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피눈물, 국격… 단초는 거짓말이었다
손실, 피눈물, 국격… 단초는 거짓말이었다
  • 고준영 기자
  • 호수 278
  • 승인 2018.03.06 1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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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손실의 경제학

한국GM의 독자생존 합의서,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유주 논란, 안희정 충남지사의 성폭행…. 나라를 흔들거나 흔드는 이 사건들의 단초는 ‘거짓말’이다. 2010년 한국GM의 독자생존 가능성을 호언장담했던 산업은행의 말은 진위조차 알 수 없다. 대우조선해양은 거짓말 탓에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전직 대통령의 거짓말 여부는 국격國格을 흔들만한 일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거짓말, 그 손실의 경제학을 해부했다.
 

▲ 2010년 산업은행은 GM본사와의 협상을 통해 독자 생존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현재 실체가 없다.[사진=뉴시스]

2010년 12월 8일은 한국GM(당시 GM대우 이하 한국GM 통일)의 변곡점이었다. GM본사 없이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GM은 존폐 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파산 위기를 맞은 GM본사가 해외지부를 철수할 거란 소식은 끊임없이 들려왔다. 실적도 나빴다. 한국GM은 2008~2009년 각각 8757억원, 343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09년 10월은 위기의 절정이었다. GM본사는 일방적으로 한국GM에 49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GM철수설이 기정사실화한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터져나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한국GM의 2대 주주인 산업은행의 지분이 28%에서 17%로 떨어지면서 소수주주권을 상실한 탓이었다[※참고: 소수주주권이 없으면 GM본사의 자산 매각 시도를 견제할 수 있는 비토권과 이사추천권을 행사할 수 없다.]

모두 백기를 들려던 2010년 12월 8일 산업은행은 기자회견을 열고 “GM본사와의 협상을 통해 ‘GM대우 장기발전을 위한 기본합의안’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당시 산은의 발표에 따르면 합의 사항은 크게 세가지였다. ▲산은 등 주요 채권단이 보유한 2조3000억원 규모의 우선주를 한국GM이 상환하지 못할 경우 GM본사가 대신 갚아줄 것 ▲기술 소유권과 관련한 비용분담협약(CSA) 개정 ▲소수주주권 원상회복과 이사 3인 추천권 등 경영권 견제장치 마련이었다.

이중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CSA 개정을 통해 GM본사가 철수해도 한국GM이 자체 개발한 자동차 관련 기술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는 두번째 내용이었다. 김영기 당시 산은 수석부행장은 “만일의 경우 GM본사가 떠난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기술적 기반이 있고 생산시설이 있으니까 GM대우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놓자는 게 CSA 개정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2010년 12월 8일은 한국GM의 독립선언일과 다를 바 없었다.

 

그로부터 8년, GM철수설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상황이 좀 더 심각하다. 한국GM의 재무건전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2013년 이후 적자의 늪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지난해 1분기엔 자본잠식상태에 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월 13일엔 GM본사가 한국GM의 군산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산업은행과 한국GM은 바들바들 떨고 있다. 산업은행이 8년 전 “독자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놨다”고 호언장담했음에도 그렇다. 합의서가 있다면 GM본사의 계약 위반 사항을 꼬집으면 될 일이고 GM본사의 철수 압박엔 ‘독자사업을 하겠다’며 맞불을 놓으면 되는데, 참 이상하다.

왜일까. 문제는 바로 산업은행이 발표한 2010년 합의문에 있다. 산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그 합의문을) 본 적은 없지만 해당 부서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한국GM의 반응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누군가 (그 합의문을) 갖고는 있을 텐데 주주간의 계약이라 비공개다.” 2010년 자신만만하게 “한국GM의 생존이 가능해졌다”고 떠들던 이들이 발을 빼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작정하고 ‘거짓말’을 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때문인지 GM 합의문의 실체를 부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자동차학)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한국GM이 독자 생존권을 보장 받지 못했거나 산은이 관리감독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그게 아니라면 합의서 내용 중 유리한 부분만 발표하고 불리한 부분은 발표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실체 없는 GM과의 합의서

