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 랩장의 1인칭 책읽기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갈등은 타자와 나의 경계서 나와
문학계 수많은 경계 무너지길

지금도…… 이 말을…… 당신께…… 꼭, 해야 하는가……? 몇 번이고 제 자신에게 되묻게 됩니다. 내뱉고 말면 어쩌면 당신은 저를 증오할지도 모르겠어요.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건 순식간의 일이지요. 당신이나 저나 그 두 감정이 서로 동시에 마음을 언덕 삼아 맞대고 있지 않았나요?
[풍금이 있던 자리 일부]

이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갈등 요소는 타자와 나의 구분에서 나온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이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갈등 요소는 타자와 나의 구분에서 나온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유년 시절 글이 안 써지는 밤이면 신경숙의 작품을 필사하곤 했다. 파란색 노트에 만년필 심을 꾹꾹 눌러가며 글을 옮겨 적으면 손가락 끝이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나에게 문학이란 ‘신경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2015년 신경숙의 표절 사건이 터졌다. 신경숙 작가의 작품과 작품 속 다수의 문장이 표절로 밝혀졌다. 명백한 표절이었지만 신경숙을 옹호해 주던 문단 내 세력이 있었다. 이 문제는 출판사, 그리고 출판사가 운영하는 문예지의 청탁 권력 논쟁으로 이어졌다. 일명 문학 권력 논쟁이었다.

사랑이 회의감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글이 써지지 않는 밤이 돼도 필사를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혹 필사를 해도 손끝의 감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신경숙 사태 이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던 문청(문학청년)들은 언론사를 만들기로 했다.

처음에는 문예지를 만들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지면이 아니었다. 공정하고 날카로운 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언론사를 떠올렸다. 그것이 뉴스페이퍼였다.

우다영의 세번째 소설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이번 소설집이 관통하는 이야기는 타자와 나의 관계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태초의 선함’은 남태평양 사모아제도에서 ‘아즈깔’이란 신비의 풀이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이 풀의 독성에 노출된 사람은 ‘각성’이란 것을 한다. 각성이란 한 사람이 현생現生을 포함해 여태 겪어온 모든 전생前生을 기억하는 현상이다. 더 나아가 겪어본 적 없는 후생後生, 이를테면 미래의 생까지도 기억한다. 각성자는 전생의 영혼들이 가졌던 기술과 능력까지 얻는다. 일종의 초인이 되는 것이다.

신경숙 표절 문제를 다룬 세미나 [사진=연합뉴스]
신경숙 표절 문제를 다룬 세미나 [사진=연합뉴스]

각성자는 이전에 겪었던 모든 삶과 앞으로 겪을 모든 삶을 동시에 알고 있기에 ‘나’라는 경계는 무너진다. 대신 모든 인류, 그리고 현생과 전생을 깨달아 온전히 타인을 이해하는 인간으로 거듭난다. 

이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갈등 요소는 타자와 나의 구분에서 나온다. 우다영 소설가는 타자와 나의 구분이 사라진 세계를 꿈꾼다. 갈등이 사라진 세계는 마치 우주의 진공 상태와도 같다. 서로의 경계가 사라진 세계는 우주처럼 허무하지만 어쩌면 평온하고 고요하기도 하다.

뉴스페이퍼는 태생적으로 출판문학계의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문학계를 향한 사랑과 회의감이라는 두 감정이 서로 동시에 마음을 언덕 삼아 맞대고 있었기에 문학계의 문제들을 호명해 나갔다. 존재함을 호명하는 것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문학계의 부조리를 8년간 목격했다. 정부지원기금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이 자신이 속한 단체 회원에게 지원금을 몰아준다거나 특정 출판사 출신들끼리 모여 상과 상금을 나눠 가진다. 유명 문인의 이름으로 만든 문학상은 주최 측 출판사에서 책을 낸 사람을 홍보하는 도구로 쓰인다. 이 모두 나와 타인을 구분한 ‘문학계 내 섹터주의’가 만들어낸 참극이었다. 

친일문인기념상 문제를 취재할 당시 상을 받은 문인은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은 가짜 문인이라고 주장했다. A급 문예지로 데뷔한 이들은 친일문인기념상을 수상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비판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직 급이 낮은 B급, C급 문예지로 데뷔한 가짜 문인들만이 자신을 비판한다며 똑바로 취재하라고 쏘아붙였다. 

[사진=문학과 지성사]
[사진=문학과 지성사]

가짜냐 진짜냐는 질문. 너는 그들이냐 혹은 우리인가라는 질문. 나와 우리의 ‘경계’ 안으로 들어가면 녹아버리는 문제들…. 이런 질문과 문제 앞에서 우다영 소설가는 타인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인 삶을 이야기한다. 자기 자신이라는 경계조차 사라졌을 때 오롯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다영 소설가가 꿈꾸는 세계를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자신의 경계까진 아니더라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나누는 수많은 사회적 경계의 해체는 상상해 볼 수 있으니, 문학계의 수많은 경계가 무너지길 꿈꾼다.

이 글을 쓰면서도 행여 신경숙이 사과를 하지 않았나. 여러 번 신경숙 소설가의 인터뷰를 찾아봤습니다. 어렵게 견뎌내고 찾아온 이 밤. 이미 신경숙의 글을 필사하지 않은 지는 오래됐는데, 마지막으로 신경숙의 글을 필사했던 때가 언제던가, 그것을 헤아려보다… 곧 날이 밝아올 것을 깨닫습니다. 부디 안녕하시길. 
[12월의 마지막 밤, 문청이었던 이민우 올림]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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