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없는 블록체인 플랫폼 가능할까

블록체인, 아직은 낯설다. 기술도 복잡하고 개념도 어렵다. 이게 정말 우리 생활을 도울지도 미지수다. 어쩌면 금방 한계를 드러내고 시장에서 퇴출될지도 모른다. 반대로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우리 삶을 통째로 바꿀 수도 있다. 만약 블록체인이 완벽히 구현된 세계가 있다면 어떨까. 더스쿠프(The SCOOP)가 2030년의 모습을 1인칭 관점으로 예상해봤다.

▲ 투표 시스템을 블록체인에 얹으면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사진=아이클릭아트]

나는 20년차 작곡가다. 어렸을 땐 100만장씩 앨범을 팔던 대중가수가 부러웠다. 1만원을 훌쩍 넘는 앨범이면 몇만장만 팔아도 짭짤하게 돈이 벌릴 것 같았다. 그런데 작곡을 배우며 선배들에게 들은 업계 얘기는 딴판이었다. 음반 판매 이익 대부분은 레코드사와 유통업체의 몫이라는 거다. “더 많이 팔면 되겠지.” 치기어린 젊음은 그렇게 도전을 시작했다.

내가 이 바닥에 발을 들일 때쯤 첨단기술이 기지개를 폈다. 그러자 세상이 달라졌다. 고압축 음원 MP3가 등장한 거다. 유명 가전회사들은 CD플레이어 생산을 멈췄다. 대신 MP3플레이어를 만들기 시작했다. 용량이 가벼운 MP3는 불법공유가 손쉬웠다. 음악을 만들어도 인터넷이란 허공에 퍼질 뿐이었다. 메아리는 없었다. 나는 배를 곯기 일쑤였다.

2000년대 후반, 드디어 꿈꾸던 세상이 왔다. ‘돈 내고 음악 듣는 시대’다. 저작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인식이 높아진 영향이 컸다. 누구나 스마트폰에 스트리밍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고 결제만 하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먹고살 만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내 음악을 듣기 위해 열린 지갑은 나와 접점이 없었다. 수익은 크게 ‘4(스트리밍 기업)대 4(제작사)대 2(아티스트)’ 비율로 나뉘었다. 음악을 만든 건 나인데, 파이는 가장 적었다.

물론 이건 내 음원이 다운로드될 때의 얘기다. 많은 사람들은 ‘정기 이용권’을 끊고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즐긴다. 내 노래가 1회 재생될 때 내게 떨어지는 돈은 0.6원. 10원짜리 동전을 100조각을 내면 그중 6개만 가져갈 수 있었다. 이마저도 내 음원이 정확히 몇 번 재생됐는지 파악할 길이 없었다. 스트리밍 기업이 ‘몇 번’이라고 통보할 뿐이었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음악이 유통되는 유일한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내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불공정한 음원 수익 배분

그런데 2030년이 된 요즘은 다르다. 제법 먹고 살만 하다. 전환점은 ‘블록체인’이다.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이 기술이 나올 땐 ‘거품이니 투기니’ 말이 많았다. 평생 음악에만 목 멘 내겐 관심 없는 얘기였다. 그러다 ‘리스크 없는 블록체인 기술 개발’이란 뉴스가 뜨더니, 후배가 어떤 사이트의 주소를 알려줬다. 앞으로 노래를 만들면 여기에 등록하라는 거다.

방법은 간단했다. 음악을 만들고 ‘블록’이란 곳에 작곡ㆍ작사가인 내 이름과 가수 이름, 만든 날짜 등을 입력했다. 이 블록은 신통했다. 고객이 내 계좌에 정해진 금액을 쏘면 음원에 접근할 수 있는 코드를 부여했다. 이 거래 기록은 새로운 블록으로 만들어져 내 음원의 블록에 붙었다. 이런 게 계속 사슬처럼 엮이는데, 이걸 블록체인이라고 부른단다.

일단 불법 다운로드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거래 기록이 담긴 블록은 서비스를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도 갖고 있는데, 새로운 블록이 쌓이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된다. 새 블록은 다른 사람의 블록과 비교ㆍ점검하는 과정을 거치고, 문제가 없는 블록만 접근 코드를 얻을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못해도 절반 넘게 수수료를 떼어가던 음원 유통 업체들을 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덕분에 이들 업체들보다 저렴하게 음원을 팔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게 떨어지는 몫은 훨씬 컸다. 동양화를 전공하던 친구를 만난 적 있는데, 그 친구 얼굴도 한결 폈다. 그림을 거래하는 데에도 비슷한 게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엔 방 정리를 하다가 뜻밖의 고문서古文書를 발견했다. 재즈 보컬리스트 존 헨드릭스가 별세하던 2017년 11월 24일자 신문이다. 좋아하던 아티스트였던 만큼 따로 스크랩을 해뒀다. 다시 신문을 살펴보니, 이 당시엔 살벌한 뉴스가 많았다. 달걀에서 살충제가 검출됐고 다달이 쓰는 여성용품에는 유해물질이 나오기도 했다.

요새는 이런 뉴스가 뜸하다. 각 업체들이 유통 정보를 블록체인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통 과정이 복잡해도 불량품이 나오는 지점을 쉽게 추적할 수 있단다.

달력을 보니 6월 12일이 코앞이다. 우리나라 열번째 지방선거가 열리는 날이다. 과거엔 선거 용지에 붉은 인주로 ‘복卜’자를 찍었다. 너도나도 손등에 인주를 찍어 SNS로 인증하기도 했다.

모든 거래에 블록체인이 있다

지금은 인주를 찍지 않는다. 투표는 간단해졌다. 시스템에 블록체인을 도입해서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어디서든 소중한 한 표를 던질 수 있다. 번번이 제기되던 투표 조작 의혹이 없어졌다. 내 투표가 집계에 포함됐는지 언제든 확인이 가능해서다. 투표 이력도 영구 보존된다. 선거철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일하던 친구가 “아르바이트치곤 짭짤하다”며 이를 보이며 웃던 것도 추억이 됐다. 지금은 이런 위원회가 필요 없다. 새벽을 넘어서야 발표되던 결과도 투표 종료 후 금방 공개된다.

TV를 켰다. 정부에서 중대 발표를 할 참인가 보다. 들여다보니 기존 주민등록증을 폐기한다는 내용이다. 대신 블록체인을 활용한 전자ID를 발급해준다고 한다. 이 ID로 회사 설립, 부동산 구매, 병원 처방전 발급까지 각종 행정서비스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거다. 블록체인의 삶, 꽤나 편리하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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