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작가 개인전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지?’
배려심 엿보이는 미디어아트

김혜리, 네가 행복하다니 기뻐(네가 나보다 덜 행복하다면), 2023, 종이에 아쿠아틴트, 50×35㎝.[사진=전시공간 리플랫 제공]
김혜리, 네가 행복하다니 기뻐(네가 나보다 덜 행복하다면), 2023, 종이에 아쿠아틴트, 50×35㎝.[사진=전시공간 리플랫 제공]

17세기쯤 유럽에선 진기한 물품을 가득 채운 ‘분더카머(Wunderkammer)’란 공간이 유행을 탔다. 대항해시대를 거쳐가던 유럽은 전세계에서 진기한 물품들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를 뽐내려는 문화가 형성됐던 것 같다. 

분더카머. 좀 낯선 용어인데 어디서 들은 듯하다면 그 느낌이 맞다. 분더카머는 ‘박물관학’에서 다루는 개념이다. 다만, 지금의 박물관보단 아카이브(저장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박물관보단 아카이브, 아카이브보단 분더카머가 이전에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아트 키다리아저씨’가 소개하려는 전시회는 김혜리 작가의 개인전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지? How Did We Get Here?’다. 이 전시회에서 김 작가는 분더카머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작품을 선보인다. 현대기술과 미술개념들을 잘 정리해 화폭에 담아놓음을 통해서다. 

김혜리, 폴을 위한 발렌타인 카드, 2023, 종이에 목판, 45.5×40㎝.[사진=전시공간 리플랫 제공]
김혜리, 폴을 위한 발렌타인 카드, 2023, 종이에 목판, 45.5×40㎝.[사진=전시공간 리플랫 제공]

여기서 말하는 현대기술은 ‘디지털 기법’이다. 가령, 컴퓨터로 이미지를 제작해 전통적인 회화작품과 함께 인쇄한다. 디지털적인 데이터(Data)와 이성을 기반으로 삼은 개념(Concept)을 결합해 ‘프로그래밍 객체(Object)’를 구성하는 식이다. 

다만, 김 작가는 이같은 시도를 불편하게 여길 관람객을 배려한다. 전통적인 회화재료와 디지털 기법을 지혜롭게 구성해 미디어아트를 보면서 피로함을 호소하는 이들의 감각을 편하게 자극한다. 기존에 본 적이 없는 개념을 세상에 소개할 때일수록 물감과 같은 편한 재료를 활용해야 한다는 김 작가의 생각이 읽힌다. 

이처럼 김 작가의 작품 속엔 여러 가지 ‘철학’이 깃들어 있다. 그 철학은 영상ㆍ판화ㆍ조각 등 다양한 장르에 녹아들어 있어서 관람객에게 신선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그 요소들이 어디서 유래했는지를 찾아보는 것도 색다른 관전 포인트다. 

김혜리, 다리를 끊지 마세요, 2024,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110×110㎝.[사진=전시공간 리플랫 제공]
김혜리, 다리를 끊지 마세요, 2024, 종이에 디지털 프린트, 110×110㎝.[사진=전시공간 리플랫 제공]

이를 엿볼 수 있는 대표적 작품 유형이 ‘예술적인 베지클(세포소기관ㆍvesicle)’이다. 김 작가는 사람의 혈관과 장기를 ‘식물’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의 몸과 식물이 상호 영향을 주면서 진화하지 않았을까란 상상을 하곤 했고, 이를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그래서 김 작가의 작품 속 나무들은 사람처럼 뿌리를 다리 삼아서 걸어 다닐 것 같은 동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인터넷, 사물인터넷(IoT)을 넘어 AI 시대까지…. 디지털은 변하고, 그 틀 안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 이런 세상에선 어떤 철학을 가져야할지 궁금한 이들에게 김 작가의 개인전을 추천한다. 이번 전시는 전시공간 리플랫에서 30일까지 열린다.

김선곤 문화전문기자
sungon-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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