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 [사진 = 김보관 기자]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대학교 1, 2학년 때는 민주화가 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된다고 배웠어요. 하지만 여성운동이 필요했죠. 졸업 후 자연스럽게 여성운동의 영역으로 들어왔어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당하는 차별과 폭력을 일상적으로 깨달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운동이 해답이라 생각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조직국장에서 사무국장 그리고 대표로, 매 자리를 지키며 여성 인권을 위해 노력해온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의 회상이다.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한국여성의전화는 1983년에 창립돼 여성에 대한 폭력에 주목하며 ‘가정폭력’과 같은 사건의 이름 붙이기에 관심을 쏟았다. 기존에 ‘사적인 영역’으로 인식되던 일들을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하는 일에 집중한 것이다. 

고미경 대표는 “여성에게 행해지는 폭력은 사소하거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 운을 뗐다. 그가 언급한 한국여성의전화 창립취지문은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폭력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부하지 못하는 상식이며 이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이 결코 개입해서는 안 될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 곧 가정 내의 폭력과 성폭력에 대해서만은 아직도 사회가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관용적인 태도마저 보이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한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한국여성의전화는 폭력으로 고통받는 여성들과 함께하기 위해 가장 먼저 상담 사업을 시작했다. 고미경 대표는 “선배에게 들은 바로는 전화기 두 대로, 마포 지하에서 여성 인권 운동의 발을 뗐다. 과연 전화가 올까? 싶었는데 정말 많이 왔다고 한다.”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그간 한국여성의전화는 여성폭력 문제가 국가의 책무성 차원에서 다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이에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특별법, 성매매 방지법의 제정을 위해 힘썼으며 법률이 마련되고 상담소 및 보호시설이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고미경 대표는 “문제를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며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폭력에서 탈출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와 같은 책이 좋은 예시다. 그간 가정폭력은 집안일, 개인적인 일로 여겨지기 일쑤였으며 성폭력 사건에조차도 잘못된 통념으로 인해 2차 가해가 이뤄지는 등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는 측면이 많았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사회문화적으로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는 활동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를 비롯한 단체의 연대체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는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개최했으며 성폭력이 성차별의 결과임을 분명히 하고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의 근본적인 개혁을 촉구했다. 고미경 대표는 “여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해자에 대한 분명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완전한 인권보장, 젠더 관점이 분명한 예방 정책”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 [사진 = 김보관 기자]

“가정폭력방지법” 목적조항의 문제부터 “여성폭력방지기본법”까지

한국여성의전화는 피해자 상담 활동을 바탕으로 세상을 변화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성평등한 정책 변화’에 힘쓰는 일이다. 고미경 대표에 따르면, 가정폭력방지법, 성폭력특별법, 성매매방지법 등에도 개정할 부분이 많았다.

2005년 가정폭력방지법 제1조는 “이 법은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가정폭력의 피해자를 보호함으로써 건전한 가정을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였다. 가정폭력방지법의 목적조항에 ‘건전한 가정 육성’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던 것이다. 

현재 가정폭력처벌법 제1조 역시 “이 법은 가정폭력범죄의 형사처벌 절차에 관한 특례를 정하고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환경의 조정과 성행(性行)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여전히 피해자의 인권보다는 ‘가정유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고미경 대표는 “우리 사회 내 가정폭력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목적조항의 개정은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제 중 하나다. 목적조항이 여전히 건강한 가정유지에 있기 때문에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가정폭력 가해자는 거의 처벌 되지 않거나 미약한 처벌에 그치고 있다. 당연히 피해자의 인권보장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희생으로 위장된 건강한 가정은 없다.”며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조항이 개정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함을 강조했다.

최근 일어난 신림동 스토킹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스토킹’의 경우 일상적이고 자주 일어나는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관련 법이 존재조차 하지 않는다. 현재 스토킹은 경범죄로 처벌되어 고작 1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스토킹처벌법을 재정하라.’는 운동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또한, 고미경 대표는 “성폭력특별법엔 성폭력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함께 강간죄의 구성 요건에서 ‘동의’의 항목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전국 208개 여성인권운동단체와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의 주장이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권고 조항이기도 하다. 

미투 국면 이후 통과된 1호 법안인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경우, 당초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사항이었던 ‘젠더폭력방지기본법’의 입법안이다. 해당 법안 역시 입법화 과정에서 수많은 왜곡과 탈락이 있었다. 예를 들면 제3조에 명시된 ‘여성폭력’의 정의가 ‘젠더에 기반한 폭력’에서 ‘성별에 기반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변경되었다. “이외에도 여러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법안에 모태가 될 수 있는 법안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는 게 고미경 대표의 의견이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처럼 법안과 관련한 문제 외에도 올해로 13회째를 맞고 있는 여성인권영화제, 지속가능한 여성주의 활동가 교육프로그램인 엘프(Empowering Leadership Feminism), 소식지 베틀, 여성인권운동 아카이브, 이주 간격의 이메일 뉴스레터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대표 [사진 = 김보관 기자]

어떤 차이도 차별이 되지 않게

한편 이러한 활동 속 고미경 대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너와 나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 차별되어선 안 된다.”이다. 그에 따르면 “여성을 열등한 시민 혹은 보호 담론 아래 인식하고 바라보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이는 대체로 여성과 여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단체 차원에서의 지향점을 묻자 그는 ‘여성주의적 관점’과 ‘여성주의 상담’을 꼽았다. 기존의 상담으로는 여성폭력 문제에 접근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단체 내 교육도 여성주의적으로 접근한다. ‘개인적인 문제는 사회 구조적 문제다.’,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 ‘상담자와 내담자는 평등하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다시 보자.’ 등의 규율 아래 활동가 자신도 ‘내 안의 가부장성을 씻기 위한 노력’을 거듭한다. 고미경 대표는 “우리가 새로운 사회의 싹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차별 없는 세상은 우리 조직 내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구성원들끼리의 평등 규약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백래시 문제에 관한 질문에서는 “호주제 폐지 때 항의 전화가 속출했다. 가정폭력 관련 법 논의 과정에서 ‘왜 집안일에 상관하려 하냐’는 사람도 많았다. 이처럼 여성 문제는 통념과의 싸움이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그래도 세상은 선한 방향으로 갈 것이다. 변화는 시작되었고 저항은 항상 동반된다.”라며 여성폭력 없는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의지를 확고히 다졌다. 고미경 대표는 “폭력은 감정의 문제나 분노조절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힘과 권력의 문제다. 폭력은 차별의 극단적 형태이며 여성폭력을 없애려면 성평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유엔(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를 꺼냈다.

실제로 유엔(UN)에서 발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2019” 중 다섯 번째 항목에는 ‘성평등(Gender Equality)’이 있다. 해당 항목에서는 “여성 할례 및 조기 결혼 사례는 감소한 반면 여성에 대한 법적 차별, 불공평한 사회적 규범 및 태도, 성적 및 생식 문제에 관한 의사 결정, 정치 참여 정도가 낮은 등 성차별의 근원적인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진전이 미흡하다”고 밝힌 바 있다.

끝으로 고미경 대표는 “여성폭력 없는 성평등한 세상, 모두의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 지속 가능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전체가 여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여성단체 활동에도 관심을 두고 참여해 성평등한 미래를 만드는 데에 함께해주길 바란다.”는 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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