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레이블 ‘공전’만의 시각과 방향, “열심히 깨줬으면 좋겠어요. 저희를”

문학 레이블 공전 일부 구성원 사진 [사진 제공 = 공전]

“멋진 과거가 되는 것이 미래의 목적이에요. 책뿐 아니라 문학에 대한 편견들을 깨고 싶어요. ‘이런 것도 문학이네?’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게요. 문학 레이블 공전은 문학으로 모인 아티스트들이니까 여러 행사를 열기도 하죠. ‘어차피 깨질 새로운 편견을 만들어보자!’라는 다짐도 있어요. 이후의 사람들이 열심히 깨줬으면 좋겠어요, 저희를.”

비주얼문예지 모티프(MOTIF)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비주얼문예지 “모티프(MOTIF)”가 4호 발간을 준비 중이다. 9월 중순 텀블벅에 사전예약 형식의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할 예정이며 정식 발간은 10월 초로 예상된다. 이번 호의 주제는 ‘time off’로 문학이 생업일 때와 취미일 때의 차이, 글을 쓰지 않는 순간의 작가들과 그들의 태도 및 사유에 관해 폭넓게 다룰 계획이다.

텍스트 중심주의를 깨는 ‘패션 잡지’와 같은 문예지

그간 세 권의 책을 낸 모티프는 기존의 문예지와 많은 차이점이 있다. 판형에 차이를 둔 것은 물론, 텍스트 중심의 빼곡하고 지루한 문예지보다 보기 좋고 디자인적으로도 우수한 ‘패션문예지’의 형식을 표방한다.

지난 4월 발간된 3호는 2019 신입특집호 “시발점”으로 이른바 ‘등단’ 제도를 거치지 않았거나 해당 제도를 거친 이후 청탁을 받지 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꾸려졌다. 이에 모티프 측에서 청탁진에게 할애하는 스포트라이트 및 지면 수를 늘리기도 했다. 

모티프 3호 내부 실버 지면 사진 [사진 = 이민우 기자]

공전 이리 대표는 “모티프 3호 중앙에 테마색인 ‘실버’로 작은 판형의 지면을 만들어 변화를 준 이유 또한 처음 펼쳐졌을 때 보이는 작가들의 얼굴이 책의 시작이자 출발점이 되길 바라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작은 판형의 은색 지면에는 새로 마련된 비평 코너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실렸다.

같은 맥락에서 “각 작가의 성향이나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 사람 자체로 이미지화’ 시켜 ‘앨범 재킷’과 같은 지면을 만들고자 노력했다.”는 후일담 또한 들을 수 있었다.

해당 호에서 ‘레트로’의 느낌을 살린 것에 관해서는 “모티프의 취지가 ‘좀 더 많은 대중에게 읽히게 하자.’인 만큼 패션 문예지로서 그때그때의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사하려 한다.”며 “책을 만들기 전 전체 콘티를 짜거나 화보를 찍을 때 옷, 메이크업, 헤어까지 당시의 트렌드를 고려했다.”라고 설명했다.

2018년 4월 1호 “Dirty Cash", 10월 2호 ”Miss Call"을 내며 성공적인 데뷔를 마친 비주얼문예지 모티프가 낸 세 권의 책은 크라우드펀딩이 끝난 지금도 온라인상에서 언제든 구매할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지발간지원사업’ 공모 낙방 후 재선정...

여러 시도와 대중적 인기에도 불구하고, 독립된 자본으로 문예지를 발간하는 과정에서 재정적 난관을 피할 수는 없었다. 청탁비는 물론 인쇄비, 촬영비, 기타 비용을 포함한 초기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힘들었다. 실제로 모티프 측은 “1호와 2호를 합쳐 소나타 한 대 값이 들어갔다.”라고 전했다.

이에 3호 출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진행하는 “2019 문화예술진흥기금 공모사업” 중 하나인 “문예지발간지원사업”에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 발표 당시 낙방 소식을 듣고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공전 유수연 대표는 당시를 회고하며 “낙방에 대한 순간적인 감정, 그런 것들은 쉬이 사라졌다. 그러나 ‘왜 우리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부족했다. 선정 이유나 심사평 또한 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의견을 밝혔다.

문예지발간지원사업은 ‘문학 창작 활동의 중요한 토대인 문예지의 발간을 지원하여 문학 창작 및 비평 활동 활성화에 기여’하는 동시에 ‘문인들의 작품 및 담론 생산 기능을 강화하고, 원고료 지원을 통해 작가들의 기초적인 창작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됐다. 이에 문예지발간지원금은 ‘작가지원금’의 성격을 띤다.

해당 사업 심의 기준 중 ‘유형별 특성화 지표 항목’에는 ‘신규문예지(창간 3년 이내)’ 부문이 있다. 사전에 공지한 세부평가내용은 ‘문학 분야의 필진이 어느 정도 비율로 구성되어 있나, 기존 문학계에 새로운 활력을 일으킬 수 있는 참신하고 다양한 노력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가, 사업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이다. 

유수연 대표는 “3년 이하의 문예지들을 대상으로 ‘사업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의문을 드러냈다. 초기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신규문예지’이자 ‘독립문예지’들의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번 “신규문예지”로 지원이 결정된 문예지는 네 곳 중 두 곳은 민음사의 “릿터(Litter)”, 도서출판 은행나무의 “악스트(Axt)”로 두 군데 모두 대형 출판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후 발표된 심의 결과 및 과정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한국 문학의 다양성’과 ‘문예지의 차별성’ 등을 강조하는 반면 모티프와 같이 신선하고 유의미한 시도를 거듭한 ‘독립문예지’는 단 한 곳도 지원 대상 목록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지원 목록에 문학동네, 창비, 민음사, 문학사상 등 거대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예지들이 다수 등장했으며 그 금액 또한 단체별 지원총액 1,500만원에서 4,000만원을 아우른다. 