실체 없는 합의서는 상당한 피해를 남기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GM이든, 산업은행이든 합의서만 믿고 ‘GM본사 이탈시 플랜’을 세우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참고 : 합의서가 없었더라도 B플랜을 마련했을 가능성은 없다. 만약 B플랜이 있었다면 지금처럼 우왕좌왕하지 않았을 것이다.] GM본사의 철수설에 한국GM 노동자들이 갈길을 헤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장 군산공장의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릴 운명에 놓였다. 현재 200명의 노동자는 일방적인 해고통지를 받은 상황이다. 더구나 군산공장 폐쇄가 한국GM의 철수로 이어진다면 일자리를 위협받는 노동자는 30만여명(한국GM 직원 1만6000여명ㆍ협력업체 직원 30만여명)으로 불어난다. 동시에 한국GM이 유발하던 연평균 10조6000억원(매출기준)의 경제효과도 증발한다. 산업은행의 “한국GM은 독자생존할 수 있다”는 거짓말이 불러일으킨 ‘나쁜 나비효과’다.

거짓말이 엄청난 손실을 남긴 예는 이뿐만이 아니다. 2015년 대우조선해양은 이중장부를 작성해 해양플랜트 부실 공사로 발생한 대규모 손실을 감췄다. 되레 실적을 과대계상해 포상금 잔치를 벌이기까지 했다. 거짓말은 밝혀졌고, 손실은 대우조선해양을 ‘위기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논란’도 좋은 사례다. 2008년 이 회장은 삼성특검이 자신의 1199개 차명계좌를 밝혀내자 “실명전환하겠다”며 국민 앞에 사과했다. 하지만 이 계좌들은 실명전환되지 않았고, 되레 더 많은 차명계좌가 발견됐다. 이 거짓말은 삼성그룹의 대외신인도를 떨어뜨리는 변수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역시 거짓말의 나쁜 효과다.

경제분야만이 아니다. 정치ㆍ사회ㆍ문화ㆍ예술 분야도 ‘거짓말 투성이’다. 최근 다시 불거진 자동차 부품업체 다스(DAS)의 실제 주인 논란이 대표적이다. 2007년 “난 다스의 주인이 아니다”고 강하게 부인했던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10년이 훌쩍 흐른 지금 ‘다스의 실제 주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스를 통해 숱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도 쏟아지고 있다.

문화계는 ‘거짓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거장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이 ‘성추행’을 숨긴 채 거짓 인생을 살아왔다. 지금까지 나타난 피해자만 10여명에 달하는 이윤택 연출가는 단적인 예다. 한국 문단의 거목으로 추앙받았던 고은 시인도 과오로 얼룩졌다. 그 외에 연기자 조재현씨, 조민기씨, 최일화씨 등도 성범죄 사실이 드러났다.

가장 최근엔 안희정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실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청렴과 혁신을 부르짖는 반듯한 이미지로 여권의 유력 잠룡으로 꼽혀온 안 지사였다. 하지만 포장이자 거짓이었다. 뒤에선 한 여성의 인권을 ‘야만적 성性’으로 짓밟았다. 지난 8개월 간 수행비서를 4차례나 성폭행했다. 국민은 불신이 가득했던 정치권에 또다시 등을 돌렸다.

거짓말을 일삼던 양치기 소년은 늑대의 출몰을 막지 못해 양을 지키지 못했다. 거짓말의 대가로 손실을 톡톡히 치른 셈이다. 한국GM도, 대우조선해양도, 삼성그룹도 거짓말 때문에 손해 막금이다. 전직 대통령의 거짓말이 사실이라면 대한민국호號도 큰 손실을 입을 게 뻔하다. 거장의 거짓말에 속앓이를 해온 사람들도 물적ㆍ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지금껏 ‘거짓말의 시대’를 살아왔다. 거짓말의 피해, 대체 누가 책임질 텐가.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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