 기구의 도움 없이 손가락만으로 만들어내는 그림자는 라이언킹 주제가를 배경으로 온갖 동물이 된다. 누구나 어린 시절 한번씩 해 본 손동작이 마술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탄성을 자아내지만 신기하지는 않다. 그보다 온기가 느껴진다. 그는 2013년 선보인 작가주의 공연 ‘디렉션’을 들고 지난해 파리를 찾기도 했다.

✚ 일루션은 마술과 어떻게 다른가요?
“트릭이 일루션의 일부라면 마술에서는 전부죠.”

✚ 얼마나 버나요?
“개인으로서의 수입은 제 또래 샐러리맨과 비슷하거나 조금 많을 거예요. 고정적인 수입이 없고 번 돈은 거의 다 공연에 투자하죠.”

✚ 이은결의 마술은 계속 진화하는 거 같습니다.
“하고 싶은 공연을 할 뿐입니다. 과거 무대에 서면 행복하다고 말했었지만 관객의 반응이 좋은데도 저는 행복하지 않을 때가 많았어요. 10년 만에 어릴 적 꿈을 이뤘지만 매너리즘에 빠졌죠. 꿈을 계속 간직해야 하는데 꿈을 잃었어요. 나의 생각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면 이 공연이 과연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짜임새 있는 완벽한 무대보다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공연을 하게 됐어요. 마술과 시가 만나는 케미프로젝트 같은 공연은 아직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힘들고 돈도 안 돼요.”

✚ 돈 안 되는 공연을 왜 꾸준히 하나요?
“좋아하는 거 하면서 돈도 벌겠다는 건 욕심이죠. 무엇보다 마술 시장을 만들어 내는 데 기존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만들어낸 게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면 그 공연을 제가 안 해도 돼요. 다른 사람을 트레이닝해 무대에 세울 수도 있죠. 제가 만든 작품이 여러 나라에서 지속적으로 공연되고 사람들에게 회자되기를 바라요.”

이 ‘이단아’는 그렇게 되면 자신의 콘텐트를 사람들이 더 이상 마술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예언이 이뤄지면 소원도 이루는 셈이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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