이는 앞서 언급한 문예지발간지원사업의 기본 목적과는 다소 상이하다. 연 20억 이상의 순수익이 나는 대형 출판사에 2,000만원을 지원했을 경우,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금액의 원고료를 지급할 기회가 사라진다. 또한, 대형 출판사는 지원금 없이도 매년 문예지 발간 및 원고료 지급을 이어가기 때문에 해당 지원금이 거대 출판 자본에 귀속되는 것이다. 문예지발간지원사업이 가진 ‘작가지원금’과 같은 취지에 크게 어긋난다. 예컨대 독립문예지에 2,000만원을 지원했을 때 대형 출판사에서는 여전히 2,000만원을 사용해 총 4,000만원이라는 돈이 작가들에게 돌아갔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2,000만원의 금액만이 작가들에게 가게 된다. 2018년 한해 대형 출판사의 순수익은 문학동네 29억 3,607만원, 창비 9억 9,414만원, 민음사 32억 8,405만원이다. 문학동네의 경우 연간 접대비로만 4,837만원을 지급했다.

단체별 지원 금액과 관련한 기준은 ‘호당 지원 규모: 350만원~450만원 차등지원’으로 각 단체의 예산안에 기초하며 이외의 세부 판단 기준 또한 공개된 바 없다. 

이와 관련해 공전 측은 “공개되지 않은 정보들이 너무 많았다. 지원 문예지들이 각자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점이 강점인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실제로 5인의 심의위원 의견이 ‘총평’으로 뭉뚱그려 있을 뿐 아니라 공모에 탈락한 문예지 측에 별도로 설명된 사항도 일절 없었다.

문학 레이블 공전 1주년 기념 "문학나이트 2018" 행사 모습 [사진 = 뉴스페이퍼 DB]

유수연 대표는 “희망이 없다는 느낌이 강했다. 지원사업 대신 공연이나 행사 등 다른 힘과 방향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공식 발표 석 달 후 전화로 재선정 소식을 들었다. 붙고 나니 더 큰 의문이 들기도 했다. 왜 붙었고 왜 떨어졌나? 기존에 붙었던 문예지 “애지”는 왜 취소됐나? 등의 질문들이 해소되지 못했다.”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애지”는 도서출판지혜 반경환 주간의 성명서와 함께 자발적 지원 거부 의사를 밝힌 곳으로,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지원 취소 관련 내용이 발표되거나 수정되지 않았다. 국가지원사업의 선정과정·절차·결과·이후의 내용이 모두 누락 또는 축소된 채 공개된 지점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리 대표는 “최대한 많은 작가와 최대한 많은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것이 ‘문학 창작 활동의 중요한 토대’를 다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인터뷰도 멋진 미래를 위한 멋진 과거가 되기 위한 과정이다. 공론화를 통해 ‘문예지발간지원사업’ 제도가 점점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공전’만의 플랫폼과 색깔

문학레이블 공전이 자신들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서까지 모티프의 발간을 이어가는 데에는 각자의 장르나 분야에 대한 자부심이자 애정이 깃들어 있다. 이리 대표와 유수연 대표는 “우리는 언제든 그만둘 준비가 되어있다. ‘문학’이라는 장르 자체가 오래오래 살아남았으면 한다. ‘몇 년 전엔 이런 책도 있었어.’ 그런 존재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들 스스로 꼽은 공전의 장점이자 강점은 CEO를 맡은 네 명이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사이라는 점이다. 네 사람은 매주 정기적 회의뿐 아니라 많은 일상 속 대화를 나누고 함께 배우면서 책을 제작한다. 포토그래퍼, 디자이너, 편집자, 작가, 운영팀이 모두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더불어 이리 대표는 “작가들과의 협업이 정말 중요하다. 청탁 원고를 모두 받은 이후가 4~50% 정도라면, 이후 각 작품을 가지고 재창작과 디렉팅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남은 주요 작업이다.”라고 강조했다. 공전 측은 ‘협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글과 공연을 포함한 청탁 계약서를 꼼꼼히 작성하고 업계(문학계)의 평균치보다 웃도는 수준의 원고료를 지급하려 노력한다.

3호에서의 청탁 요청 기준은 지면 발표 기회가 적거나 단행본이 나오지 않은 작가 위주로 선택됐다. 공전 측은 “ 단순히 젊어서 가진 감각이 아니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가진 감각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들은 가장 중요한 커트라인으로 사회 윤리 도덕적으로 문제나 논란 없는 이들을 선별했다. 독립출판 역시 소수자나 약자의 포지션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모티프의 출간 외에 문학 행사와 공연을 여는 데에도 여전히 활발하다. 지난 7월 19일 망원동에서 자선낭독공연 ‘문학은 사랑을 싣고’가 아이들과미래재단의 후원으로 진행되기도 했다. 해당 행사는 뮤지션 김뜻돌, 소설가 정세랑, 시인 서윤후, 피아니스트이자 재능장학생인 김규린의 다채로운 콜라보레이션 무대로 구성되었다.

한편, 최근 뉴스페이퍼와의 취재에서 이리 대표는 “4호에서는 아주 색다른 형식의 기획평론과 함께 풍성한 볼거리를 선보일 예정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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