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의 ‘특별한 감정이 시가 되어’
김종철 시인의 칼국수
분노란 감정 시적 직관
분노 넘치면 파괴적 힘 발휘
서민음식 칼국수에 빗댄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

칼국수  

마음에 칼을 품고 있는 날에는 
칼국수를 해먹자 

칼국수 날은 날카롭다 
식칼, 회칼, 과일칼 
허기 느끼며 먹는 칼국수에 
누구나 자상刺傷을 입는다 

그럼 밀가루 반죽을 잘해서 
인내와 함께 
홍두깨로 고루 밀어보자 
이때 바닥에 붙지 않게 
마른 밀가루를 
서너 겹 접은 분노와 회한 사이 
슬슬 뿌리며 
도마 위에서 일정하게 썰어보자 
불 끈 한석봉 붓놀림 같이  
한눈팔아서는 안 된다 
특히 칼자국 난 면발들이 
펄펄 끓인 다시물에 뛰어들 때 
같이 뛰어들지 않지 않도록 주의하자 
고통이 연민으로 후욱 끊어오를 때 
어린 시절 짝사랑 같은 
애호박 하나쯤 송송 썰어 
끓는 면발 사이 넣는 것도 좋겠다 

우리 모두 마음에 칼을 품는 날에는 
다 함께 칼국수를 해 먹자 

「못의 사회학」, 문학수첩, 2013.

김종철(1947~2014)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데뷔
•정지용 문학상, 평운문학상 등 다수 수상
•39대 한국시인협회 회장

김종철 시인은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칼국수에 빗대 시적으로 직관했다. [일러스트=게티이미뱅크]
김종철 시인은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칼국수에 빗대 시적으로 직관했다. [일러스트=게티이미뱅크]

성리학의 중요한 철학적 개념 가운데 하나가 사단칠정四端七情이다. 그중에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의 네가지 마음으로서 각각 인·의·예·지의 착한 본성에서 발로해 나오는 선천적인 감정이다. 칠정七情은 인간의 본성이 외부 사물(현상)을 접하면서 표현되는 기쁨, 노여움, 슬픔, 두려움, 사랑, 미움, 욕망의 일곱가지 자연 발생적 감정을 가리킨다. 

결과적으로 사단칠정은 선천적인 본성과 후천적인 감정을 구분한 것인데 필자는 철학적 사유가 얕은 결과로 사단과 칠정의 구분이 꼭 필요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예컨대 ‘애증愛憎’이란 감정이 있을 때 애와 증은 분리되지 않고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복합적인 감정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하나의 느낌은 사단은 왠지 품위 있어 보이고 칠정은 왠지 즉흥적이고 경박스럽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가는 인간의 솔직한 감정에 해당하는 칠정이 많게, 확실하게 발현돼야 미학적 영감을 끊임없이 창출할 수가 있다. 그러니 시인은 칠정의 본질을 예술적 직관으로 파악하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사유해야 ‘좋은 시’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김종철 시인은 칠정 중 한가지인 ‘분노(노여움)’를 시적으로 직관해서 상황 비유를 통해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해 냈다. 잘 알다시피 분노는 분개해 몹시 화를 내는 감정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분노가 많고 적음은 있어도 분노가 전혀 없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러니 분노는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감정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다스리면서 조절해야 할 대상이 된다. 누구든 분노가 넘치면 파괴적 힘을 갖는다. 그러니 분노가 쌓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사는 이들은 분노를 매순간 다스려야 한다.  

비극의 역할 중에 한가지는 관객이 비극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서 자신이 가진 분노나 증오, 우울함, 불안함 등을 풀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분노를 순간적으로 해소해 주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그 상황을 ‘카타르시스(자기정화)’라고 칭했다. 그런 ‘카타르시스’처럼 김종철 시인은 「칼국수」에서 분노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바로 칼국수 요리를 통해 비유적으로 분노를 정화하는 방식이다.  

「칼국수」에서 마음에 품은 ‘칼’은 분노나 미움, 증오를 상징한다. 화자는 그 ‘칼’을 어떻게 하면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지, 주의할 점은 무엇이 있는지를 언술한다. 요리할 때 첫번째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절대 허기를 느낄 때 급하게 만들어서 먹지 말라는 것이다. 분노를 성급하게 다스리면 “누구나 자상刺傷을 입는”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화자가 제시한 매뉴얼대로 천천히 요리해야 한다. 우선 “밀가루 반죽을 잘해서/인내와 함께/홍두깨로 고루” 미는 과정이 필요하다. 또한 “마른 밀가루를/서너겹 접은 분노와 회한 사이”에 슬슬 뿌려서 바닥과 달라붙지 않게 하는 노하우도 필요하다. 분노를 다스림에 있어서 속성을 지연시킬 수 있는 ‘인내’와 ‘긴장 완화’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부분이다. 

두번째로 주의해야 할 사항은 분노가 날것의 상태이므로 조심조심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도마 위에서 일정하게 썰” 때도 “불 끈 한석봉 붓놀림 같이” 절대 한눈팔지 말고 차분하게 분해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분노에게 ‘손’을 베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제시한 사항은 “칼자국 난 면발들이/펄펄 끓인 다시물에 뛰어들 때” 요리하는 사람이 “같이 뛰어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칼자국’은 분노의 단면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그 생생한 것이 끓는 육수에 뛰어들 때, 문득 분노가 발생하게 된 원인이나 과정이 아프게 떠오를 수도 있기에 뜨거운 거품을 가라앉힐 특별한 비법을 제시했다.

“고통이 연민으로 후욱 끊어오를 때/어린 시절 짝사랑 같은/애호박 하나쯤 송송 썰어” 넣는 센스가 바로 그 비법이다. ‘어린 시절 짝사랑’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순수한 떨림이고 순수한 기억이다. 그런 순수함만이 고통과 연민을 모두 잠재울 수 있는 요소가 된다. 욕망이 하나도 없는 타자를 향한 아름다운 떨림, 이것이 화자가 자기정화를 위해 최종적으로 선택한 비결이다.  

「칼국수」가 가진 매력은 분노를 나쁜 대상으로 보지 않고 함께 동행하면서 다스릴 대상으로 본 것이다. 다스림에 있어서 도덕적 ·윤리적 방법을 동원하지 않고 칼국수를 천천히 차분하게 요리하듯 분노를 비유적 방법으로 해소시킨 점 또한 매력적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김종철 시인이 제안한 분노조절 방법을 실천해보길 바란다. 

하린 시인  | 더스쿠프 
poeth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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